몸으로 보인 연관 스님 임종게
몸으로 보인 연관 스님 임종게
  • 법응 스님
  • 승인 2022.06.20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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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법응 스님

『금강반야바라밀경』 제14 이상적멸분의 한 대목을 본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내가 옛날 가리왕(歌利王)에게 몸을 베이고 끊임을 당하였으되, 내가 그때 아상(我相)이 없었으며, 인상(人相)이 없었으며, 중생상(衆生相)도 없었고, 수자상(壽者相)도 없었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내가 그때 마디마디 사지를 찢길 때, 만약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었더라면 마땅히 성내고 원망하는 마음을 내었을 것이니라.”

경전의 이 대목은 부처님께오서 신체가 끔찍한 해를 입는 지경의 극단적 상황과 연계하여 인욕바라밀에 대해 설하신 매우 드문 경우의 일을 전하고 있다. 악왕(惡王)에 의해 수족에서 살이 도려내어질 때 자기라는 의식, 살아 있는 것이라는 의식, 개체라는 의식, 개인이라는 의식이 있었다면 ‘원망하는 마음(생각과 의식)’이 있었을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누군가가 이유 불문하고 나를 툭 치고 사과도 없이 지나간다면 불쾌하고 화가 나게 되는데, 그러한 일들이 시비가 되어 결국 큰 다툼으로 번지는 사례가 왕왕 있다. 때에 따라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큰 범죄나 소송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적지 않으며, 운전자들 간의 사소한 시비와 갈등이 끔찍한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물며 내 몸의 수족이 베이고 끊기는 해를 당함에 있어서랴!

부처님께서는 전생에서의 경험을 방편 삼아 이른바 사상(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란 없는 것이며 허망한 것임을 제자들에게 이해시키려 하셨다. 나아가 수행자들이 일체의 상을 떠나 보다 높은 경지로 나아가기를 바라셨다.

근자 연관(然觀)스님께서 죽음에 대처한 방식이 회자되고 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이 이러한 방식을 선호하라는 것은 아니다. 불교의 생사관이나 세계관으로 평생을 산 수행자라면 금생의 인연이 다할 때 이와 같이 초탈한 경지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함이다.

연관 스님께서 원적에 드시기 전에 한 달여를 같이 지낸 스님이 계셨다. 그 스님에 의하면 처음에 연관 스님은 코로나19 증세로 경상도의 지역 병원을 내원하였다가 흉부검진에서 심상치 않은 이상이 발견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후 동국대학교일산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은바, 전문치료가 요구된다는 중증의 진단이 나왔다고 한다.

당시 연관 스님은 코로나 감염병에 더하여 중증의 질병을 진단 받고도 그야말로 생사를 초탈한 수행자로서의 여여한 모습을 보이셨다고 한다. 스님은 당신께서 죽을병에라도 걸린다면 응당 순순히 수용하고 초연하게 이생의 인연을 다할 것이라는 평소의 지론을 그대로 실행에 옮기셨다고 한다. 당시의 상황에 대한 이러한 전언들을 참고하자면 연관 스님은 병마를 원망하기보다 담담히 수용하고 도리어 그 병마의 고통을 정진력을 완성시키는 요소로 삼으셨던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평상시 다져오신 수행의 힘이었을 것이다.

스님은 진통제를 권해도 조용히 손짓으로 거부하여서 그 견디기 어려웠을 통증까지도 삭히셨고, 음식은 고사하고 끝내는 생명 유지의 기본 요소인 물마저 거부했다고 한다. 다시 금강경의 말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연관 스님은 당신의 법체를 내부에서부터 베어내고 끊어내는 그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사상을 여의어가는 과정에 있었음이 분명하지 않은가. 연관 스님은 임종 자체의 모습으로 임종게를 썼음이다.

거듭해서 연관 스님이 생명연장의 치료를 거부한 것은 병고에 대한 원망은 물론 생명에 대한 애착과 경계, 아상을 넘어섰음을 드러낸 것으로 읽혀진다. 연관 스님은 당신의 말씀대로 “나뭇잎이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가장 여여한 경지에 이르렀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 동안의 수행력이 헛되지 않아 병고가 되레 최상승의 경지에 이르는 새로운 정진의 토대가 되었음이리라.

연관 스님이 평소에 승려로서 물질이나 명예를 탐하였다면 제아무리 죽음을 맞이한 모양이 여법하고 장엄했다 해도 세간에 회자되거나 존경을 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스님은 세상의 표현대로 숨은 수행의 실력자인 동시에 이 시대의 화두인 생명과 환경 등 사회의 병고를 치유하는데 솔선수범 하신 진정한 수행자였으며, 무소유 그 자체의 삶을 사셨던 분이었다.

연관 스님과 수경 스님은 절친한 도반이셨다.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주며 그 마음과 뜻을 알아주는 도반이 있어 임종 시에도 미소를 짓지 않으셨을까 생각한다. 필자가 더 이상 운운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기에 이만 줄인다.

유골을 산골한 지리산 어느 자락에서 빛없는 방광, 소리 없는 법음이 이미 퍼져 나가고 있다. “낙엽귀근 내시무구(落葉歸根 來時無口)”라 했으나 연관 스님의 행장이 큰 소리로 널리 알려져서 세상의 귀감이 되기를 바란다.

/法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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