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문관: 덕산탁발(德山托鉢)
신무문관: 덕산탁발(德山托鉢)
  • 박영재 명예교수(서강대)
  • 승인 2022.05.3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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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선도회 박영재 교수와 마음공부 55.

성찰배경: 이 칼럼을 통해 필자는 선종(禪宗) 초기 중국 천하를 양분했던 마조도일 선사와 석두희천 선사 계열 선사들의 활약을 <무문관>을 중심으로 하되, 전법계보에서 빠진 관련 선사들에 관한 활약도 다른 선종어록들을 참고하며 선풍이 어떻게 전승되고 있는지 보다 쉽게 파악하기 위한 일환으로 <무문관>의 순서를 무시하고 시대순으로 공안들을 제창해오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 순서에 따라 석두희천 선사의 법을 이은 천황도오-용담숭신-덕산선감 선사에 관한 공안들을 살피고자 합니다. 

◇ 의사즉차(擬思即差)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가운데 천황도오(天皇道悟, 748-807) 선사와 용담숭신(龍潭崇信?-?) 선사가 주고받은 선문답(禪問答)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때 용담이 출가하기를 청했다. 그러자 천황 선사께서 ‘자네는 전생(前生)에는 복(福)과 선(善)을 숭상(崇尙)하였으며, 금생(今生)에는 내 말을 믿으니[信] 이제 자네의 이름을 숭신(崇信)이라고 부르겠네!’라고 말씀하셨다. 용담은 이때부터 늘 곁에서 천황 선사를 열심히 시봉(侍奉)하였다.
그러다 어느 날 천황 선사께 ‘제가 여기에 온 뒤로 지금껏 마음[心]에 관한 요결(要訣)을 가르쳐 주시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여쭈었다. 이에 천황 선사께서 ‘자네가 온 뒤로 나는 자네 마음의 요결을 가리키지 않은 때가 없었느니라.’라고 답하셨다. 
그러자 용담이 ‘언제 어디서 가르쳐 주셨습니까?’라고 여쭈었다. 이에 천황 선사께서 ‘자네가 차를 끓여 오면 나는 자네를 위해 받아마셨고, 음식을 갖다주면 자네를 위해 받아먹었고, 자네가 합장의 예를 올리면 나도 즉시 고개를 숙이며 합장을 하였네. 도대체 어디에서인들 마음의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하는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이 말씀에 용담이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를 보고 도오 선사께서 ‘보려면 즉시 곧바로 봐야지, 머리로 헤아려 생각하려 하면 즉시 어긋나느니라.[擬思即差.]’라고 다그치셨다. 용담은 천황 선사의 이 말 끝에 견해(見解)가 열리며 깨쳤다. 

군더더기: 용담은 출가하기 전, 천황 선사께서 오로지 두문불출하며 수행에만 전념하시던 천황사 근처에서 떡 장사를 할 때 지극정성으로 매일 10개의 떡을 수년간 공양하였는데 그때마다 천황 선사께서는 1개를 남겼다가 돌려주면서 ‘내가 그대에게 이렇게 주어서 자손의 공덕을 쌓고 있노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용담이 ‘천황 선사께서 왜 늘 떡 1개를 나에게 다시 돌려주실까?’란 의문이 문득 일어나자, 이에 관해 문답을 나누다가 크게 느낀 바가 있어 출가를 결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아이러니하게도 의문, 즉 끊어야 할 분별이 용담으로 하여금 떡장사에서 대자유인으로 나아가게 하는 전기가 되었네요.

◇ 신무문관: 구향용담久嚮龍潭

본칙(本則): 용담 선사께 덕산선감(德山宣鑑, 782-865)이 가르침을 청하여 듣다가 밤이 깊었다. 용담 선사께서 ‘밤이 깊었는데 왜 물러가지 않는가?’라고 하시니 덕산이 드디어 인사를 하고 발[簾]을 들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 ‘밖이 캄캄합니다!’라고 하였다. 용담 선사께서 초에 불을 붙여 주시고는 덕산이 받으려고 하는 찰나에, 이를 불어 꺼버리셨다[吹滅紙燭]. 덕산이 이때 곧 깨닫고 절하였다.
용담 선사께서 ‘그대가 어떤 도리를 보았기에 절을 하는가?’라고 물으시니, 덕산이 ‘제가 오늘부터 천하 노화상님들의 말씀을 의심치 않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 다음날 용담 선사께서 설법좌(說法座)에 올라 ‘이 가운데 대장부가 있어 이빨은 칼숲[劍樹]과 같고 입은 혈분(血盆)과 같아서 때려도 꿈쩍도 하지 않구나. 훗날 선종(禪宗)의 정상에 우뚝 서서 나의 도를 크게 일으키리라!’고 하셨다.
덕산은 드디어 지고 다니던 <금강경소초(金剛經疏抄)>를 법당 앞에 쌓아놓은 다음 횃불을 치켜들고 ‘모든 현묘한 이치를 궁구했다고 할지라도 털끝 하나를 허공에 던져놓은 것과 같고 세간의 이치를 모두 꿰뚫었다고 할지라도 물 한 방울을 깊은 골짜기에 떨어뜨린 것과 같다.’고 외치고는 소초를 불사르고 작별인사를 드린 후 떠났다.

평창(評唱): 무문 선사께서 “덕산 스님이 깨치지 못하였을 때 입으로 다 말할 수 없이 마음이 분심으로 가득 차 남방에 가서, ‘교외별전(敎外別傳)’, 즉 교리 밖에 특별히 전한다고 하는 선종(禪宗)을 쓸어 없애 버리겠다고 결심하고 길을 떠나 예주 땅에 이르렀다. 점심때가 되어 길가의 떡집 노파에게 떡을 사 먹으려고 하니 노파가 ‘스님의 바랑 속에는 무슨 글이 들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덕산 스님이 <금강경소초>라고 대답하니 노파가 ‘금강경 가운데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고 했는데 스님은 어느 마음에 점심을 드시렵니까?’라고 물었다. 이 물음에 덕산 스님의 입이 콱 막혀 버렸다.
비록 이렇게 노파에게 낭패를 당하기는 했으나 그냥 물러나지 않고 근처에 어떤 큰 선지식이 계시냐고 물어, 오리(五里) 밖에 용담 선사께서 계신다고 하자, 아직 아집을 버리지 못한 채 용담 선사를 찾아뵙고 완전히 패하였다. 가히 앞의 말에 뒤의 말이 따르지 못하는구나.
용담 선사께서 덕산에게 아직 불씨, 즉 아상(我相)이 남아 있는 것을 보시고 덕산을 가여운 어린 아이처럼 여겨 급히 구정물을 끼얹어 그 불씨마저 꺼버렸다. 이를 냉정히 살펴본다면 한바탕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구나!”라고 제창하셨다.

송(頌): 게송으로 가로되[頌曰],

이름 듣는 것이 얼굴 보는 것만 못하다는데
막상 얼굴을 보니 이름을 듣느니만 못하네.
비록 본래면목[鼻孔]을 체득했다고 할지라도
지혜의 눈[慧眼]이 멀어 버렸음을 어찌할꼬!
[聞名不如見面 見面不如聞名. 雖然救得鼻孔 爭奈瞎却眼睛.]

* 군더더기: 무문혜개 선사의 스승인 월림사관 선사의 <월림사관선사어록(月林師觀禪師語錄)> 가운데 시자(侍者) 덕수(德秀)가 엮은 ‘송고(頌古)’ 편을 보면, ‘덕산이 처음 용담에 도착하자마자, 오랫동안 용담을 향하여[嚮] 마음속으로 흠모해 왔는데, 와서 보니 연못[潭]도 보이지 않고 용(龍)도 나타나지 않네요. 그러자 용담 선사께서 ‘그대 친히 용담에 왔느니라.’라고 응대하셨다.‘란 대목에서 잘 알 수 있듯이 ‘구향용담(久嚮龍潭)’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울린다’는 뜻의 ‘향(響)’에서, 앞서 존재하는 원전(原典)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그 뜻도 보다 명료한, ‘향하다’ 또는 ‘바라보다’는 뜻의 ‘향(嚮)’으로 바꾸어 보았습니다. 물론 핵심 본질에서 벗어나 지엽적으로 문자의 시비에 얽매인다면 둘 다 그릇된 것이나 이에 집착하지 않고 본질에 초점을 맞춘다면 둘 다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공안의 제목으로는 덕산으로 하여금 깨침에 이르게 한 기연인, ‘취멸지촉(吹滅紙燭)’이 더 알맞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덕산 선사의 선풍 엿보기

<조당집祖堂集> 5권 ‘덕산 화상’ 편에서 그의 선풍(禪風)을 다음과 같이 잘 엿볼 수 있습니다.

몽둥이찜질[棒] 
“덕산 선사는 또 어느 때 ‘물으면 허물이 있고 묻지 않아도 또한 어긋난다.[問則有過 不問則又乖.]’고 제창했다. 이때 한 승려가 즉시 예배를 드리자 선사께서 그를 주장자로 내리쳤다. 그러자 이 승려가 ‘제가 막 절을 하였을 뿐인데 (견해도 제시하기 전에) 어째서 때리십니까?’하고 여쭈었다. 이에 덕산 선사께서 ‘자네가 입을 열기를 기다린다고 무슨 소득이 있겠는가?’라고 질책했다.”

병에 걸리지 않는 사람
“덕산 선사께서 어느 때 병환으로 몸져누우셨다. 한 승려가 ‘스님께서 병이 드셨는데 병이 들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까?[和尚病 還有不病者無.]’하고 여쭈었다. 이에 선사께서 ‘있다.[有]’라고 응답하셨다. 그러자 거듭 ‘어떤 이가 병이 들지 않는 사람입니까?’라고 여쭈었다. 이에 선사께서 ‘아야! 아야!’하고 크게 신음소리를 내셨다.

꽥소리[喝]
암두가 덕산 선사께 ‘범부와 성인의 차이는 얼마나 됩니까?[凡聖相去多少.]’하고 여쭈었다. 그러자 선사께서 천지가 떠나갈 듯이 꽥소리[喝]를 질렀다.[師喝一聲.]” 

군더더기: 비록 덕산 선사의 선풍이라고 이름 붙이기는 했으나 사실 세밀히 살펴보면 모든 선사들의 공통점이겠지요. 즉, 몽둥이찜질도 신음소리도 꽥소리도 여기에는 깨침의 요소는 전혀 없습니다. 다만 모두 상대의 이원적(二元的) 분별을 철저히 끊어주기 위한 멋진 작략(作略)들일 뿐입니다. 참고로 덕산 선사 문하에서는 몽둥이찜질을 당하고 크게 깨친 제자들이 많아서였는지, 덕산 선사의 트레이드 마크는 훗날 ‘몽둥이찜질[棒]’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 같네요. 

◇ 신무문관: 덕산탁발(德山托鉢)

본칙(本則): 덕산 선사께서 어느 날 점심 때 발우를 들고 식당으로 갔는데, 설봉의존(雪峯義存, 822-908)이 이를 보고 ‘노스님! 아직 종도 치지 않았고 북도 울리지 않았는데 발우를 들고 어디를 가시는 겁니까?’ 하고 따졌다. 그러자 덕산 선사는 말없이 방장으로 되돌아갔다.
설봉이 사형인 암두전활(巖頭全豁, 828-887) 스님에게 이 일을 알리니, 암두가 ‘천하에 명성이 자자한 덕산 선사도 아직 말후구(末後句)를 모르셨군.’이라고 외치셨다. 덕산 선사께서 이 말을 듣고 시자를 시켜 암두를 불러놓고 ‘그대가 노승을 긍정하지 않는다는 뜻인가?’하고 노기등등하며 따지셨다. 그러자 암두가 덕산 선사의 귀에 다가가 은밀하게 그 뜻을 전하였다. 이에 덕산 선사께서 곧 따지는 것을 멈추셨다.
덕산 선사께서 다음 날 법상(法床)에 오르셨는데 과연 평소와는 그 태도가 달랐다. 그러자 암두가 승당(僧堂) 앞에 나아가 박장대소하며 ‘아! 어찌 기쁘지 않는가! 우리 노사(老師)님께서 드디어 말후구를 얻으셨네. 이후로는 천하의 누구도 노사님을 어쩌지 못할 것이네.’라고 선언하였다.

평창(評唱): 무문 선사께서 “만약 이것이 말후구라면 덕산과 암두 둘 다 꿈속에서조차 말후구 도리를 꿰뚫어보지 못한 것이네. 세밀히 점검해 보면 덕산, 암두, 설봉 모두가 무대 위의 꼭두각시[傀儡]들이로구나.”라고 제창하셨다.

송頌: 게송으로 가로되[頌曰],
최초구를 알아차렸다면, 즉시 말후구를 알리라.
그러나 말후구와 최초구, 이것들은 결코 온몸으로 체득한 한마디[一句]가 아니네.
[識得最初句 便會末後句 末後與最初 不是者一句.] 

군더더기: 사전에서‘탁발(托鉢)’의 본래 의미는‘출가한 승려들이 경문(經文)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동냥하는 행위’이나, 여기서는‘지발(持鉢)’, 즉 ‘절에서 식사 때 승려들이 바리때를 들고 식당(食堂)에 가는 행위’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네요. 
한편 천황도오-용담숭신-덕산선감은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모두 ‘떡’을 매개로 이어진 희유한 인연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 또한 일상 속에서 배고픔을 해결해주는 음식으로서의 ‘떡’이기에 결국 이 가풍 역시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의 범주에 속한다고 사료됩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 일상 속에서 순간순간 깨어있으면서 하고자 하는 일에 온몸을 던져 뛰어든다면, 어느 때 어느 곳에서든지 시절인연이 도래해 깊은 통찰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남은 여생 동안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눔 실천적인 멋진 삶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게 되겠지요.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1989년 8월까지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9년 9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서강대 물리학과 명예교수이다.
1975년 10월 선도회 종달 이희익 선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선사의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 선사로부터 두 차례 점검을 받았다. 1990년 6월 종달 선사 입적 후 지금까지 선도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편저에 <온몸으로 돕는 지구촌 길벗들>(마음살림, 2021)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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