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문관: 몽중설몽(夢中說夢)
신무문관: 몽중설몽(夢中說夢)
  • 박영재 명예교수(서강대)
  • 승인 2022.02.2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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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선도회 박영재 교수와 마음공부 52.

성찰배경: 이번 글에서는 순서에 따라 스승인 위산영우(潙山靈祐, 771-853) 선사와 함께 중국 선종의 오종칠가(五宗七家) 가운데 가장 먼저 출현했던 위앙종(潙仰宗)을 창종한 앙산혜적(仰山慧寂, 803-887) 선사에 대해 다루고자 합니다. 먼저 <위산선사어록>에 담긴 꿈 풀이[解夢]에 관한 일화를 살핀 다음, 앙산 선사의 꿈속 법문이 담긴 <무문관(無門關)> 제25칙 ‘삼좌설법(三座說法)’을 제창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서산대사(西山大師, 1520-1604)와 다쿠앙 소호(澤庵宗彭, 1573-1645) 선사의 꿈에 얽힌 일화들도 함께 다루고자 합니다.

꿈풀이의 큰쓰임[大用]

위산 선사께서 ‘꿈풀이’를 수단으로 앙산과 향엄을 점검한 일화가 <위산선사어록>에 다음과 같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위산 선사가 졸고 계실 때에 앙산이 문안을 드리니, 선사께서 벽 쪽으로 돌아 누우셨다. 이에 앙산이 ‘스님, 어찌 그리하십니까?’ 하고 여쭈었다. 그러자 위산 선사께서 일어나시더니, ‘내가 조금 전에 꿈을 꾸었는데, 그대가 꿈풀이를 좀 해주게.’라고 부탁하셨다. 앙산이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와 스님의 얼굴을 씻겨드렸다. 
조금 있다가 이번에는 향엄지한(香嚴智閑, ?-898)이 와서 문안을 드렸다. 그러자 위산 선사께서, ‘내가 조금 전에 꿈을 꾸었는데 앙산이 나를 위해서 꿈풀이를 해주었네. 그러니 자네도 다시 꿈풀이를 해보게.’라고 부탁하셨다. 향엄이 즉시 차 한 잔을 올렸다.
그러자 위산 선사께서 ‘앙산과 향엄의 견해가 지혜제일이라고 칭송받는 사리불보다 더 뛰어나구나.’라고 극찬하셨다. 

군더더기: 사실 선사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자를 점검하는데 이용합니다. 앞 칼럼 ‘백장야호’에서 백장 선사는 추측컨대 산책 도중 목격한 죽은 여우를 주인공으로 출현시켜 제자들이 넓은 의미에서 꿈의 연속인 ‘윤회(輪廻)’에서 벗어날 것을 다그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황벽희운(黃檗希運, 790?-?)이라는 걸출한 제자를 인가하게 되었고, 뒤에서 다루게 되겠지만 황벽 선사는 임제종(臨濟宗)을 창종한 임제의현(臨濟義玄, ?-867) 선사를 배출하게 됩니다. 한편 위산 선사 역시 대낮에 꾸었던 꿈풀이를 제자들에게 부탁하며 함정을 파 점검하고자 했으나 역시 걸출한 제자인 앙산과 향엄에게 꿈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여지없이 감파(勘破) 당했다고 사료됩니다. 

몽중설몽(夢中說夢)

스승인 위산 선사의 꿈이야기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던 앙산 선사가 이번에는 ‘꿈속에서 설법하다[夢中說夢]’라고 하는 법문이 <무문관> 제25칙 ‘삼좌설법(三座說法)’으로 수록되어 오늘날까지도 참구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칙(本則): 앙산 선사께서 꿈에 56억7000만년 후 출현하신다는 미륵불(彌勒佛) 계신 곳에 가서 세 번째 자리에 앉으셨다. 한 존자(尊者)께서 종을 치며 대중에게 “오늘은 세 번째 자리에 앉은 이의 설법이 있겠습니다.”라고 아뢰었다. 앙산 선사께서 곧 일어나 종을 치고는 “대승[摩訶衍]의 불법(佛法)은 사구를 여의고 백비를 끊는 것이니, 똑똑히 들으시오! 똑똑히 들으시오![摩訶衍法離四句絶百非 諦廳諦廳.]”라고 설하셨다.

평창(評唱): 무문 선사께서 “자! 일러 보아라. 꿈속에서 횡설수설한 이것이 설법인가? 설법이 아닌가? 입을 열면 곧 불법을 잃어버리고, 입을 다물면 또한 불법을 손상하게 되느니라. 그렇다고 입을 열지도 않고, 다물지도 않는다고 해도 또한 십만 팔천 리나 먼 경계이니라.”라고 제창하셨다.

게송으로 가로되[頌曰], 밝은 대낮에/ 꿈속에서 꿈 이야기를 하며/ 소위 선사라는 분이 해괴(駭怪)한 짓을 벌리며/ 대중을 속이는구나![白日靑天 夢中說夢 捏怪捏怪 誑謼一衆.]

군더더기: 앞 칼럼 ‘서당고각(西堂鼓角)’에서 마조 선사와 그 제자인 서당과 백장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벽암록(碧巖錄)> 제73칙 ‘마조사구백비(馬祖四句百非)’를 다루면서, 개념이나 논리에 의한 사량분별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뜻의 ‘이사구절백비(離四句絶百非)’라는 선어를 이미 언급했었습니다. 참고로 조금 더 부연 설명을 드리면 기본 사구와 여기로부터 파생된 백비를 통칭하는 ‘사구백비’는 본래 고대 인도의 외도 철학에서 진리를 철저히 논리적으로 따지기 위해 도입한 개념이라고 합니다. 후에 대승불교의 가르침을 계승한 선불교에서 결코 깨침은 언어문자로 기술할 수 없기에, 일체의 피상적인 이론 체계를 철저히 부정하기 위해 ‘이사구절백비’를 제창한 것입니다. 따라서 마조-백장-위산의 법을 이은 앙산 선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 사람이라도 깨우치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생시가 아닌 깨어야 할 꿈속에서조차 이 선어를 적극적으로 제창하며 일체의 분별을 일으키지 말라고 다그치고 있습니다. 
참고로 <원주앙산혜적선사어록>에 보면 이 공안의 앞부분이 세 번째 자리 대신 두 번째 자리로 바뀐 것 이외에는 다음과 같이 유사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앙산 선사께서 누워계시다가 미륵불이 계신 내원중당(內院衆堂) 안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셨다. 그런데 자리가 대중으로 가득 찼는데 단지 두 번째 자리만이 비어있어 그 자리에 앉으셨다.” 그리고 본문 대부분은 동일한 내용이나 마지막 부분에 꿈을 매개로 한 위산 선사의 점검 내용이 다음과 같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앙산 선사께서 법문을 마치자 대중이 모두 흩어져 돌아갔다. 앙산 선사께서 꿈에서 깬 후 스승인 위산 선사께 이 꿈을 말씀드렸다. 이에 위산 선사께서 ‘자네는 이미 성인의 경지에 도달했군.’이라고 응대하시자 앙산 선사가 즉시 공손히 절을 올렸다.”

한편 후대의 낭야혜각(瑯琊慧覺) 선사께서는 이 공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제창하고 있습니다. “자! 일러보아라. 꿈속에서 설법을 들은 성중(聖衆)들이 앙산 선사를 긍정해야 할지, 아니면 앙산 선사를 긍정하지 말아야 할지를! 긍정한다면 결국 앙산 선사를 저버리는 것이며, 긍정하지 않는다 해도 앙산 선사를 평지에서 곤두박질하게 하는 꼴이 될 것이다. 산승은 오늘 눈썹 빠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여러분에게 설파해 주겠노라. 만일 그대들이 제방(諸方)에서 ‘대승의 불법은 사구를 여의고 백비를 끊는 것이다.’라고 앵무새처럼 흉내나 내고, 제방에서도 그런 식으로 받아들인다면, 지옥으로 쏜살같이 들어가리라.[入地獄如箭射.]”

서산대사에 얽힌 꿈이야기

서산대사의 어머니께서 오십이 가까워가던 어느 날 창가에서 잠깐 잠이 들었다가, 한 노파가 장부(丈夫)의 잉태(孕胎)를 알리며 축하하는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또한 아들이 세 살 되던 해 이번에는 아버지께서 낮잠을 자다가 한 노인이 나타나 “이 아이의 이름을 운학(雲鶴)이라고 지으십시요.”라는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서산대사께서는 꿈에서 예견한 운학이란 이름대로 조선팔도를 구름처럼 행각하시면서 학(鶴)처럼 고고(孤高)한 삶을 사셨던 것 같습니다.
또한 서산대사께서 금강산을 지나다가 ‘꿈같은 삶’을 꿰뚫어 보시고 지은 ‘삼몽사(三夢詞)’도 함께 음미하면 좋을 것 같네요. “주인이 길손에게 꿈을 이야기하자/ 길손도 주인에게 꿈을 이야기하네./ 지금 꿈을 이야기하고 있는 두 사람/ 역시 모두 다 꿈속의 사람들이라네. [主人夢說客 客夢說主人. 今說二夢客 亦是夢中人.]” 

한편 서산대사는 원적암(圓寂庵)에서 마지막 설법을 마친 다음 제자에게 붓을 가져오게 하여 자신의 모습을 그린 영정(影幀)에 다음과 같이 ‘그림 속의 그와 나는 과연 같은가 다른가?’란 화두 같은 임종게(臨終偈)를 남기시고 입적하셨습니다.
“80년 전에는 그[渠]가 나이더니/ 80년 뒤에는 내가 그로구나. [八十年前渠是我 八十年後我是渠.]”

열반송: 오직 한 글자, ‘夢’ 

끝으로 일본 임제종의 다쿠앙 소호(澤庵宗彭, 1573-1645) 선사가 입적(入寂)하기 전 제자들에게 남긴, 장례식을 매우 간소하게 하라는 유계(遺戒)와 열반송을 함께 새기고자 합니다. 먼저 그의 유계(遺戒)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죽은 후 자의(紫衣)를 입은 나의 영정(影幀)을 걸지 말라. 일원상(一圓相)을 나의 영정으로 대신하고 향 한 대 피우는 정도만 허용하라. 부의(賻儀)를 가져온 자가 있다면 그것이 설사 좁쌀처럼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받지 말라. 내가 죽으면 밤중에 조용히 산에 메고 가 땅에 깊이 파묻고 두 번 다시 그곳을 찾아서는 안 된다. 절 안팎에 나를 기리는 석물(石物)을 절대로 세우지 말라. 특히 기일(忌日)에도 추모식(追慕式)을 열지 말라.”
한편 그는 이처럼 길이 선가(禪家)의 귀감(龜鑑)이 되는 진솔한 유계를 부탁한 후, 1645년 12월 11일 그는 앓아눕게 됩니다. 그 다음해 1월 27일 주위에는 제자들이 스승의 임종(臨終)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스승께 수행하는 제자들을 위해 게송(偈頌)을 남겨줄 것을 간절히 청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의 간청에 붓을 들어 ‘夢[꿈]’이란 한 글자를 크게 쓰고 숨을 거두셨다고 합니다. (김현용 지음 <다쿠앙 소호의 부동지신묘록 연구>에서 인용)

군더더기: 이처럼 다쿠앙 선사께서는 유계와 열반송을 통해 ‘삶은 꿈’이니 ‘나 죽은 다음 관행적인 요란한 장례식과 사리탑이니 부도탑이니 비석이니 하는 일체의 행위는 역시 꿈속의 일이니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는 엄명을 내리셨다고 여겨집니다. 좀 더 부연하자면 필자의 견해로는 <금강경(金剛經)>의 “존재하는 모든 것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도 같고 또한 번개와도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꿰뚫어볼지니라.[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란 게송 가운데에서도 핵심이라 할 수 있는 ‘夢’을, 우리 모두 온몸으로 체득할 수 있다면 누구나 함께 더불어 통찰과 나눔이 둘이 아닌 ‘향상일로(向上一路)’를 저절로 걷게 될 것이라 제창하셨다고 사료됩니다. 

끝으로 각계각층의 지도층 인사들이 ‘삶은 꿈’이라는 가르침을 온몸에 새기면서, 날마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에 중독된 채 ‘동상이몽(同床異夢)’할 것이 아니라, ‘이상동몽(異床同夢)’, 즉 몸담은 소속은 달라도 함께 더불어 대한민국뿐만이 아니라 지구촌공동체의 향상을 위해, 온몸을 던져 헌신하려는 같은 꿈을 꾸시기를 간절히 염원해 봅니다.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1989년 8월까지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9년 9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서강대 물리학교 명예교수이다.
1975년 10월 선도회 종달 이희익 선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선사의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 선사로부터 두 차례 점검을 받았다. 1990년 6월 종달 선사 입적 후 지금까지 선도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편저에 <온몸으로 돕는 지구촌 길벗들>(마음살림, 2021)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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