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에 대한 기억 '가야산 호랑이를 만나다'
성철스님에 대한 기억 '가야산 호랑이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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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5.23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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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들아! 밥 값 내 놔라!" 게으른 수좌들에 무섭게 호통

지난해말 법보신문과 대한불교진흥원이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가장 존경하는 스님으로 성철 스님이 꼽혔다. 열반에 든 지 13년이 흘렀지만, 스님은 아직도 불자들로부터 이처럼 절대적인 지지와 존경을 받고 있다. 생전의 스님은 중생과 그리 많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다. 그 때문인지 신비한 존재, 섣불리 범접하기 어려운 엄한 존재로 인식돼 왔다. 과연 그것만이 스님의 모습이었을까.

생전의 스님과 인연을 맺은 불자 11명이 스님과 얽힌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가야산 호랑이를 만나다’(도서출판 아름다운인연)를 통해서다. 과장되지 않은 솔직한 기억이, 스님의 인간적인 면모를 느끼게 한다.

조계종 종정 법전스님이 성철 스님을 만난 것은 1949년 봄이었다. 수행 공부를 하려고 찾아간 그에게 성철 스님이 준 화두는 ‘무엇이 너의 송장을 끌고 왔느냐’였다. 어느 순간 깨달음에 이른 느낌이 찾아왔는데, 그날 저녁 성철 스님이 불러 “송장을 끌고 다니는 놈이 어떤 놈이냐?”라고 물었다. 법전 스님이 오른쪽 주먹을 내밀자 성철 스님이 “말로 해라”고 했고 법전 스님이 왼쪽 주먹을 내밀자 성철 스님이 다시 “주먹을 내놓지 말고 말로 얘기를 해봐라”고 했다.

이에 법전 스님이 “아이고, 아이고!”하며 소리를 지르자 성철 스님이 마당으로 끌고 나가 얼음물을 덮어 씌웠다. 성철 스님은 이어 선방을 왔다 갔다 하며 벽력 같은 고함을 질렀다. “이 놈들아! 밥값 내놓아라.” 스님은 한 수좌(간화선 수행승)에게 물을 끼얹고 옆에 있던 스님 머리에는 향로를 덮어 씌웠다. 소동은 전적으로 법전 스님 때문에 일어났다. 나이도 어리고 결사에도 늦게 동참한 법전 스님이 저렇게 열심히 공부하는데 너희들은 무엇 하느냐는 무언의 경책이었다.

스님을 친견하려면 3,000배를 해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사업 번창이나 복을 빌러 온 사람에게 스님은 참회의 절을 하도록 권했던 것이다.

김선근 동국대 교수는 대학 신입생 때인 65년 8월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구도회원들과 법회 도중 스님을 처음 만났다. 그런데 스님은 학생들을 만나는 대신 조건을 내걸었다. 3,000배를 먼저 하라는 것이었다. 8월의 맹렬한 더위 속에서도 학생들은 스님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7시간 30분 동안이나 절을 했는데 도중에 여러 명이 졸도했다.

장성욱 동의대 교수도 중학생 시절, 부모님 손에 이끌려 스님을 찾아갔다가 눈물, 콧물 흘리며 3,000배를 한 기억이 있다. 대학 1학년 때 다시 스님을 찾아갔다가 또 다시 3,000배를 해야 했다. 함께 간 친구도 처음 3,000배를 했는데 몇 번이나 나뒹굴었다. 그 친구는 이후 사흘동안 운신을 못했다. 현승훈 화승그룹 회장 역시 가족과 함께 스님을 찾아갔다가 3,000배를 하지 않으면 만나주지 않겠다고 해서 포기하려 한 적이 있다.

“밥 값 내 놔라”는 여러 스님에게 했던 말이다. 조계종 전 전계대화상(계율을 전하는 큰 스님) 일타스님은 이렇게 회상했다. “하안거, 동안거 도중 실시하는 용맹정진은 칠일 밤낮을 눕지 않고 자지 않는 목숨을 건 정진이다. 그런데 졸음을 이기지 못해 졸고 있거나 졸음을 피해 잠깐 다른 방에 드러누워 있기라도 하면 여지없이 스님의 몽둥이가 날아왔다. ‘일라라, 이 돼지 새끼들아’ 혹은 ‘밥값 내 놔라. 이 도적놈들아’ 이런 육두문자와 섞여서….”

하지만 스님은 확실히 다른 데가 있었다. 그를 한번이라도 만난 사람은 그 형형한 눈빛과 박식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설법을 할 때는 물리학 기하학 심리학 지식을 인용했고, 혼자서 티베트어 산스크리트어 영어 독일어 일본어 등을 익혔다. 만물박사, 세상 천지 모르는 것이 없다는 소리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도를 얻기 위해 10년간 장좌불와(長座不臥)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오랫동안 성철 스님을 모신 법전 스님은 그 때를 이렇게 기억했다. “환희로운 시간을 스승 성철 스님이 이끌어 주었음이니 수행자로서 그 은혜가 지중할 뿐이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 기사제공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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