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염집이나 일반 건물물에는 단청을 하지 않는다. 단청은 단순히 건물을 꾸미는 작업이 아니라 공간을 성스럽고 엄숙하게 장식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단청이 법당과 같은 종교 건축물이나 궁궐에만 제한적으로 쓰인 것은 이 때문이다.
지난 20여 년간 200여 곳의 법당 단청 장엄을 사진으로 기록해온 노재학 작가가 단청 장엄 57점을 추려 선보인다.
재단법인 문화유산회복재단(이사장 이상근)은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일곱 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지 3주년을 기념해 6월 23일부터 29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경인미술관 제1전시실에서 ‘한국의 단청, 화엄’ 사진전을 개최한다. 2019년 6월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세계유산 등재 1주년을 기념해 열린 전시회에 이은 두 번째 기획전이다. 1주년 기념전이 사찰벽화 중심이었다면, 이번 전시의 주인공은 법당을 화려하게 장엄한 꽃 단청문양이다. “한국 전통사찰의 꽃 단청장엄을 집대성한 첫 사진전”이라는 게 기념전을 개최한 문화유산회복재단의 전언이다.
단청은 색채 중심의 미술이지만 그 바탕을 이루는 것은 문양(文樣)이다. 법당의 꽃 단청문양은 불교의 가르침을 상징한다. 문자로 집대성한 가르침이 팔만대장경이라면, 조형언어로 구현한 가르침은 법당의 단청문양이다. 법당을 장엄한 이 땅의 단청장들은 부처님 가르침을 연꽃, 모란, 국화 등 꽃을 방편 삼아 펼쳐 놓았다. 꽃의 이미지로 디자인한 단청문양 속에 경전과 진언, 범자 씨앗, 불보살의 존명을 심어 진리의 법과 불국토를 펼친 것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궁궐과 유가건축의 단청 사진 4장도 함께 선보여 단청장엄을 서로 비교해 볼 수 있도록 했다.
노재학 작가는 전시기간 동안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3시 하루 두 차례 관람객에게 직접 작품을 해설하는 자리를 갖는다.
노재학 작가는 “꽃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한다. 고귀한 단청의 꽃이 코로나에 지친 국민을 색채심리로 위로하고, 또 고유한 전통문화를 공유함으로써 한국인의 자부심을 고양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한 송이 꽃에 담긴 ‘화엄’을 통해 한 티끌 속에도 우주가 있고, 우리 모두는 연결돼 있는 진리의 꽃비에 젖기를 바랄 따름”이라고 말했다.
한편, 노재학 작가는 전시회 개막에 맞춰 《한국의 단청》 1권 ‘화엄의 꽃’(미진사)을 출간했다. 이 책은 511쪽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의 꽃 단청문양 해설서로, ‘한국의 단청’ 사진전의 내용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전시 해설서이기도 하다. ‘화엄의 꽃’은 노재학 작가의 단청 사진을 집대성한 총 6권의 《한국의 단청》 시리즈 중 첫 권이다.
노재학 작가는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후 사진과 건축, 불교철학, 미술사학 분야를 독학했다. 여러 분야를 배우며 익힌 안목과 사유체계로 지난 20여 년간 단청문양에 담긴 형이상의 상징체계를 실증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해 오고 있다. 2019년엔 재단법인 문화유산회복재단과 함께 서울, 부산, 대구, 전주 등지에서 ‘한국산사의 단청 문양 전국순회 사진전’을 가졌다. 저서로 《한국산사의 단청세계》(미술문화, 2019), 《한국의 단청》 1권 ‘화엄의 꽃’(미진사, 2021)이 있다.
※ 이 기사는 제휴매체인 <불교저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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