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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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안 스님
  • 승인 2021.05.27 14:3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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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현안 스님의 수행이야기




 

나는 예전부터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시끄럽고 정신없게 하는걸 반기지 않았습니다. 내 은사 스님이신 미국 위산사 영화 스님은 참선하는 시간이나 법문하시는 도중에도 아이들이 시끄럽게 하거나 돌아다니고, 장난을 쳐도 그냥 두게 하셨습니다. 처음 참선을 배울땐 다리 아픈 것도 감당하지 못해서 그런 아이들이 법당에 있으면 속이 다 시끄러웠습니다. 그렇게 마음은 너무 시끄러웠지만 아무말도 할 수 없이 계속 참아야만 했습니다. 내 마음은 끊임없이 불평했습니다. 왜 저렇게 시끄럽게 하는걸까, 그냥 냅둬도 될까? 다른 사람에게 방해될텐데, 저 아이들의 부모는 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일까 등 셀수없이 많은 생각이 나의 마음을 어지럽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아이들의 소리보다 내 마음 속 소리가 더 시끄럽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미국 위산사를 포함한 영화 스님의 미국 도량에는 간난 아기부터 청소년까지 많은 아이들이 옵니다. 한국 보산사에도 아이들이 조금씩 오기 시작했습니다. 영화 스님은 법문 시간에 아이들이 똑바로 앉아서 듣지 않더라도 그냥 두라고 하셨습니다. 간난 아기도 되도록이면 자주 데려오면 좋다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이 집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법문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스펀지처럼 주변의 모든걸 흡수하고 있습니다. 나는 수년간 절에서 아이들이 변해가는 과정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자연스레 참선을 하기 시작했고, 어느날부터 어른들이 하는 예불, 염불, 신주수행도 따라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다 외우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예불할 때 장난치고 놀다가도 언제부터인가 스님 뒤로 졸졸 따라다니면서 신나게 따라합니다. 청소년이 된 어떤 아이들은 진지하게 앉아서 참선을 하고, 법문 시간에 귀기울여 들으면서 심각한 표정을 하고 질문도 합니다. 







 

미국 위산사의 아이들은 얼핏보면 자유분방하고 버릇없게 보일 수 있지만 이들의 선함과 바른 마음이 점점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에 떨면서 어른들 앞에서 혼날까봐 바른 모습을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어른들이 변함에 따라서 아이들도 진화하고 있었습니다. 수행자와 도량의 환경에 노출된 아이들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하여 성숙해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천방지축으로 거짓말을 하고, 나쁜 행동과 말을 하는데 그냥 방치하라는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어떻게 아이들을 바른 길로 이끌 수 있을까요? 영화 스님은 일단 아이들이 실수를 하게 둬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들이 실수하기도 이전에 잘못을 지적하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가 보지 않는 곳에서 원하는대로 할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무조건 꾸짖으면서 옳고 그름을 설교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은 아닙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가르침은 우리가 먼저 좋은 본보기가 되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내면 깊숙이 편안하고 즐거운 사람이 되면 아이들도 따라할 것입니다. 







 

한국 보산사에도 어린 아이와 함께 절에 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돌아다니려고 하거나 시끄럽게 하면 부모님들은 먼저 아이들에게 조용히하라고 꾸짖거나 법당 밖으로 아이를 데리고 나가버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이 법당에서 자유롭게 놀 수 있게 두라고 말합니다. 아이들이 불법에 더 많이 노출될수록, 절에서의 경험이 긍정적일 수록 좋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예불하는 동안 아이들이 더 시끄럽게 떠들고 장난을 칠수록 우리들에게도 좋은 훈련입니다. 아이들은 우리의 집중력 즉 선정의 힘과 인내심을 끊임없이 테스트하고 있습니다.  

선(禪)은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유익하고 유용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아이들은 몸이 유연하니 결가부좌도 쉽게 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생각이 단순하기 때문에 오히려 결가부좌로 앉는 것에 스스로 관심이 생겨야만 할 수 있습니다. 결가부좌로 앉았을 때 그 경험이 좋아야만 또 하려고 할겁니다. 아직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3~4살짜리 아이들에게 결가부좌 자세로 앉을 수 있게 도와줬는데, 한번 해보고 또 하고 싶은지 물어보면 재빨리 나에게 달려와서 또 해보려고 합니다. 그건 결가부좌 자세로 앉았을 때 좋은 기분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대수롭지 않게 보일 수 있지만 이것은 아이에게는 큰 선물입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힘든 일이 생기면 몸으로 느꼈던 이 좋은 기억이 되살아나서, 다시 앉아보거나 절에 찾아와 도움을 청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선사의 법문 참고 유튜브 링크 


 

 

나는 예전부터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시끄럽고 정신없게 하는걸 반기지 않았습니다. 내 은사 스님이신 미국 위산사 영화 스님은 참선하는 시간이나 법문하시는 도중에도 아이들이 시끄럽게 하거나 돌아다니고, 장난을 쳐도 그냥 두게 하셨습니다. 처음 참선을 배울땐 다리 아픈 것도 감당하지 못해서 그런 아이들이 법당에 있으면 속이 다 시끄러웠습니다. 그렇게 마음은 너무 시끄러웠지만 아무말도 할 수 없이 계속 참아야만 했습니다. 내 마음은 끊임없이 불평했습니다. 왜 저렇게 시끄럽게 하는걸까, 그냥 냅둬도 될까? 다른 사람에게 방해될텐데, 저 아이들의 부모는 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일까 등 셀수없이 많은 생각이 나의 마음을 어지럽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아이들의 소리보다 내 마음 속 소리가 더 시끄럽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미국 위산사를 포함한 영화 스님의 미국 도량에는 간난 아기부터 청소년까지 많은 아이들이 옵니다. 한국 보산사에도 아이들이 조금씩 오기 시작했습니다. 영화 스님은 법문 시간에 아이들이 똑바로 앉아서 듣지 않더라도 그냥 두라고 하셨습니다. 간난 아기도 되도록이면 자주 데려오면 좋다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이 집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법문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스펀지처럼 주변의 모든걸 흡수하고 있습니다. 나는 수년간 절에서 아이들이 변해가는 과정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자연스레 참선을 하기 시작했고, 어느날부터 어른들이 하는 예불, 염불, 신주수행도 따라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다 외우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예불할 때 장난치고 놀다가도 언제부터인가 스님 뒤로 졸졸 따라다니면서 신나게 따라합니다. 청소년이 된 어떤 아이들은 진지하게 앉아서 참선을 하고, 법문 시간에 귀기울여 들으면서 심각한 표정을 하고 질문도 합니다. 





 

나는 예전부터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시끄럽고 정신없게 하는걸 반기지 않았습니다. 내 은사 스님이신 미국 위산사 영화 스님은 참선하는 시간이나 법문하시는 도중에도 아이들이 시끄럽게 하거나 돌아다니고, 장난을 쳐도 그냥 두게 하셨습니다. 처음 참선을 배울땐 다리 아픈 것도 감당하지 못해서 그런 아이들이 법당에 있으면 속이 다 시끄러웠습니다. 그렇게 마음은 너무 시끄러웠지만 아무말도 할 수 없이 계속 참아야만 했습니다. 내 마음은 끊임없이 불평했습니다. 왜 저렇게 시끄럽게 하는걸까, 그냥 냅둬도 될까? 다른 사람에게 방해될텐데, 저 아이들의 부모는 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일까 등 셀수없이 많은 생각이 나의 마음을 어지럽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아이들의 소리보다 내 마음 속 소리가 더 시끄럽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미국 위산사를 포함한 영화 스님의 미국 도량에는 간난 아기부터 청소년까지 많은 아이들이 옵니다. 한국 보산사에도 아이들이 조금씩 오기 시작했습니다. 영화 스님은 법문 시간에 아이들이 똑바로 앉아서 듣지 않더라도 그냥 두라고 하셨습니다. 간난 아기도 되도록이면 자주 데려오면 좋다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이 집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법문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스펀지처럼 주변의 모든걸 흡수하고 있습니다. 나는 수년간 절에서 아이들이 변해가는 과정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자연스레 참선을 하기 시작했고, 어느날부터 어른들이 하는 예불, 염불, 신주수행도 따라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다 외우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예불할 때 장난치고 놀다가도 언제부터인가 스님 뒤로 졸졸 따라다니면서 신나게 따라합니다. 청소년이 된 어떤 아이들은 진지하게 앉아서 참선을 하고, 법문 시간에 귀기울여 들으면서 심각한 표정을 하고 질문도 합니다. 







 

미국 위산사의 아이들은 얼핏보면 자유분방하고 버릇없게 보일 수 있지만 이들의 선함과 바른 마음이 점점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에 떨면서 어른들 앞에서 혼날까봐 바른 모습을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어른들이 변함에 따라서 아이들도 진화하고 있었습니다. 수행자와 도량의 환경에 노출된 아이들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하여 성숙해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천방지축으로 거짓말을 하고, 나쁜 행동과 말을 하는데 그냥 방치하라는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어떻게 아이들을 바른 길로 이끌 수 있을까요? 영화 스님은 일단 아이들이 실수를 하게 둬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들이 실수하기도 이전에 잘못을 지적하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가 보지 않는 곳에서 원하는대로 할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무조건 꾸짖으면서 옳고 그름을 설교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은 아닙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가르침은 우리가 먼저 좋은 본보기가 되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내면 깊숙이 편안하고 즐거운 사람이 되면 아이들도 따라할 것입니다. 







 

한국 보산사에도 어린 아이와 함께 절에 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돌아다니려고 하거나 시끄럽게 하면 부모님들은 먼저 아이들에게 조용히하라고 꾸짖거나 법당 밖으로 아이를 데리고 나가버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이 법당에서 자유롭게 놀 수 있게 두라고 말합니다. 아이들이 불법에 더 많이 노출될수록, 절에서의 경험이 긍정적일 수록 좋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예불하는 동안 아이들이 더 시끄럽게 떠들고 장난을 칠수록 우리들에게도 좋은 훈련입니다. 아이들은 우리의 집중력 즉 선정의 힘과 인내심을 끊임없이 테스트하고 있습니다.  

선(禪)은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유익하고 유용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아이들은 몸이 유연하니 결가부좌도 쉽게 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생각이 단순하기 때문에 오히려 결가부좌로 앉는 것에 스스로 관심이 생겨야만 할 수 있습니다. 결가부좌로 앉았을 때 그 경험이 좋아야만 또 하려고 할겁니다. 아직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3~4살짜리 아이들에게 결가부좌 자세로 앉을 수 있게 도와줬는데, 한번 해보고 또 하고 싶은지 물어보면 재빨리 나에게 달려와서 또 해보려고 합니다. 그건 결가부좌 자세로 앉았을 때 좋은 기분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대수롭지 않게 보일 수 있지만 이것은 아이에게는 큰 선물입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힘든 일이 생기면 몸으로 느꼈던 이 좋은 기억이 되살아나서, 다시 앉아보거나 절에 찾아와 도움을 청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선사의 법문 참고 유튜브 링크 


 

 

미국 위산사의 아이들은 얼핏보면 자유분방하고 버릇없게 보일 수 있지만 이들의 선함과 바른 마음이 점점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에 떨면서 어른들 앞에서 혼날까봐 바른 모습을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어른들이 변함에 따라서 아이들도 진화하고 있었습니다. 수행자와 도량의 환경에 노출된 아이들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하여 성숙해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천방지축으로 거짓말을 하고, 나쁜 행동과 말을 하는데 그냥 방치하라는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어떻게 아이들을 바른 길로 이끌 수 있을까요? 영화 스님은 일단 아이들이 실수를 하게 둬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들이 실수하기도 이전에 잘못을 지적하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가 보지 않는 곳에서 원하는대로 할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무조건 꾸짖으면서 옳고 그름을 설교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은 아닙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가르침은 우리가 먼저 좋은 본보기가 되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내면 깊숙이 편안하고 즐거운 사람이 되면 아이들도 따라할 것입니다. 





 

나는 예전부터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시끄럽고 정신없게 하는걸 반기지 않았습니다. 내 은사 스님이신 미국 위산사 영화 스님은 참선하는 시간이나 법문하시는 도중에도 아이들이 시끄럽게 하거나 돌아다니고, 장난을 쳐도 그냥 두게 하셨습니다. 처음 참선을 배울땐 다리 아픈 것도 감당하지 못해서 그런 아이들이 법당에 있으면 속이 다 시끄러웠습니다. 그렇게 마음은 너무 시끄러웠지만 아무말도 할 수 없이 계속 참아야만 했습니다. 내 마음은 끊임없이 불평했습니다. 왜 저렇게 시끄럽게 하는걸까, 그냥 냅둬도 될까? 다른 사람에게 방해될텐데, 저 아이들의 부모는 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일까 등 셀수없이 많은 생각이 나의 마음을 어지럽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아이들의 소리보다 내 마음 속 소리가 더 시끄럽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미국 위산사를 포함한 영화 스님의 미국 도량에는 간난 아기부터 청소년까지 많은 아이들이 옵니다. 한국 보산사에도 아이들이 조금씩 오기 시작했습니다. 영화 스님은 법문 시간에 아이들이 똑바로 앉아서 듣지 않더라도 그냥 두라고 하셨습니다. 간난 아기도 되도록이면 자주 데려오면 좋다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이 집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법문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스펀지처럼 주변의 모든걸 흡수하고 있습니다. 나는 수년간 절에서 아이들이 변해가는 과정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자연스레 참선을 하기 시작했고, 어느날부터 어른들이 하는 예불, 염불, 신주수행도 따라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다 외우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예불할 때 장난치고 놀다가도 언제부터인가 스님 뒤로 졸졸 따라다니면서 신나게 따라합니다. 청소년이 된 어떤 아이들은 진지하게 앉아서 참선을 하고, 법문 시간에 귀기울여 들으면서 심각한 표정을 하고 질문도 합니다. 







 

미국 위산사의 아이들은 얼핏보면 자유분방하고 버릇없게 보일 수 있지만 이들의 선함과 바른 마음이 점점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에 떨면서 어른들 앞에서 혼날까봐 바른 모습을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어른들이 변함에 따라서 아이들도 진화하고 있었습니다. 수행자와 도량의 환경에 노출된 아이들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하여 성숙해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천방지축으로 거짓말을 하고, 나쁜 행동과 말을 하는데 그냥 방치하라는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어떻게 아이들을 바른 길로 이끌 수 있을까요? 영화 스님은 일단 아이들이 실수를 하게 둬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들이 실수하기도 이전에 잘못을 지적하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가 보지 않는 곳에서 원하는대로 할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무조건 꾸짖으면서 옳고 그름을 설교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은 아닙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가르침은 우리가 먼저 좋은 본보기가 되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내면 깊숙이 편안하고 즐거운 사람이 되면 아이들도 따라할 것입니다. 







 

한국 보산사에도 어린 아이와 함께 절에 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돌아다니려고 하거나 시끄럽게 하면 부모님들은 먼저 아이들에게 조용히하라고 꾸짖거나 법당 밖으로 아이를 데리고 나가버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이 법당에서 자유롭게 놀 수 있게 두라고 말합니다. 아이들이 불법에 더 많이 노출될수록, 절에서의 경험이 긍정적일 수록 좋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예불하는 동안 아이들이 더 시끄럽게 떠들고 장난을 칠수록 우리들에게도 좋은 훈련입니다. 아이들은 우리의 집중력 즉 선정의 힘과 인내심을 끊임없이 테스트하고 있습니다.  

선(禪)은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유익하고 유용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아이들은 몸이 유연하니 결가부좌도 쉽게 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생각이 단순하기 때문에 오히려 결가부좌로 앉는 것에 스스로 관심이 생겨야만 할 수 있습니다. 결가부좌로 앉았을 때 그 경험이 좋아야만 또 하려고 할겁니다. 아직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3~4살짜리 아이들에게 결가부좌 자세로 앉을 수 있게 도와줬는데, 한번 해보고 또 하고 싶은지 물어보면 재빨리 나에게 달려와서 또 해보려고 합니다. 그건 결가부좌 자세로 앉았을 때 좋은 기분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대수롭지 않게 보일 수 있지만 이것은 아이에게는 큰 선물입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힘든 일이 생기면 몸으로 느꼈던 이 좋은 기억이 되살아나서, 다시 앉아보거나 절에 찾아와 도움을 청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선사의 법문 참고 유튜브 링크 


 

 

한국 보산사에도 어린 아이와 함께 절에 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돌아다니려고 하거나 시끄럽게 하면 부모님들은 먼저 아이들에게 조용히하라고 꾸짖거나 법당 밖으로 아이를 데리고 나가버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이 법당에서 자유롭게 놀 수 있게 두라고 말합니다. 아이들이 불법에 더 많이 노출될수록, 절에서의 경험이 긍정적일 수록 좋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예불하는 동안 아이들이 더 시끄럽게 떠들고 장난을 칠수록 우리들에게도 좋은 훈련입니다. 아이들은 우리의 집중력 즉 선정의 힘과 인내심을 끊임없이 테스트하고 있습니다.  

선(禪)은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유익하고 유용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아이들은 몸이 유연하니 결가부좌도 쉽게 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생각이 단순하기 때문에 오히려 결가부좌로 앉는 것에 스스로 관심이 생겨야만 할 수 있습니다. 결가부좌로 앉았을 때 그 경험이 좋아야만 또 하려고 할겁니다. 아직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3~4살짜리 아이들에게 결가부좌 자세로 앉을 수 있게 도와줬는데, 한번 해보고 또 하고 싶은지 물어보면 재빨리 나에게 달려와서 또 해보려고 합니다. 그건 결가부좌 자세로 앉았을 때 좋은 기분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대수롭지 않게 보일 수 있지만 이것은 아이에게는 큰 선물입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힘든 일이 생기면 몸으로 느꼈던 이 좋은 기억이 되살아나서, 다시 앉아보거나 절에 찾아와 도움을 청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선사의 법문 참고 유튜브 링크 


 

현안賢安 스님은 미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영화 선사永化禪師(Master YongHua)를 만나 참선을 처음 접한 후 수행 정진해왔으며, 2015년부터는 종교, 인종, 나이 등에 상관없이 누구나 참여하고 배울 수 있는 ‘공원에서의 참선(Chan Meditation in the Park)’이라는 모임을 영화 선사의 지도하에 캘리포니아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이끌었다. 그와 동시에 미국 전역과 캐나다, 콜롬비아, 쿠바 등 전 세계를 다니며 많은 이에게 참선 수행법을 소개해왔다. 영화 선사의 한국 방문 시 동행하면서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고 불법을 더 깊게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미국 위산사 (Wei Mountain Temple)에서 영화 선사를 은사로 출가하였다. 현재는 스승의 뜻에 따라 한국의 보산사寶山寺(Jeweled Mountain Temple)에서 참선 (챤 메디테이션)을 지도하며 수행 정진하고 있다. 저서에 <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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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아니고 어른인데 2021-06-20 23:44:39
아무리 명상 좀 해보려고 앉아 있어도
도통 기분이 좋아지지 않고 지겹기만 하니 체질에 않맞는것 같아요
왜 그렇지요?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저는 움직여야 모든것 이 술술 풀 리고 액티브하게 인생 이 순환되고 그래서
걷기가 좋음
생각이 너무 많아서 늘 행동하기전에 잡념 이 치고 올 라와서 이러다가 하루종일 방구석에서 한발짝도
못 움직이다가 인생 마감하는게 아닌가 겁이 덜컥 나고
집밖을 뛰쳐나가야 뭐라도 하나 건지겠다 싶고
뭐 일이든 깨달음이든 부지런한 새가 산입에 거미줄 안친다
그러잖아요?
속세에 사니 돈버는 선수가 돼야 하는 강박에 몹시 시달 리는
처사신세 어이구 내팔자야 휴 ㆍㆍ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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