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가 탄압을 받은 조선시대에도 <묘법연화경> 등 간행된 불경의 종류가 다양하다. 사찰에서 세도가의 족보를 제작한 사례도 여럿이다. 팔만대장경판을 비롯해서 여러 사찰에서 봉안 중인 경판을 볼 때 스님들이 당대 최고의 필진이자 인쇄기술을 보유했음을 알 수 있다.
사찰에서 발간한 책은 일반적으로 사찰본(寺刹本) 또는 사찰판(寺刹板)이라 하는데, 특정 권 후미에 관계한 스님과 재가자의 이름을 기록했다. 시주(施主)에서부터 역승(役僧)과 각수(刻手), 간기(刊記) 등이 표시되었는데, 관계자들이 20명 내외에서 수십 명에 이르는 것도 있다. 철저한 준비와 분업으로 정성을 다 해서 제작했다는 증거다.
지난 2월 24일에 조계종에서 펴낸 <불교성전>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보도에 따르면 종단본 <불교성전>은 1972년 동국역경원에서 발간한 이후 50년 만이라 한다. 축하해야 할 일인데 개운하지가 않다. <불교성전>이 모습을 드러내자 지난 3월 2일에 전 조계종 불학연구소장 허정 스님이 ‘2021년 종단본 <불교성전>을 비평하다’라는 제목의 글을 자신의 블로그와 <불교닷컴>에 등재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가고 있는데도 포교원이나 필진 중에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으니 허정 스님의 소위 ‘비평’에 이론이 없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필자는 지난해 <불교성전>간행을 주도하는 조계종 최고위급 스님에게 우려되는 바가 있으니 정식으로 내놓기 전에 가본을 수십 부 인쇄해서 참여하지 않은 스님과 불교 학자에게 배포해서 의견을 듣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종단 차원에서 <불교성전>을 제작하려면 그 준비부터가 철저해야 한다. 우선 다수의 불교학자와 관련한 연구기관에 의견을 제시해 줄 것을 요청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연구비나 용역비도 지출해야 한다. 초기의 기획 단계에서 부터 의견 수렴을 광폭, 심층적으로 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직·간접으로 참여자의 폭을 넓히면 자칫 정리에 혼란이 예상되나 중심이 확고하고 적정선을 유지하면 긍정적인 면이 더 많다고 본다.
그리고 필진 중에 직장이 있다면 제작에 소요되는 기간은 휴직을 권고해서 집필에만 전념토록 지원해야 한다. 별도의 집필 장소와 필요한 기기들을 마련해 주고 종단관련 기관의 자료 연람에도 편리를 제공해야 한다. 필진도 분야별로 구분하고 차등을 두어서 비교 검토가 가능토록 해야 한다. 일차 준비가 된 분야는 외부 인사를 초청해서 검증을 겸한 토론의 자리를 마련해서 미진한 부분이 없도록 함은 물론, 참여 폭의 확장으로 그 부대 효과까지도 생산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필진이 시간에 쫒기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향후 <불교성전>은 종단 홈페이지에 전체를 올려서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하며, 영역 등 외국어로 번역도 필요하다. <불교성전>에 대한 아쉬움의 잔영이 쉽게 사라지지가 않는다.
필자는 1994년도에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연구소로 가칭 ‘한국불교정신문화연구원’을 설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고, 이후에도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일이십 년이 걸려도 설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 왔다.
<불교성전>은 불교와 관련한 학술연구소에서 전념해서 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번 <불교성전>의 제작에 일선에서 참여한 분들의 고생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조속한 시일 내에 검토해서 혹여 문제가 있다면 수정해야 한다.
그 방대한 불교문헌에서 핵심을 추려 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불교의 본질을 중심에 두고 대표성과 통일장 그리고 대중성에 착안한다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조만간 참여한 학자들과 허정 스님, 그리고 관심 있는 학자들의 토론의 장을 기대한다.
<불교성전>을 제작하는 그 자체와 과정이 종단적인 수행이고 포교와 홍보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일이 분명하다. <불교성전>에 혹여 문제가 있다면 전적으로 책임자의 몫이다.
法應(불교사회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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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스님의 기고문에 달린 댓글에는 이미령 편찬위원의 참회의 글도 달린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재가수행자이지만, 부처님의 제자로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불교성전.. 첫 술에 배부를 수 없고, 불교성전 편찬 관련하여 사무국장 소임을 보신 스님께서도 분명히 비판 내지 수정사항을 종단에 알려달라고 하셨습니다. 계속 수정해나갈 것이라고 하시면서요.
그러니.. 아마도 비판 받은 부분들에 대해 수정작업을 시작하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하고요.
저는 어쨌든 이번 <불교성전>은 미흡하지만, 정말 고생 많으셨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런저런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여 수정해나가면 되고, 이렇게 하면서 종단이 화합하는 모습으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정말 좋은 기회 아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