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인명부 확정과정에서 종무행정의 헛점을 고스란히 드러내 논란을 빚었던 범어사 주지선거 직후 일부 후보자들이 이의신청을 내 파문이 일고 있다.
덕륜 스님과 광탄 스님은 최근 총무원장, 법규위원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소청신청서를 내고 "교구선관위와 중앙선관위가 종법에 위반하여 선거사무가 이루어짐으로써 재선거가 실시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신청서에 따르면 주지로 당선한 정여 스님(여여선원 선원장)이 밀양시 삼랑진읍에 운영중인 '여여정사'가 미등록 사설사암이어서 종헌 9조3항, 종무원법 등을 위배해 원천적으로 피선거권이 없다는 것이다.
2006년 4월 준공한 여여정사의 일부 토지는 '대한불교조계종 여여정사', 일부는 정여 스님 개인명의로 등기돼 있다. 여여정사의 대웅전과 약사전 등 약 250평에 이르는 법당들은 관할행정관청에 준공검사를 받지 않아 사회법상으로는 미등기 건물이다. 그러나 미등기 건물이라 하더라도 종단에는 등기를 하도록 하고 있어, 건물에 대한 등기는 이미 마쳤다.
밀양시 관계자는 "당시 대웅전 건축허가는 나갔으며 60평이하 소규모여서 이후 준공 부분은 살펴보지 못했고, 약사전은 건축허가 신청도 들어오지 않은 상태"라며 "60평 이상의 건축물을 짓고도 아직까지 준공검사를 득하지 않은 게 사실이면 현장 실사를 통해 강제이행금 부과 등의 행정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현 종헌종법상 준공검사가 나지 않은 상태에서 사설사암으로 등록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수년동안 실질적인 법회를 하면서도 행정관청과 총무원에 고의적으로 등록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여정사 관계자는 "현재 준공검사를 위해 도면 수정 작업중이다"고 말했다.
정여 스님 개인명의로 등록한 토지 등은 '승려는 종단의 공익과 중생 구제의 목적 이외에는 본인이나 세속의 가족을 위하여 개인 명의의 재산을 취득하여서는 아니된다'는 제 30 조의 2를 위반한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등기가 불가능한 전답의 경우 종단에서도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이의신청의 또 다른 내용은 교구선관위원의 자격문제다. 중앙선관위에서도 한 차례 지적이 있었으나 "징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해임되지 아니한다"는 조항을 적용, 미등록 사설사암을 가진 모 교구선관위원의 선거권은 박탈하되 교구선관위원 자격은 '징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자격을 박탈할 수 없다'는 선관위법에 의해 인정했다.
그러나 종무원법 3조에 따르면 교구선관위원도 종무원에 해당하므로 미등록 사설사암을 가진 이 스님은 원천적으로 종무원 자격이 없다는 해석도 엄연히 존재한다. 따라서 교구선관위원 5명 가운데 3명(미등록 사설사암 소유자 포함)의 의결로 진행된 이번 선거과정 자체가 무효화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이번에 선거권을 행사한 스님들 가운데 미등록 사설사암을 소유했거나 재산 미등기 상태인 스님들과 관련한 증거서류들도 소청신청서에 첨부해 제출했다. 이 부분도 산중총회를 무효화할 근거가 될 수도 있다.
이의신청을 한 덕륜 스님은 <불교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일단 종단의 사정기관을 통해 판단을 구하는 게 순서이므로 그 이전에는 아무런 내용도 말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광탄 스님은 이의신청을 한데 이어 최대한 빠른 시일내 사정기관의 판단을 바란다는 내용이 담긴 내용증명을 최근 총무원에 발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계종 법규위원회(위원장 천제)는 14일 오후2시 심판부를 열어 종헌종법 위배여부를 결정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8일 이의신청 수용 여부를 결정한다.
범어사의 한 중진 스님은 "선거절차와 내용에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이의신청을 하는 것이 종도의 권리다"면서도 "이의신청을 낸 스님들이 자칫 범어사의 문중화합을 깨트리거나 불순한 의도를 가지지는 않았는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스님은 "중앙선관위 결정 당시에 이런 내용들을 사전에 올리지 못했던 점과 중앙선관위에서 철저히 검증하지 못했던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정여 스님은 지난 6일 전체 347명의 선거인단 가운데 272명이 참여한 가운데 치르친 투표에서 141표를 차지해 범어사 차기 주지로 당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