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가 의욕적으로 의탁운영하던 중국 항저우(杭州) 고려사의 운영권을 공식적으로 포기한 것은 계약 과정에서 사기를 당해 운영비 등 4억원 가량을 날렸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12일 조계사 관계자에 따르면 조계사는 2007년 5월 산길무역과 협약을 체결하고 조계사 파견직원 10여 명을 두는 등 의욕적으로 순례와 사찰 운영 등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원학 스님이 주지를 맡은 직후 운영권 계약을 포기함으로 '비용' 때문이라는 설이 일부 언론을 통해 제기돼 왔다.
이에 대해 원학 스님은 최근 교계기자들과 간담회 자리를 마련 "운영비 등 공식적으로 집행된 예산만 3억6,000만원을 상회하는 등 총 4억원이 투입됐다"며 "계약서 내용과 운영실태 등을 점검한 결과 어이없는 사실들을 발견, 운영권 계약을 철회했다"고 밝혔다.
원학 스님에 따르면 항저우시 하안관리처에서 복원한 고려사를 재중교포인 장모(여)씨가 항저우시로부터 임대계약을 먼저 맺었다고 한다. 계약 금액은 연간 800여만원. 이어 장씨는 페이퍼컴퍼니인 산길무역을 만들었다. 장씨의 한국 지인이 조계사와 산길무역간 계약 체결을 주선했고 조계사는 고려사 임대료 8,000만원, 파견직원 보시 등 1억원 등 연간 2억5,000만원에서 3억원을 산길무역에 지급키로 했다. 조계사는 임대료 놓고보더라도 10배 이상을 지급한 꼴이 되고 말았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당초에 알던 것과 달리 고려사는 중국 정부에서 사찰로 지정한 것이 아니라 관광지였던 점이다. 조계사는 대웅전을 비롯한 법당과 윤장대 등 법회 관련 시설을 일체 이용할 수 없었으며 요사채 2채만 파견직원용 숙소로 이용할 수 있었다.
중국 종교국에서도 이 사실을 알고 항저우시에 감사를 요청했다. 중국에서 외국인이 종교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종교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이러한 기본적인 규정마저 조계사는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잘못된 초기의 계약도 사태를 악화하는 데 한몫했다고 조계사는 보고있다.
원학 스님은 중국 항저우시 원림국 부국장을 만나 조계사와 계약한 산길무역이 관광사업 실적등이 부족하고 신뢰하기 힘들다는 설명과 함께 항저우시에서 행정적으로 지원할 테니 다른 업체와 계약하라는 말을 듣고 산길무역과 운영권 계약을 철회하기 이르렀다. 원림국 부국장은 현상태에서는 일체의 종교행사는 물론 스님 상주도 불허한다는 얘기도 곁들였다.
조계사는 지난달 24일 고려사에 관한 모든 정리를 끝냈다. 문제는 누가 왜 이런 허무맹랑한 계약을 했느냐다. 원학 스님은 이 부분에 대해 "전 주지인 원담 스님이 계약을 추진했다"고 밝혔다.
총무원은 13일 종무회의를 열고 고려사문제에 대해 논의한다. 총무원은 이 자리에 계약 당사자인 원담 스님의 출석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우에 따라선 원담 스님의 문책론도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고려사는 1085년 중국 송나라에 건너간 의천 스님이 14개월간 머물렀던 사찰이다. 고려로 귀국한 의천 스님이 화엄경과 황금 2,000냥을 시주해 중창한 후 사찰이름도 고려사로 바뀌었다.
고려사가 한중 교류의 오랜 역사를 상징하는 역사적 사찰이자 조계종이 중국과의 협정을 통해 중국 내에서 직접 운영할 수 있게 된 제1호 사찰이라는 의미를 두고 조계사로 하여금 위탁운영토록 결정했다. 위탁운영 중 동포불자회가 생겨나는 등의 변화가 있었으나 사기사건으로 판명남에 따라 동포 불자들만 허탈하게 됐다. 조계사 신도들도 불사를 돕기 위해 순례를 다녀오기도 했다.
한편 계약 당사자로 지목된 원담 스님은 <불교닷컴>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난해 말 처음 고려사 문제를 <불교닷컴>에 제보한 중국 소식통은 "어느 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중국은 종교국에서 정한 규정과 당국의 법률을 철저히 알고 진출해야 한다"며 "조계종 홈페이지에도 나와있는 규정과 절차를 스님들 특유의 '무시주의'로 진행하다보니 생긴 일이고, 그런 점에서 재산 몰수 위기와 외환관리법 위반설까지 흘러나오는 수월정사 불사과정도 이번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