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에 눈이 멀어 환경 재앙마저도 불사하며 국토를 훼손하는 행위는 법신(法身)에 위해를 가하는 일입니다. 사사물물이 법신의 현현이기 때문입니다."
조계종 특별선원 봉암사 대중들이 18일 한반도대운하를 반대하며 이같은 내용의 성명서를 언론사에 전달했다. 일반인의 출입을 엄금할 정도로 수행정진만을 해오던 봉암사가 사회정책에 대해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불교계의 한반도대운하 반대운동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봉암사 스님들은 해탈, 생명, 민주주의 등 3가지 관점에서 한반도대운하를 반대한다고 천명하고 '대운화 계획 철회를 위한 종교인 생명평화순례를 지지하는 봉암사 대중의 뜻'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스님들은 성명서를 통해 "불살생을 계율의 으뜸으로 삼는 불제자로서, 수많은 생명체의 목숨을 앗을 것이 분명한 대운하 건설 계획은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대중의 뜻"이라며 "지난해 봉암사 결사 60주년을 맞아 제2의 결사를 다짐하며 천명한 실천지침 중 하나인 수행의 생활화와 사회화의 연속선상에서 대운하 계획이 백지화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봉암사 스님들은 종단 스님들의 동참도 호소했다. 성명서는 "조계종단의 스님들께서는 부디 밝고 깊은 가르침을 내리시어, 이 땅에 자비의 당간을 세워주십시오"라며 "세간의 일이라 하여 침묵하는 것은 불조를 외면하는 일임을 일깨워 줄"것과 "반생명의 현장을 묵인하는 것은 출가 수행자로서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행위임을 깨닫게 해 줄"것을 요청했다.
다음은 봉암사 대중일동의 성명서 전문이다.
봉암사 대중은 한반도대운하 건설을 반대합니다. 개구즉착(開口卽錯). '입 벙긋 하는 순간 어긋난다' 하였으나, 이는 오로지 '해탈'과 무관한 희론(戱論)을 경계한 것인즉, 무너져 내리는 세간을 바로잡을 언어의 방편을 쓰는 일에 주저할 까닭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봉암사 대중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대운하 건설을 반대합니다. 1. '해탈'의 관점에서 한반도대운하를 반대합니다. 2. '생명'의 관점에서 한반도대운하를 반대합니다. 3.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한반도대운하를 반대합니다. |
대운화 계획 철회를 위한 '종교인 생명평화순례'를 지지하는 조계종립 특별선원 봉암사 대중의 뜻 한반도 대운하 논란, 무릇 선문(禪門)에 든 납자(衲子)의 궁극처는 구름과 짝한 청산의 초막이 아닙니다. 적멸(寂滅)의 즐거움도 탐착하지 말아야 하거늘, 어찌 세간 밖을 노니는 일로써 한도인(閑道人)인 양 하겠습니까? 다만 노심초사 공부 길을 점검하며 처신을 삼갈 따름입니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 계획으로 온 나라가 어수선합니다. 이에 종교환경회의는 반생명적 개발의 광풍을 생명과 평화의 숨결로 되돌리고자, 100일 동안 대운하 예정지를 걷는 순례의 길에 나섰습니다. 하여 우리 봉암사 대중들은 이들의 생명평화순례를 온 마음으로 지지하면서, 이번 순례를 계기로 우리 사회 전반에 팽배한 반목과 질시, 탐욕을 부채질하는 무한 경쟁의 냉랭한 기운이 자비의 온기로 승화되기를 기원합니다. 스스로 살펴 보건대 아직 일대사를 마치지 못한 입장에서 감히 '입전수수'를 운위할 때는 아닙니다. 하지만 수많은 생명이 죽음으로 내몰릴 것이 명백한데도 수수방관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세간이 무너지는 데 출세간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예토가 없으면 정토도 없는 법, 모름지기 우리 대중은 부처님께서 밝히신 연기법(緣起法)에 비추어 우리의 행동이 불조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투철할 따름입니다. 1. 불살생(不殺生)을 계율의 으뜸으로 삼는 불제자로서, 수많은 생명체의 목숨을 앗을 것이 분명한 대운하 건설 계획은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대중의 뜻입니다. 2. 조계종단의 스님들께서는 부디 밝고 깊은 가르침을 내리시어, 이 땅에 자비의 당간을 세워주십시오. 세간의 일이라 하여 침묵하는 것은 불조를 외면하는 일임을 일깨워 주십시오. 반생명의 현장을 묵인하는 것은 출가 수행자로서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행위임을 깨닫게 해 주십시오. 3. 아무리 불살생의 계율에 투철해도 육신을 유지하는 일은 본시 다른 생명에 빚지는 일입니다. 그래서 참회와 금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탐욕에 눈이 멀어 환경 재앙마저도 불사하며 국토를 훼손하는 행위는 법신(法身)에 위해를 가하는 일입니다. 사사물물이 법신의 현현이기 때문입니다. 4. 우리 봉암사 대중들은 지난 해 '봉암사 결사 60주년'을 맞아 제2의 결사를 다짐하며 3대 실천 지침을 천명한 바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수행의 생활화와 사회화'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수행력을 사회에 되돌리자고 결의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 결의의 연장선상에서 대운하 계획이 백지화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5. 우리는 대운하 계획과 관련된 누구도 탓하지 않을 것입니다. 공업의 소산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일을 계기로 현대 문명이 처한 '대량소비의 위기'와 '욕망의 위기'가 문명 전환의 관점에서 조화와 절제, 돌봄과 공존의 문화로 승화되기를 발원합니다. 불기 2552년 2월 18일 조계종립특별선원 희양산 봉암사 대중 일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