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인터뷰] 부처의 10대 제자 `善現` 수보리
[가상인터뷰] 부처의 10대 제자 `善現` 수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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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5.04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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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공 같은 못된 성질에서 `空` 깨닫고 善人의 대명사로
■ 수보리(須菩提)

부처님 10대 제자 중의 한 사람.

코살라국 사위성 사람으로 큰 부자의 아들이며 바라문 출신이었다.

산스크리트어로는 ‘수부티’(Subhūti)라고 하는데 그 어원상의 의미가 ‘착한 존재’라서 수보리는 ‘선현’(善現), ‘선길’(善吉), ‘선업’(善業)의 이름으로 의역되기도 했다.

제자들 중에서 누구보다도 공(空) 사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 일컬어지고 ‘공생’(空生)이라는 별칭을 갖는다.

초기 대승경전인 ‘금강경’(金剛經) 에서는 부처님께 깨달음과 지혜에 관해 묻고 답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금강경’ 및 그 이전의 초기 경전에서 부처님은 수보리를 ‘다툼이 없이 머무는 자들 가운데서 제일’이라고 칭찬했다. 다툼이 없는 이러한 실천의 최고 경지를 ‘금강경’에서는 ‘무쟁삼매’(無諍三昧)라고 한다.

‘금강경’은 중국 당ㆍ송 시대의 선종과 우리 조계종의 바탕이 되는 경전으로, 서역에서 온 스님 구라마즙(鳩摩羅什)의 번역본에서는 ‘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는 제목을 갖는데, 이는 “금강석과 같이 견고하여 일체를 끊어 없앨 수 있는 진리의 말씀”이라는 뜻이다.

원본은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한문 번역본은 구라마즙과 현장의 것을 포함해서 총 6종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반야심경’ 다음으로 널리 읽히는 경전으로, 분량이 많지 않고 내용이 크게 어렵지 않아서 일상의 독송용이나 붓글씨를 위한 사경으로 쓰인다.

이 경전은 부처님의 발우(鉢盂) 공양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시작해서 부처님 가르침에 대해 모든 존재들이 환희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 경전에 공(空)이란 말은 직접 나타나지는 않지만, 무주(無住)와 무상(無相)은 계속 강조된다. 즉, 대상이나 형상에 머물지 않는 자가 참다운 보살이라는 게 금강경의 핵심이다.

땔나무 장사꾼이었던 육조대사 혜능이 발심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이 경의 한 구절, 즉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 지어라”(應無所住 而生其心)였다.

이재현(이하 현): 수보리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서유기’에서 뵙고 나서는 처음이네요.

수보리: 으음, 그 소설에서는 손오공에게 온갖 도술을 가르쳐 준 이가 나로 설정되어 있지. 상당히 도교적 색채가 가미된 캐릭터였다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부처님 제자인 나하고는 꽤 달라, 이름만 같은 거지.

현: 수보리님은 어떻게 부처님의 제자가 되셨나요?

수보리: 얘기하자면 긴데, 내가 부자집 출신인 건 알고 있느냐?

현: 네, 수보리님 집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숙부님인 수달다(須達多) 장자가 기원정사(祇園精舍)를 세존께 기부할 정도로 재산이 많은 가문이었지요. 원래 기원정사 땅이 사위성의 태자 것이었는데 그 땅을 구입하기 위해 수달다 장자가 수많은 수레에 황금을 가득 실어와서 땅에 깔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수보리: 그래, 내 숙부님의 산스크리트 이름은 원래 ‘무의탁자에게 음식을 보시하는 자’란 뜻인데, 한자어로는 급고독(給孤獨)이라 번역하기도 하지. 아무튼 기원정사는 세존께서 말년 22년간을 보내신 곳이고, 내가 금강경의 가르침을 받았던 곳이기도 하지.

현: 세존께서는 마가다어로 설법하셨는데 그 말씀이 문자로 정착될 때에는 파알리어나 산스크리트어를 통해서였다지요? 우리는 한문 불경을 읽거나 아니면 한문본을 번역해서 읽어 왔지요. 그런데 같은 불경도 중국에서 여러 사람에 의해 번역되는 과정에서 동일한 개념이나 고유명사에 해당하는 한자어 낱말이 여러 개가 있으니까 매우 헷갈려요.

수보리: 그렇지, 구라마즙의 번역본은 현장의 번역본과 비교해서 게송(偈頌)이 하나 빠져 있고 마지막 부분의 비유도 개수가 다르지.

현: 게송이란 네 개의 구를 한 단위로 하는 시 형태를 말씀하시는 거지요? 구라마즙의 번역본은 “만약 형상으로 나를 보았거나/ 음성으로 나를 찾았다면/ 그릇되게 정진한 것이니/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 사람들은”이라는 부분만 번역했다고 하지요. 번역하면서 마지막 구절도 “여래를 볼 수 없음이라”로 바꾸었구요.

수보리: 현장이 대본으로 삼은 산스크리트 버전에서는 바로 그 다음에 이렇게 이어진단다. “법으로 부처님들을 보아야 한다/ 참으로 스승들은 법을 몸으로 하기 때문에/ 그러나 법의 본성은 분별로 알게 되지 않나니/ 그것은 분별해서 알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이야.

현: 마지막 부분의 비유도 게송으로 되어 있지요? 산스크리트 버전을 번역한 것은 “별, 눈의 가물거림, 등불/ 환영, 이슬, 물거품/ 꿈, 번개, 구름이라고/ 이렇게 보여져야 하나니 형성된 것은”이라고 되어 있던데요. 결국 한문 버전으로부터 우리말로 번역하는 것은 중역인 셈이네요. 애초의 부처님 말씀과는 크게 달라질 수도 있는 거구요.

수보리: 구라마즙이야 역사상 가장 뛰어난 불경 번역가이기는 하지만 ‘금강경’의 경우 의역이나 축역을 많이 했지. 한국에서도 새 천 년 들어서 산스크리트 버전의 번역이 서너 종 이루어진 걸로 아는데 읽어보니 어떻던가? 더러는 티베트 버전이나 유럽어 버전과도 비교해가면서 공들여 번역한 걸로 아는데.

현: 우리말의 일상 어법에 가까운 문장들이라서 그런지 이해하기가 쉽더군요. 쉬운 걸 일부러 어렵게 이해할 필요는 없는 거니까요. 하지만 불교가 중국을 통해서 전해진 데다가, 한자로 된 개념이나 구절에 긴 세월 동안 익숙해져 와서 그런지 한문으로 된 경전도 좋아요.

의역이나 축역을 하면서 더 심오해진 경우도 있구요. 마지막 게송의 ‘형성된 것’은 구라마즙의 경우 ‘일체유위법(一體有爲法)’이라고 했잖아요? 이미 노장 사상이 녹아 들어가 있는 번역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수보리: 서로 꼼꼼히 비교해 가면서 음미하면 아주 좋겠지.

현: 스님이나 학자들이 공들여서 번역한 만큼 그것들을 불교계나 학계에서 서로 비교도 해주고 평가도 해주고 하면서 널리 보급해야 하는데 그런 시스템이 없는 것이 문제 같아요.

고전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다시 새롭게 번역되거나 해석되어야 한다고들 말하지만, 많은 독자들이 그걸 읽어 줘야 역자들도 힘이 날텐데요.

수보리: 번역하는 사람들도 오늘날 우리의 살림살이나 세계관, 혹은 젊은 세대의 감수성이나 상상력을 염두에 두면서 철저히 당대적인 번역이나 해석을 내놔야 하고 말이야. 독창적인 번역이나 해석은 그 다음의 문제겠지.

현: 수보리님, 그런데요, 아까 여쭈어 본 건데, 어떻게 해서 부처님 제자가 되셨어요?

수보리: 기원정사에서 세존의 설법을 듣고 감동을 받아서 제자가 된 거야.

현: 기대했던 것보다 싱거운 대답이네요.

수보리: 대신 다른 얘길 해주마. 금시조(金翅鳥)라고 용을 잡아먹고 산다는 전설의 새가 있는데, 용왕들이 부처님에게 금시조로부터 모든 용들을 보호해달라고 간청하자, 부처님은 금시조에게 살생을 하면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질 것이라고 설법해서 금시조가 삼보에 귀의했다는 거야.

그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다음에 용들이 부처님의 사리를 차지하여 공양하겠다고들 다투자, 내가 나서서 그들에게 부처님 사리는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위력을 알도록 하여 불도를 이루게 하는 것이라고 설득했던 적이 있다네.

현: 그 얘기는 ‘무쟁삼매’와 연결되는 설화로군요.

수보리: 그럼, 이 얘긴 어때? 내가 태어났을 때 말인데, 창고의 그릇과 상자와 바구니가 다 비어 있었다는 게야. 그래서 점쟁이를 불렀더니, 오히려 길한 징조라고 해석하면서 이름을 공생이라고 지으라고 했다는 거야. 내 이름 공생(空生)이 생기게 된 연유이지.

현: 그건 이미 수보리님이 해공제일로 알려진 다음에야 만들어진 설화로 해석하는 게 좋을 듯한데요.

수보리: 좋아, 다른 얘긴데, 내가 자라서 지혜롭고 총명하기는 했는데 성질이 아주 나빴어. 다른 사람들에게 눈을 부릅뜨고 성을 내거나 욕을 하는 버릇이 있었지.

그래서 부모님이 크게 걱정해서 나를 출가입산 시켰지. 그때 부처님은 용왕들을 교화시키려고 수미산 아래에서 비구의 모습을 하고 계실 때였지. 거기서 부처님과 만나게 되고 가르침과 말씀을 듣고 참회하고 제자가 된 거야.

현: 손오공도 성질이 더러웠지요. ‘서유기’에서 손오공이란 이름을 지어주신 분이 바로 수보리님이시죠?

수보리: 오공(悟空)이라는 이름이 공에 관해 깨우친다는 뜻이니까 ‘서유기’에 내 이름이 나오는 것도 나름의 근거가 있는 셈이지.

현: 수보리님 말씀 듣다보니 제 성질 더러운 게 갑자기 생각나네요. 못된 성질로 말하자면, 저는 인간은커녕 아귀나 축생도 못 되는 거 같아요.

수보리: 그럴수록 더 노력을 해야지. 노력하지 않으면 네가 사는 이곳이 바로 지옥인 게야. 노력하면 네가 곧 부처인 게고. 거창한 깨달음을 추구하기보다는 작은 것이라도 하나씩 실천하려고 노력을 해라.

현: 그러면 결국 행복해진다는 말씀이신 거죠? 수보리님, 오늘 가르침 감사합니다.

이재현 문화비평가

/ 기사제공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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