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드려 학살의 땅에 입 맞추다
엎드려 학살의 땅에 입 맞추다
  • 이혜조
  • 승인 2008.01.29 13:15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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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씨, 도법 스님 순례기 `사람의 길` 펴내…종단 현실도 성찰

'바랑하나 메고 빌어먹으며' 거대한 '무덤' 위를 떠도는 이가 있다.

2004년 3월 1일 실상사 극락전에서 길을 떠난 지 4년. 도법 스님은 2만8천리를 걸으며 7만2천여 명의 사람을 만났다. 김택근 시인이 스님의 생명평화순례기를 펴냈다.

길을 나선 도법은 먼저 절집안에 대한 성찰부터 시작한다. "절집에서 바라본 세상은 살기가 가득했다. 한데 어느 날 보니 절집도 별수 없었다. 세상 한가운데서 그저 그렇게 서 있었"으므로 가슴이 답답했다.

부처는 한순간도 중생의 고통 잊지 않았다

도법은 이론과 설법만 넘쳐나고, 자꾸 현장을 멀리하고, 현실에 떨어지려 한 불교를 자책했다. 1980년 10월 27. 전두환의 신군부 정권은 법당을 군홧발로 짓밟았다. 3,000여 곳의 사찰에 계엄군이 난입해 1,700명이 잡혀갔다. '숨 한번 제대로 쉬지 못했고' '권력의 눈치만 보았고" '부처님을 불렀지만 응답이 없었으므로' 당시 한국 불교가 죽었어야 했고 그리고 다시 태어나야 했다. 그러나 적당히 타협했고 도법은 참담했다.

1993년 군부대에서 훼불사건이 일어나고 94년 종단에 개혁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바람은 방향이 없었고 아침바람과 저녁바람이 달랐다. 승려들도 이리저리 몰려다녔다. 총무원장을 쫓아냈지만 개혁을 이끌 지도자가 없었다고 한다. 개혁회의를 꾸렸지만 권력에 줄을 선 사람들이 줄줄이 들어왔고 불교계는 여전히 멀리 보지 못했다. 1998년 분규 역시 모두 부처님을 입술에 달고 침을 튀겼지만 그 속내는 밥그릇 싸움이었다. 도법은 추악하다고 봤다. '폭력을 통한 종권장악 기도'는 외신을 타고 지구촌에 알려졌다. 파벌 부패 야합 폭력... 온갖 치부를 드러냈다. 그것은 불교가 죽을 때 죽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지금도 불교계는 여전히 청정의 그물망을 완성하지 못했다. 감투 쓰기 좋아하고, 대형 고급차를 굴리고, 외국에 나가서 골프를 즐기고, 화투나 카드놀이에 빠지고, 아내와 자식들을 숨겨 부양하고, 돈을 밝히고, 선거철에는 금품이 오가고......' 그래서 삭발염의가 부끄러워 옷을 벗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말들이 스님들 사이에서 자주 오간다고 한다.

'1,000년을 이어온 선불교의 전통이 함부로 취급당하는데도 묻고 답하지 않음'은 '불교계가 치열한 성찰을 하지 않음'이요 '토론과 대하지 않음'이어서 '실로 두려운 일'이며 '한국 불교의 미래에 드리워진 짙은 먹구름'이라 했다. 그 결과 '수마를 쫓아 잠을 자지 않고, 평생을 눕지 않'았으면서도 '이런 스님들의 이룸이 우리 사회에 무엇을 깨치게 했는가. 스님의 몸에서 나온 사리가 세상의 무엇을 바꾸었는가'하고 도법은 반문한다.

한순간도 고통 받은 중생의 아픔을 잊은 적이 없다는 부처님의 말씀은 오간데 없어 보였다. 그래서 도법은 800년 전 지눌선사가 길을 떠났음을 상기한다.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친 정혜결사를 돌아봤다. 10만 양병설을 주장했던 율곡을 떠올렸고 인도의 간디를 되새겼다.

길위에 섰지만 사람의 길은 없었다

'길 위에 길이 있을 것이다'란 믿음으로 길을 나선 도법은 '빌어먹기로 했다'. 그러나 순례길에 들린 지역 중에서 아픈 사연이 없는 곳이 없었다고 한다. '나라 전체가 무덤이었고 온 산하가 핏빛 절규가 스며 있었다. 동학전쟁에서 6.25전쟁, 4.3항쟁으로 사람들은 죽었다'. 2003년 9.11테러와 연 이은 명분없는 전쟁들까지. 지구는 거대한 무덤이었다.

직선의 잘 닦여진 길은 산을 뭉개고 숲을 관통하고 마을을 동강내 버렸다. 그러나 사람이 만든 길에 정작 길손이 사려져 버렸다. 주막도, 주모도 없었다. 길 위에서는 사람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자동차의 굉음만이 굴러다녔다. '24시간 사회'로 사람들은 질주하고 있었다. 길도 쉬지 못했다. 길 가의 그 많은 생명붙이들도 잠들지 못한다. 무수히 많은 동식물들은 차 바퀴에 깔려 죽었고 주검 위로 사람을 태운 바튀들은 굴러갈 뿐이다.

농촌에는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다. 들어가면 반드시 나왔던 순환의 질서를 상징하던 굴뚝은 있으나, 아궁이를 없애버린 탓이다. 순환의 질서가 끊긴 현장은 침묵이 귀신처럼 들어앉았다. 아이 울음소리가 끊어진 농촌엔 이미 죽음이 누워있다고 도법은 생각했다. 땅을 일궈 자식을 키워 도회지로 내보낸 농촌은 어머니들의 유배지로 전락하는 아이러니를 잉태하고 있었다. 줄어든 인구에 예배당도 문을 닫았다. 한 촌부가 도법에게 말했다. "농촌은 이미 부고장을 받아버렸습니다. 억울하고 억울합니다"라고. 개발은 농촌만 아니라 자연과 인간, 이웃과 이웃, 자연과 자연을 갈라놓았다.

도시라는 거대한 괴물. 아파트라는 삭막한 오로지 인간만을-자연을 철저히 배제한-위한 공간. 겨울에는 추위를 여름에는 더위를 먹고 살아온 인류의 철칙을 도시인들은 거부하고 있다. 도무지 자연과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다. 그래서 순례단은 도시속으로 들어와 걷는 것이 고통이라고 했다. 모두가 경이롭게 바라보는 중동의 두바이. 실은 엄청난 환경재앙의 전조곡임을 인간들은 애써 외면한다. 자연 속에 안겨 자연과 교감하는 것이 누군가를 위한 배려이고 사랑임을 모른다. 그들은 오로지 '일등'과 '부자'만을 꿈꾼다. 도법은 '부처께서는 일생 동안 옷 두 벌과 밥그릇만 가지고도 늘 당당하고 평화로웠다'는 것을 안다.

도법은 전국을 돌며 원혼을 달래기 위해,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사인을 숨겨야 했던 죽은 아버지를 보기 위해 '엎드려 학살의 땅에 입 맟추'기를 무시로 했다. 4.3항쟁의 난장 제주도에서 지리산에서 또 다른 도륙의 현장에서. 살아 있는 것이 죄였고 그냥 죽어야 했던 원혼들에게 길을 터주고 싶었다. 아무 죄 없는 사람이 죽었는데 '잘못했다. 미안하다'는 한마디를 듣는 데 무려 반세기가 걸린 이 공동묘지에서. 도법은 '산 자'로서 그들에게 무릎을 꿇었다.

처음엔 당당하고 끝은 평화로웠다

도법은 이번 순례에서 죽임과 죽음이 엉켜있던 산하에서 새로운 기운이 퍼져나가고, 강원도 화천에서처럼 무기를 녹여 평화의 종을 만들고 농기구를 만들고, 총칼을 겨눴던 동학군과 진압군의 후손이 화해의 악수를 나누는 세상을 염원한다.

안이 밖이고 밖이 안이므로 도법은 날마다 경계와 기준을 지웠다. 그리하여 특별히 부처가 되려고 하지 않고 부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부처가 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가 평화가 되자'는 도법의 염원도 그래서일 게다. 희망은 본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서.

김민해 남녁교회 담임목사는 이 책에 대해 "부디 도법만을 보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거기에는 도법도, 스님도 없다. 그 안에 수많은 사람과 뭇 생명, 무엇보다 그것들을 존재케 하는 진리를 볼 수 있길 빈다"고 했다.

'생명평화 탁발순례단 공식 취재기자'라고 도법이 일컫는 작가 김택근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전라 경사 제주 충청 강원도. 스님은 수만 리를 걸어 수만 명 사람을 만났다. 스님의 표정에서 고단함 너머의 희열을 읽을 수 있었다. 스님에게는 생명평화의 길이 마침내 보였을 것이다"라고 책에 적었다.

스님은 그로부터 정확하게 4년 뒤인 2008년 3월 1일 수경 스님 등과 '생명의 강 살리기 순례 대장정'에 다시 오른다. 다 철따라 오고가도 스님은 길 위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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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 2008-02-02 06:41:28
미친 놈 ! 월맹군 같은 도법이 또 등장했구나

본인부터.. 2008-01-29 21:44:35
남이 안 하는거 해야.심리적으로 안정을 찾는 ....아상과 중생심에 헐떡이는 딱한친구들...

객승 2008-01-29 22:19:33
한치도 과하거나 부족함이 없는, 가장 自然스러움 그것이 바로 道라네!!도법수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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