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몸도 다른 것의 먹잇감이 될 것”
“이 몸도 다른 것의 먹잇감이 될 것”
  • 이병욱/정의평화불교연대 사무총장
  • 승인 2018.07.29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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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과 함께한 인도성지순례] (5) 바라나시 화장터 가트에서

바라나시의 새벽은 이전 밤의 열기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모든 새벽이 차분하고 평온하듯이, 바라나시의 새벽 또한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어제 밤의 인파와 경적소리, 그리고 계속 달라붙는 걸인들은 온데간데없습니다.

동이 트는 새벽녘에

동이 트는 새벽녘 바라나시 거리에는 노숙하는 사람들이 시체처럼 여기저기 보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 노숙인 이지만 바라나시의 노숙인들은 더 각별해 보입니다. 종교도시에서 종교성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마치 죽음을 기다리는 듯한 노숙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 바라나시 새벽의 노숙인들.

거리에는 노숙인들 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소들도 거리 한편에서 잠을 잡니다. 주인 없는 소들이 인파속을 배회 하는데 잠을 잘 때도 사람들과 함께 잡니다. 소들이 잠자는 곳에 어느 노숙인이 쭈그리고 앉아 고개를 묻고 있습니다.

▲ 바라나시 새벽의 노숙인과 함께 어우러져 자는 소들

인도성지순례 2일차 되는 날입니다. 이른 아침 동이 트기 전에 마딘(Madin)호텔을 출발했습니다. 새벽 갠지스 강에서 꽃등 띄우기 행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배를 타고 화장터를 보는 날이기도 합니다.

새벽에 보는 바라나시는 평온합니다. 만일 이런 장면만 보았다면 어제 밤의 혼돈의 도가니는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같은 어둠이라도 저녁과 새벽은 다른 것입니다. 바라나시에서 극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꽃등(燈)파는 소녀

강가 가트에 도착했습니다. 어젯밤 불의 제사의식을 행하던 가트는 고요합니다. 모든 것이 차분하고 평온한 새벽입니다. 화장터가트로 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 합니다. 배를 타기 전에 꽃등을 샀습니다.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꽃등을 파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 바라나시 가트에서의 꽃파는 소녀.

나룻배에 꽃등 파는 소녀도 동승했습니다. 나룻배에 순례자 21명과 가이드 2명, 꽃등 파는 소녀1명 모두 24명이 올라탔습니다. 모터가 달린 나룻배는 화장터 가트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마니까르니까 가트(Manikarnika Ghat), 화장터 가트

바라나시에 가면 꼭 보아야 하는 것이 화장터 가트라 합니다. 가이드에 따르면 바라나시에는 모두 85개의 가트가 있다고 합니다. 가트(Ghat)는 강가의 층계를 말합니다. 강가에 계단형태로 된 것을 가트라 합니다. 기도하는 가트, 목욕하는 가트, 빨래하는 가트, 화장하는 가트 등 갖가지 형태의 가트가 있습니다.

수많은 가트 중에서 화장터가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니까르니까 가트(Manikarnika Ghat)입니다. 어제 불의 제사의식이 있었던 다샤스와메드 가트(Dashashwamedh Ghat)에서 배를 타고 이동해야 합니다. 지도를 찾아보았습니다.

▲ 갠지스강의 두 가트의 위치

갠지스 강에는 계단식으로 된 수 많은 가트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화장터입니다. 화장터에 가까이 갈수록 숙연해집니다. 동이 트는 어슴푸레한 새벽임에도 화장터에서는 불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 동트기 전 화장터 가트로 향하는 배

흔히 바라나시를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도시라 합니다. 한편에서는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또 한편에서는 죽음을 맞이하는 자들이 있고, 또 한편에서는 죽음의식을 거행 하는 곳도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이곳에서는 죽음을 은폐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는 죽음이 은폐되어 있습니다. 시체를 보기 힘듭니다. 장례식장에 가도 죽은 자를 볼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죽음은 나와 관련이 없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밤이 지나면 내일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운명임에도 천년만년 살 것처럼 시간을 허비하며 헛되이 살아갑니다.

바라나시에서 죽음의식은 은폐된 죽음을 보여 주기에 충분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화장터에 가도 화장하는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이곳 바라나시에서는 화장 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인도사람들은 힌두교의 성지 바라나시에서 죽고자 합니다. 죽기 위해서 바라나시를 찾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장작 살 돈을 마련하여 죽음을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마침내 자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 죄업 많은 육신을 태워 해탈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타다 남은 시신을 갠지스 강에 적셔 나머지 죄업마저 씻어 내고자 합니다.

우리도 죽으면 저와 같이

화장터 가트에서 충격적인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개들입니다. 바라나시에서는 소뿐만 아니라 개도 자유롭게 돌아다닙니다. 주인 없는 개입니다. 화장터에서 본 개들은 시체가 타다 남은 곳을 헤집고 돌아다닙니다. 타다 남은 살점이 있으면 먹으려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가이드 샌디는 우리도 죽으면 저와 같이 될 것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것이라 했습니다.

▲ 새벽녘의 화장터 가트.

의식이 몸에서 떠나 버리면 죽음이라 합니다. 법구경에서는 “아, 쓸모없는 나뭇조각처럼 의식 없이 버려진 채, 머지않아 이 몸은 땅 위에 눕혀지리라.”(Dap.41)라 했습니다. <맛지마니까야> ‘교리문답의 큰 경(M43)’에 따르면, 꼿디따가 사리뿟따에게 “벗이여, 어떠한 것들이 이 몸을 떠나면, 여기 이 몸이 무정한 통나무처럼 버려지고 던져져 누워 있게 되는 것입니까?”라며 물어 봅니다. 이에 사리뿟따는 다음과 같이 답합니다.

“벗이여, 세 가지 즉,
생명력과 체열과 의식이 이 몸을 떠나면,
여기 이 몸은 무정한 통나무처럼
버려지고 던져져 누워 있게 됩니다.”(M43)

죽은 몸에 대하여 통나무로 비유했습니다. 시체는 마치 나무토막과도 같아서 생명력(jīvitaindriya)도 없고 체열(usmā)도 없고 더구나 의식(viññāṇa)도 없음을 말합니다. 꼿띠따가 이렇게 물어 본 것은 지각과 느낌의 소멸(想受滅)을 성취한 수행승과 시체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것입니다.

죽은 자와 상수멸(想受滅)자는 어떻게 다른가?

죽은 자와 상수멸자는 공통적으로 신체적 형성이 소멸하고, 언어적 형성이 소멸하고, 정신적 형성이 소멸하는 것에 있어서는 같습니다. <상윳따니까야> ‘까마부의 경(S41.6)’에 따르면, 신체적 형성의 소멸은 호흡이 소멸하는 것을 말하고, 언어적 형성의 소멸은 사유와 숙고가 소멸하는 것을 말하고, 정신적 형성의 소멸은 지각(想)과 느낌(受)의 소멸을 말합니다.

가장 먼저 언어적 형성의 소멸이 일어납니다. 초선정입니다. 다음으로 신체적 형성의 소멸이 일어나는 데 사선정에서 호흡이 소멸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정신적 형성의 소멸이 일어나는데 상수멸정에서 지각과 느낌이 소멸하는 것입니다.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형성된 것이 소멸 되어 고요 해졌을 때 죽음 또는 상수멸정 상태라 합니다. 그런데 상수멸정과 죽음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리뿟따는 “지각과 느낌의 소멸을 성취한 수행승에게도 신체적 형성이 소멸하여 고요해지고, 언어적 형성이 소멸하여 고요해지고, 정신적 형성이 소멸하여 고요해지지만, 생명력이 다하지 않고, 체열이 다 소모되지 않고, 감관들은 아주 청정해집니다.”(M43)라 했습니다.

상수멸정을 성취한 자는 죽음과 같은 상태에 이릅니다. 다만 생명력과 체열과 의식은 남아 있습니다. 지각(想)과 느낌(受)이 소멸된 상태이기 때문에 죽음과 같은 상태를 기억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상수멸정에서 나오면 “감관들은 아주 청정해집니다.”(M43)라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일상적인 삶의 과정에서 감각능력은 감각대상에 영향을 받아 시달리고 사거리에 놓은 거울처럼 더럽혀져 있지만, 멈춤을 성취한 사람의 감각능력은 상자 안에 놓은 거울처럼 맑다.”(Pps.II.352)라 했습니다.

깊은 잠을 때가 있습니다. 깨어났을 때 자신이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고 멍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아주 맑고 깨끗합니다. 마치 머리가 리셋(Reset)된 것 같습니다. 죽음보다 깊은 잠을 자고 나서 깼을 때 감관은 매우 맑습니다. 지각과 느낌을 소멸을 성취한 수행자들은 상자 안에 놓은 거울처럼 감관이 맑다고 했습니다. 사거리에 놓인 거울은 온갖 것들을 다 비추지만, 상자 속에 있는 거울은 자신의 얼굴만 비칠 것입니다. 지각과 느낌을 소멸한 자가 깨어났을 때 감각기관이 거울처럼 맑음을 말합니다.

어떤 이는 열반은 죽어서야 성취되는 것으로 말합니다. 죽음이후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죽음 이후를 말하는 것에 대하여 얼마나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살아 있는 몸을 가지고도 죽음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경에 따르면 그것이 지각과 느낌이 소멸된 상수멸의 단계입니다. 언어적으로 사유와 숙고가 소멸되어 초선정을 성취하고, 신체적으로는 호흡이 소멸되어 사선정을 성취하고, 정신적으로는 지각과 느낌이 소멸되어 상수멸정을 성취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것의 먹이가 되었을 때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죽은 자는 자신의 힘으로 손가락 하나 까닥거릴만한 힘도 없습니다. 죽은 자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형성이 소멸된 것에 있어서는 상수멸정에 든 자와 같으나 생명력과 체열과 의식이 없는 죽은 자는 나무토막과도 같습니다. 이에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습니다.

“마침내 목숨과 온기와 의식
그리고 몸을 버리면,
버려진 채 놓이니
무정하게 다른 것의 먹이가 되네.”(S22.95)

<상윳따니까야> ‘포말의 경(S22.95)’에 실려 있는 게송입니다. 부처님이 갠지스강가에서 오온에 대하여 “물질은 포말과 같고 느낌은 물거품과 같네. 지각은 아지랑이와 같고 형성은 파초와 같고 의식은 환술과 같다고 태양의 후예가 가르치셨네.”(S22.95)라며 게송을 읊고 오온에 실체가 없음을 설했습니다. 실체가 없는 오온이 죽었을 때 나무토막 같은 것입니다. 승냥이, 늑대, 개 등의 밥이 되는 것에 대하여 “무정하게 다른 것의 먹이가 되네.”(S22.95)라 한 것입니다.

화장터 가트에서 시체가 주인 없는 개의 먹잇감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죽으면 저와 같이 될 것입니다. 생명, 체열, 의식이 없는 몸뚱이는 나무토막과도 같고 날짐승들의 먹잇감이 됩니다.

꽃등 띄우기

화장터 가트에서 다시 기도처 가트 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갠지스 강에서 꽃등 띄우기 행사를 했습니다. 함께 탑승한 소녀가 가지고 온 꽃등에 불을 붙였습니다. 사람 숫자대로 두 개의 등이 할당되었습니다. 하나는 자신을 위한 것이고 또 하나는 가족을 위한 것입니다.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위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중생들이 행복하기를 발원했습니다.

▲ 갠지스 강에 띄울 꽃등.
▲ 꽃등을 띄우고 소망을 비는 불자.

꽃등을 갠지스강가에 띄었습니다. 가이드에 따르면 오늘은 매우 잔잔한 날이라 합니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는 날이 아니라서 다행입니다. 갠지스 강물 위에 하나하나 꽃등이 놓이자 어둠 속에서 빛이 났습니다. 각자의 소망을 안고 꽃등은 저편으로 떠내려갑니다.

▲ 갠지스강에 띄어진 소망의 꽃등.

다시 기도처 가트로 되돌아 왔습니다. 그 사이에 날이 훤하게 밝았습니다. 원래 갠지스 강의 일출은 유명하다고 합니다. 해가 뜨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환상적이라 합니다. 그러나 1월이라서 짙은 안개로 인하여 희뿌옇게 보입니다.

우격(牛格)과 견격(犬格)이 존중되는 사회

바라나시는 소와 개와 인간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도시입니다. 인도에서만큼은 인격(人格) 못지않게 우격(牛格)과 견격(犬格)이 존중됩니다. 인도에 카스트가 있어서 엄격한 계급사회라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무계급사회로 보입니다. 더구나 동물을 존중하는 사회입니다.

인도는 겉으로 보기에 빈궁하고 무질서하고 야만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선진국 보다 앞서 있는 듯합니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소와 개가 어우러져 함께 사는 나라는 없는 것 같습니다. 우격과 견격이 존중 되는 사회는 선진국임에 틀림없습니다. 또 하나 인도에서는 생과 사와 함께 하는 나라입니다. 바라나시에서 보았습니다.

갠지스 강에 포말의 비유를

바라나시에 갠지스 강이 있습니다. 힌두교에서는 성스런 강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부처님도 갠지스 강가에서 설법했습니다. <상윳따니까야> ‘포말의 비유의 경(S22.95)’를 보면 “세존께서 아욧자 시의 갠지스 강둑에 계셨다.”라 되어 있습니다. 부처님은 수행승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갠지스 강이 커다란 포말을 일으키는데, 눈 있는 자가 그것에 대하여 보고 고요히 관찰하여 이치에 맞게 탐구한다고 하자. 그가 그것에 대하여 보고 고요히 관찰하여 이치에 맞게 탐구하면, 비어 있음을 발견하고, 공허한 것을 발견하고, 실체가 없는 것을 발견한다. 수행승들이여, 무엇이 포말의 실체일 수 있겠는가?”(S22.95)

부처님은 갠지스강가에 포말이 되어 사라지는 것을 보고서 실체가 없음을 관찰하라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오온에 대하여 포말(色), 물거품(受), 아지랑이(想), 파초(行), 환술(識)로 비유 했습니다. 모두 실체가 없는 것들로 텅 비어 있고 공허한 것이라 했습니다.

만일 오온에 실체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오온에 실체가 있다면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불변할 것입니다. 이처럼 언제까지라도 존재하는 것이라면 “괴로움을 소멸시키기 위해 청정한 삶을 시설할 수 없다.”(S22.96)라 했습니다.

영원불변하는 영혼이 있어서 마치 옷을 갈이 입듯이 몸만 바꾼다면 청정한 삶을 살 수도 없고 열반도 실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온은 조건발생하고 조건 소멸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체가 없습니다. 어느 것 하나 고정된 실체가 없기 때문에 항상 하지도 않고 견고하지도 않습니다. 조건에 따라 생멸하는 연기적 작용만 있을 뿐입니다.

조건발생하고 조건소멸하기 때문에 열반이 실현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청정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고정 되어 있다면 수행을 할 필요도 청정한 살 필요도 없습니다. 변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것도 조건에 따라 생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수행승이여, 이와 같은 실체성을 획득하여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불변하는 것으로 언제까지라도 그와 같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없으므로 괴로움을 소멸시키기 위해 청정한 삶을 시설할 수 있다.”(S22.96)라 했습니다.

이 몸도 다른 것의 먹잇감이 될 것

지금 이 몸도 언젠가는 버려지게 될 것입니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도 남아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천년만년 살 것처럼 시간을 허비하며 인생을 헛되이 살아가지만 나중에 버려진 나무토막과 같은 신세가 됩니다.

나무토막 같은 시체는 다른 것들의 먹잇감이 됩니다. 시체는 사흘이 지나면 구더기나 나옵니다. 사흘장을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이 몸은 들개나 구더기 등의 먹잇감이 됩니다. 이런 사실을 알았을 때 하루 빨리 저쪽 언덕으로 건너가야 합니다.

부처님은 갠지스강가에서 포말로 부서지는 것으로 보고서 오온에 실체가 없음을 여려 가지 비유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부처님은 과거 생에 왕족으로 살았던 때를 회상하며 과거의 영화가 덧없을 말했습니다.

“수행승이여, 이와 같은 모든 형성된 것은 과거의 것으로 사라지고 변해 버렸다. 수행승이여, 이와 같은 모든 형성된 것은 무상하다. 이와 같은 모든 형성된 것은 견고하지 않다. 이와 같은 모든 형성된 것은 불안정하다. 수행승이여, 그런 만큼 모든 형성에서 싫어하여 떠나 사라져서 해탈해야 한다.”(S22.95)

이병욱/정의평화불교연대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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