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도정 스님의 마음 편지
시인 도정 스님의 마음 편지
  • 조현성 기자
  • 승인 2017.07.26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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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벗에게’
▲ 사진=담앤북스

“오래되고 다정한 벗일지라도 내 속내를 드러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만나고 어울려 즐거운 한때를 같이 보냈더라도 헤어지면 늘 허전하고 아쉬운 부분이 남기 마련입니다. 그 허전하고 아쉬운 부분을 채울 수 있는게 있다면 과연 무엇일까요?”

시 짓는 수행자 도정 스님(월간 <해인> 편집장)의 산문집 <사랑하는 벗에게>가 출간됐다. 책에는 세월이 갈수록 작아지며 소리 없이 아파하는 벗들에게 띄우는 편지글 117편이 담겼다.

편지는 한 글자 한 글자 손으로 눌러쓰듯 정성껏 써 내려간 자신을 향한 독백이기도 하다. 책은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회인으로서, 깨달음을 구하고 자비를 실천하려 애쓰는 수행자로서, 유달리 잘 웃고 잘 울어 얼굴 가득 멋진 주름이 진 중년 사내로서의 삶과 성찰이 담긴 독백이다.

어린 쑥이 품은 ‘봄 향기’에 감동하는 시인의 감수성과 담박한 시어가 듬뿍 담긴 글들의 모음집이다.

스님의 편지글에는 절 마당을 쓰는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인연을 맺은 이들과의 사연, 세상사에 대한 생각, 수행자로서의 고민이 두루 담겼다. 담담히 써 내려간 글들은 일상에 대한 공유나 감정의 토로를 넘어서 현상 이면의 숨은 의미를 찾아내고, 사소한 일상에서 삶의 이치를 통찰한다.

이를테면 외로운 감정을 느끼며 “만남이란 그 사람의 소중함을 새삼 확인하는 일(본문 33쪽)”임을 알아차리고, 시골 밤길을 걸으며 “뭐든 자세히 보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두려움도 사라졌다네. 진짜 어둠은 밤에 속한 게 아니라 어리석음에 속한 것(본문 143쪽)”임을 깨닫는다. 같은 사물도 시인의 눈으로 보면 다른 법인가 보다. 대나무를 마주하고는 “휘면서 자란 대나무를 대나무가 아니라고 하지 못하듯이 타인을 그리 고까운 시선으로 보지는 말아야겠네. 그도 소중한 존재일 따름 아니겠나(본문 106쪽)” 하고 나직하게 이른다. 

수행자답게 미움과 원망, 서운함으로 출렁이는 마음을 성찰한 글도 여러 편이다.

“섭섭한 일이 생겼다는 것은 뭔가 용납되지 못한 게 있다는 것이었네. 용납되지 못했다는 것은 내가 그에게, 또는 그가 나에게 포용되지 못했다는 것이었네. (중략) 살면서 포용의 주체가 내가 되고, 내가 주인공일 때 걸림이 없을 것이었네. 사람의 그릇이란 원래 한정이 없었을 터이기 때문이었네. 다만, 스스로를 한정 지어 섭섭함을 만들었을 뿐이었네(본문 85쪽)” 하는 대목에서는 뜨끔하는 이도 많을 것이다. 

스님의 편지글 중에는 1쪽도 안 되는 짧은 글이 많다. 쉽고 순한 말들이어서 술술 읽히는데 곱씹을수록 가슴에 와 닿는 구절이 많다.

“역경은 역경이 아니야. 그렇게 씨앗도 껍질을 벗어야 떡잎을 내거든(본문 28쪽).”

“우리는 자꾸 잊지. 이렇게 피었다 지건만, 필 때는 누구나 영원한 줄 아네(본문 52쪽).”    “무언가를 꼭 해야 된다는 생각을 굳이 낼 필요는 없었네(본문 144쪽).”

앞만 보며 내달리느라 미처 살피지 못한 내 마음 그리고 소중한 벗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보듬어 준다. 벗은 스님 말대로 “친구일 수도 있고, 아내나 남편 때로는 자식이나 형제일 수도” 있을 터. 오늘 사랑하는 벗에게 이 순하고 어여쁜 말들을 편지에 옮겨 적어 보내는 건 어떨까.

도정 글┃김화정 그림┃담앤북스┃1만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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