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도 때론 눈물 흘립니다"...김해 선지사 원천 스님
"스님도 때론 눈물 흘립니다"...김해 선지사 원천 스님
  • 김원행 기자
  • 승인 2017.05.01 11:2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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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에 "너는 내 곁에 있어도 좋다" 말씀 들어 "극락암 경봉 스님도 모셔"

선지사(仙地寺)는 직설적으로 '신선이 머무는 사찰'로 해석되나, 완곡하게는 '도(道.부처님의 가르침)를 닦는 스님이 머무는 곳'이란 뜻이다. '스님이 신선'인 셈이다.

선지사는 김해 주촌면 선지리에 위치해 있다. 천하의 길지(吉地)로 풍수지리가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곳이다. 선지사가 들어선 후 김해 지역에는 부처님 가피를 받겠다며 선(仙)자를 딴 지명이 유독 많다. 동선·서선·내선·선지고개·선문당·선지못 등 다양하게 선(仙)자를 붙여 지명했다. 김해를 으뜸 불도(佛都)라 부르는 이유다. 

지난 1986년부터 선지사 주지를 맡고 있는 원천(元泉) 스님은 "(30)안거 마치고 집에 오니 방초(芳草)만 푸르다"고 했다. "15년간 집 지킨 보살에게 달리 할 말이 없다"며 합장했다. 원천 스님은 주지와 수행납자의 삶을 오롯하게 살고 있다. 해인사 학인시절 성철 큰스님에게 3,000배 올렸다. 성철 스님은 "너는 내 곁에 있어도 좋다"며 원천 스님을 인가 했다. 원천 스님은 경봉 스님에게도 전강을 받았다. 스님은 50여 년을 전국선원서 안거를 했다.

-도인(道人) 나오는 길을 다 막아놨다고들 한다.

<불교닷컴> 기자들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궁금했다. 이런 말 저런 말들이 있다고 들었다. 멀쩡 하구만. 다양해야 좋은 것 아니냐? 굳이 대답해야하나? 차(茶)나 한 잔 그냥 들어. 우리 불교는 도를 너무 쉽게 가르쳐 준 것이 문제였지만, 요즘은 가르쳐 줄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어 문제다. 그래서 위인(偉人)이 나오질 않는다. 

-그렇다면, 좌탈열반(座脫涅槃)할 수 있는 도인이 있다고 생각하나?

경북 학가산의 전설적 도인 개운 조사로부터 계를 받은 탄공(呑空) 선사를 꼽는다. 탄공 선사는 118세로 좌탈열반 했다. 탄공 선사는 도인(道人)으로써 생을 스스로 멸했다. 선사는 열반 전 법문을 통해 “내가 너희들과 같이 이생에 더 살 욕심이 있다면 앞으로 30년은 더 살아, 하지만 때가 됐기에 간다”고 말했다. 다음날 새벽 주지스님이 문안을 드렸지만 응답이 없어 문을 열어 보니 참선 자세로 좌탈열반하셨다고 한다. 불교계에서 좌탈열반 스님으로는 방한암 스님이 계시지만 백세가 넘은 고령으로는 탄공 선사가 처음이다. 기자가 좌탈열반할 스님 알아봐. 있어.

-탄공선사가 부럽나?

차원이 다른 문제다. 철없던 시절 도를 닦겠다고 중(스님)이 됐다. 축지법 쓰고, 날아  다니고 뭐! 이런 치졸한 생각이 도라고 생각했다. 물리적으로 가능하겠나? 다만 예지(叡智)는 믿는다.
 
-영산전에 가보니 500나한상이 있다. 대웅전 대신 영산전을 앉힌 것도 특이하지만 영산전에 이웃종교인 예수(Jesus Christ)보살상을 모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

 21세기는 다종교시대다. 파격으로 보일지 모르나, 종교 간 화합과 소통을 목적으로 모셨다. 불교계나 개신교계에서 반대여론도 많았다. 예수보살상을 법당에 조성한 예는 중국에 있다. 중국 곤명 공죽사에서 1250년 전에 예수보살을 모셔놓았다. 이런 역사적 근거를 매개로 종교 간 화합도 도모할 겸 해서 예수보살상을 모신 거다. 시간이 흐를수록 예수보살상을 모신 취지가 알려지면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송구하지만 선지사가 사설사암이기 때문에 큰 뜻에서 예수보살상을 모실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누가 선지사를 창건했나?

한 펀치 하는구만. 은사이신 운하 스님께서 1950년대에 일구신 도량이지만 사실상 살림집이나 마찬가지였다. 반듯한 부처님조차 모시지 못했다.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서울에 사셨던 대원경 보살을 비롯한 불자들이 불사에 커다란 도움을 줬다. 지금도 대원경 보살 따님이 15년 째 크나큰 도움을 주고 있다. 내가 선방 다니는 15년 동안 선지사를 묵묵히 지켜주었다. 보살이 큰스님인 셈이다. 대답이 됐나?

 -선지사 불사 우여곡절 많았다고 들었다. 

사찰이 어려워 부채에 시달렸고 한때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처해지기도 했다. 폐사 위기에 처한 사찰을 문화재 보유 전통사찰로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니 사람인지라 눈물이 난다. 스님도 때로는 눈물 흘린다. 처음 완장 찬 주지로 부임해 와보니 쌀 한 됫박 어설픈 부처님 전에 올려놓고 20여 불자들을 위해 축원할 정도였다. 오직 기도로써 부처님 도량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주지 완장 버렸다. 노가다(막노동)부터 온갖 잡일 다해봤다. 지금은 제법 도량답다. 다음에 주지 맡을 분이 복 많은 것 아니겠나. 도량이 약 12,000평(약 39,600㎡)이다.

-스님 명함에 선지사가 전통사찰110호 경남도문화재533호라고 적혀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쉽지 않았으리라 판단된다.

지난 1999년 인제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에 선지사 유적발굴을 의뢰했다. 그때 ‘선지사(仙地寺)’가 새겨진 명문기와와 와편 등 30여 점 유물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유물고증 통해 선지사가 통일신라 때 건립되었고, 고려를 거쳐 조선 중엽까지 존재했다는 사실을 인정받았다. 어디까지나 학술적 고증을 근거로 말하는 것이다. 고증에 따르면 선지사 앞마을까지 사찰경내지였다.

-영산전 내에 오백나한상을 조성한 이유는 뭔가?

차별성과 특이함으로 포교하려 조성했다. 불모(佛母) 임영규 거사가 혼자 2년 동안 500나한상을 조성했다. 처음에는 나한상 크기가 너무 작았다. 그래서 내가 가분수 나한상을 만들라고 윽박질렀다. 하하하. 김해지역은 남방불교 도래지며 가야불교와 인연이 깊으니 장유화상도 조성하고 원효스님, 의상스님, 서산대사도 모셨다.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 2001년에 영산전 불사를 회향하며 부산 해조암에서 모셔온 목조아미타여래좌상에 대한 감정을 의뢰해 조선시대 목불상으로 판명 받아 2003년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33호로 지정받았다.

-들은 바로는 불사도하고, 선방도 끊임 없이 다녔다고 하는데 어떻게 다했나?

앞서 얘기했지만, 대원경보살님과 따님이 계셨기 때문에 가능했다.
2001년 영산전 불사 회향 후 2002년부터 수행납자의 길을 선택했다. 주지로 있으면서 하안거와 동안거 때면 선방에 들어갔다. 어찌 보면 추울 때, 더울 때만 골라서 간 셈이다. 하하하. 대원경보살님 따님께 달리 드릴 말씀이 없다. 사찰 주지는 6개월 이상 자리를 비우면 안 되는데 종단법을 어겨가면서 선방을 다닌 셈이다. 하지만, 중이 불사(佛事)하라고 출가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

 -선방 정진한 끝에 몇 년 전 불국사 선방에서 오도송이 나왔다고 전해 들었다.
 하여튼 기자들이라니...<불교닷컴> 기자들은 원래 그런겨(그러는 거야)? 뒤져서 적어 그럼. 그냥 나왔어. 

三十五年 納禪客(삼십오년 납선객),
南北東西 往來頻(남북동서 왕래했구나).
無影樹中 花發開(그림자 없는 나무에 꽃이 만발하니),
飢卽食兮 困卽睡(주린 즉 밥을 먹고 곤한 즉 잠을 잔다).

원천(元泉) 스님은 성철스님에게서 ‘마삼근(麻三斤)’ 화두를 받아 용맹정진(勇猛精進)했다.

<마삼근은, 중국 운문종(雲門宗)의 동산(洞山)선사에게 어떤 스님이 '무엇 이 부처입니까?'하니 동산은 '마삼근이다'라고 답했다. 삼근은 마사(麻絲)를 다는 기준량이며, 옷 한 벌 분량이다. 즉 동산의 대답은 '옷 한 벌 분의 재료는 준비되었는데 그것을 만들어서 입을 사람은 어떤가?'라고 상대의 주체성 부재를 꼬집음으로써 불도를 알게 한 것이다. 출처-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 용어사전)>

원천 스님은 통도사 극락암 경봉 스님으로부터 '사람으로 왔으면 멋진 연극을 한번 해야 한다'는 가르침도 받았다.

원천 스님은 1969년 통도사 운하 스님을 은사로 출가, 1971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1973년 통도사에서 월하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이후 해인사·봉암사·동화사·불국사·법주사·송광사·화엄사·상원사·통도사 등의 선원에서 30안거를 성만했다. 해인사승가대학과 중앙승가대학교를 졸업했고 통도사 교무·포교·총무국장을 역임했다.

원천 스님이 인터뷰 도중 좌탈열반(座脫涅槃)했다는 탄공선사는 누구?

탄공선사는 세수 118세, 법랍 114세로 멸했다. 1881년 경북 상주군 내서면 가막골에서 탄생했다. 속명은 이현조(李現照)다.

유복자로 태어 난 선사는 모친 역시 생후 2개월 만에 별세하고, 조부(당시 상주 군수)의 손에 자랐다. 1884년 4세 때 경북 청송군 주왕산 소재 대전사에서 호명선사를 은사로 출가. 9세 때 탄공(呑空)으로 수계를 받았고, 19세 때 조선 황실에서 실시하는 조선 화공 백일장에서 장원 했다. 고종황제로부터 진사를 제수 받았으나 고사했다. 19세~29세, 전남 장성군 소재 백양사에서 송만암, 송만공, 성철스님의 은사이신 하동산스님과 더불어 10여 년간 수행정진했다.  1908년 27세 때 5개월간 해인사 주지 역임 후 대구소재 용연사에서 3년간 수도정진 했다. 1919년 경북 의성군 소재 고운사로 옮겨 수도정진 중 3.1 운동이 일어나자 왜경을 응징한 후 그 길로 금강산으로 입산했으나, 왜경들의 체포감시가 심해 유점사에서 약 50리 위에 위치한 동우굴에서 수행정진 했다.

1931년 중국 소림사에서 6개월간 수행하다가 그 다음해 1월 8일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 공원 의거 사건을 전후해 상해임시정부 김구 선생을 만나서 독립운동 자금을 전달하고 귀국, 금강산 동우굴에서 수행정진 중 민족해방을 맞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금강산을 떠나 월남하여 지리산, 속리산, 설악산, 팔공산, 태백산, 소백산, 월출산, 덕유산등과 전국 각지의 사찰을 순례하며 수도 정진했다.

1953년, 1988년에 지리산에서 182세로 입망(立亡)했다고 알려진 개운조사(開雲祖師)로부터 선법맥을 전수받고, “후일 백세상수(百歲上壽)할 터이니 그 때 부터 국태민안을 위한 벽사서화를 중생에게 보시하라.”는 말씀을 받았다. 이후 지리산, 태백산, 소백산, 내설악, 속리산, 도장산, 팔공산, 월출산, 덕유산 등 토굴에서 참선 수행정진 했다. 1986년 충북 청원군 남이면 척산리 탄공정사에서 대중포교에 나섰고, 1992년 김영삼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제자 야은·덕암·백천 등 문도들에게 “이제 나라가 큰일 났구나. 내년부터 하늘과 땅과 바다에서 대형횡액이 발생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겠구나”라고 탄식했다. 또 “5년 후면 나라살림이 바닥나서 은행도 부도가 나게 될 터이니 이를 어찌 할꼬”라고 했다. 선사의 예언대로 나라경제가 파탄, 결국에는 IMF(국제통화기금)로부터 금융지원을 받았다.

탄공선사는 팔마도(八馬圖) 및 불화 호랑이화 목단화로 일본 및 동남아에서 대가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벽사서(辟邪書)와 벽사화(辟邪畵)를 남기신 벽사도인(辟邪道人)으로 불리기도 한다.

1998년 5월 24일 저녁, 평상시와 다름없이 상좌스님과 신도 몇 분과 담소하시며 지내다가 밤11시에 모두 각 방으로 물러나게 하고 5월 25일 자시(子時, 0시30분경)에 좌탈열반했으며, 열반 후 3일 동안 시반(屍班)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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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엽 2020-08-29 10:33:44
탄공선사께서 해인사 주지를 하솄음을 알았네요. 탄공선사는 불경해설은 알기 쉽게 하셨고 도력을 가지신 분이며 탄공선사의 책에 90이 넘은 노인이 교통사고 6개월 이상 입원해야함에도 병원서 어떤사람과 탈주를 한뒤 20여일 만에 걸어서 왔는데 그의 스응 개운조사께 가서 치료를 받았다 한다.

불자 2017-05-12 11:41:15
이걸 인터뷰 기사라고 올리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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