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촛불법회…꽃등문화축제”
“진화하는 촛불법회…꽃등문화축제”
  • 진흙속의연꽃/불자블로거
  • 승인 2017.04.1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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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속연꽃] 직선제 실현 3차 촛불법회 참관기
▲ 치어리더가 펼친 직선제플레카드. 사진=진흙속의연꽃ⓒ불교닷컴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라 했습니다. 사소하고 하찮은 것이라도 기록해 두면 역사가 되고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됩니다. 조계종총무원장직선실현을 위한 촛불법회도 그런 것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제3차 촛불법회

직선실현을 위한 촛불법회가 두 차례 열렸습니다. 그러나 기록해 놓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제3차 촛불법회가 4월 8일 토요일 저녁 서울 종로 보신각앞 광장에서 열렸습니다. 어렵게 마련한 자리를 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소위 해종언론이라 폄하하는 두 언론매체, 즉 <불교닷컴>과 <불교포커스>는 이를 보도 합니다. 소위 여당지라 불리우는 매체에서는 철저하게 무시합니다. 이런 사실을 인터넷에도 알려야 합니다. 블로그, 카페, 페이스북 등에 기록을 남겨 두면 역사가 됩니다.

그날 있었던 일을 기록에 남겨 둡니다. 개인사기이도 하지만 무엇보다 참여하지 못한 불자들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한번 써 놓은 글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습니다.

촛불법회도 진화한다

2017년 4월 8일 3차 촛불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종각으로 향했습니다. 종각역에서 내려 보신각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종로는 언제나 익숙한 곳입니다.

오랜만에 보신각 광장에 섰습니다. 넓직한 광장은 축제분위기입니다. 다름 아니라 ‘연등’때문입니다. 종로에 연등이 주렁주렁 걸려 있다는 것은 ‘부처님오신날’이 머지 않았음을 예고하는 것과 같습니다.

종각과 함께 종로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상징이 있습니다. 마치 유에프오(UFO)를 연상케 하는 독특한 스타일의 삼성의 빌딩입니다. 이 건물을 배경으로 하여 울긋불긋 연등이 걸려 있습니다.

오후 7시부터 시작 되는 행사를 위해서 활동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날 3차 촛불법회는 지금까지 방식을 탈피 하여 ‘문화제’ 형식입니다. 무대를 만들고 조명을 설치 하는 등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것입니다. 비록 무명이긴 하지만 가수와 치어리더 응원단을 초대하여 문화축제 형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쯤 되면 촛불법회도 진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치어리더는 M법우님이 섭외했습니다. M대학 치어리딩 모임입니다. 이날 촛불법회를 맞이 하여 특별히 공연하기로 한 것입니다. 예비공연을 하자 사람들이 순식간에 모여 듭니다. 늘 볼거리, 즐길거리로 넘쳐 나는 종로에서 입니다. 흥겨운 음악과 함께 치어리더의 열정적인 율동이 사람들의 시선을 끈 것입니다.

꽃등을 만들고

연꽃은 불교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한국불교에서 연등은 또한 불교의 상징입니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거리마다 울긋불긋 연등이 걸릴 때가 되면 부처님오신날이 머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해마다 연등축제가 열립니다. 연꽃모양의 등을 들고 행진하는 모습은 한국불교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현상입니다. 그런데 직선제 촛불법회에서도 연등이 등장한 것입니다.

준비한 재료를 이용하여 꽃등을 만들었습니다. 컵에다 연꽃잎을 붙여 만든 이른바 ‘꽃등’입니다. 이제까지 보던 촛불과는 다른 것입니다. 이번 3차 촛불법회에 처음 등장한 꽃등입니다.

▲ 꽃등 만들기. 사진=진흙속의연꽃ⓒ불교닷컴

지난해 촛불집회가 있었습니다. 불통으로 일관하던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을 촛불의 힘으로 몰아 낸 것입니다. 어떤 이에 따르면 4.19와 6.10과 함께 세 번째 민중의 승리라 합니다.

촛불의 힘이 불교계에도 옮겨 붙었습니다. 촛불을 든 것입니다. 그러나 불자답게 꽃등이라 불리우는 연등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한국불교 적폐청산 직선제가 희망이다”라는 구호와 함께 하는 꽃등입니다.

왜 스님들 참여가 저조할까?

행사는 여법하게 진행됐습니다. 삼귀의와 함께 반야심경을 봉독했습니다. 그리고 끝날 때는 사홍서원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이날 세 분 스님이 참석했습니다. 늘 단골로 허정 스님과 도정 스님이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허정 스님은 스님들의 참여가 적은 것에 대하여 안타까워 했습니다. 비록 돈키호테 같은 행위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런 노력이 쌓이고 쌓이면 언젠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 했습니다.

멀리 제주도에서 올라 오신 도정 스님은 ‘중물’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승가에서 ‘중물들었다’라는 말은 부정적이라 합니다. 어른 스님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스님을 ‘중물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입바른 소리를 하거나 말을 고분고분 잘 듣지 않은 스님에 대하여 ‘중물이 덜 들었다’고 합니다.

도정 스님은 스님들의 참여가 부진한 것에 대하여 안타까워 했습니다. 스님들의 문제임에도 스님들의 참여가 적은 것을 대단히 아쉽게 생각한 것입니다.

스님들이 참여가 부진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가장 큰 이유로 ‘불이익’을 들 수 있습니다. 촛불법회에 참석하면 현재 살고 있는 처소에서 쫒겨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입니다.

1차와 2차 촛불법회 당시 호법부스님이 사진촬영을 한 바 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일까 스님들이 참여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참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재가자에게도 불익을 준다고 합니다. 촛불법회에서 참석한 재가자의 직장에 전화를 건다거나, 세무조사하도록 압력을 넣는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불교계에도 블랙리스트가

불교계에도 블랙리스트가 있다면 믿을까요? 불행하게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여러 정황으로 보았을 때 불교계에도 블랙리스트가 있음에 틀림 없습니다. 현 총무원장 체제에 반대하는 자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 명지의 꽃등촛불. 사진=진흙속의연꽃ⓒ불교닷컴

불교계에 블랙리스트가 있다면 행동에 제약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막말로 “찍히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잘못 보이거나 밉보이면 불이익 받습니다. 종단에 쓴소리 했다고 하여 주지 연임이 거부되거나, 팟캐스트방송에 출연했다하여 공권정지에다 강등당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더구나 명진 스님의 경우 종단을 비방했다는 이유로 제적당했습니다.

체념적 침묵과 방어적 침묵

모두 다 침묵하고 있습니다. 스님들도 침묵하고 있고 재가불자들도 침묵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습니다. 종단에 대하여 쓴소리 하거나 잘못을 지적하면 ‘확실히’ 불이익 받습니다. 조직침묵입니다.

할 말이 있어도 하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좋은 의견이 있어도 말하지 않습니다. 직무나 조직관련하여 아이디어나 정보가 있어도 말하지 않습니다. 말을 해도 어차피 받아 주지 않을 것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체념적 침묵’입니다.

담마 아닌 것이 득세해도 그냥 내버려 둡니다. 불자들이 3백만명이나 떨어져 나갔음에도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말을 해 보았자 불이익 받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말을 하지 않고 사는 것이 더 낫다고 보는 것입니다. ‘방어적 침묵’입니다.

한국불교에서는 체념적 침묵과 방어적 침묵, 즉 조직침묵이 만연되어 있습니다. 옆에 사람이 죽어 가도 돌아 보지 않듯이, 정법이 훼손되어 가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모두 무관심으로 일관했을 때 한국불교는 공멸할 것입니다.

그들만의 리그에 균열내기

3차 촛불법회는 스님 세 분과 다수 재가활동가들 그리고 뜻을 함께 하는 불자들이 참석했습니다. 오로지 침묵으로 일관하는 한국불교의 현실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입니다. 비록 소귀에 경읽기 또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라 하지만 목소리를 내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만의 리그에 ‘균열내기’ 위한 것입니다.

불상이나 탑을 만들 때 바위를 잘라야 합니다. 바위에 작은 구멍을 내고 나무못을 여러 개 박습니다. 나무못에 물을 부으면 나무가 팽창하여 바위에 균열이 일어납니다. 직선제운동이 바위에 계란치기라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들만의 콘크리트리그에 균열내기입니다. 오로지 이익으로 뭉쳐진 카르텔에 균열 내는 것입니다.

▲ 아프리카 타악기팀 아토 공연. 사진=진흙속의연꽃. ⓒ불교닷컴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고작 수 십명 모여서 직선제 구호 외치는 것이 무모한 것이 아니냐고 말합니다. 보는 이에 따라 돈키호테 같은 행위일지 모릅니다. 또 계란으로 바위치기식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뒤에는 스님들과 불자들이 있습니다. 은인자중하고 있지만 공감하는 대다수의 스님들이 있고, 침묵하고 있지만 응원하는 대다수 불자들이 있습니다.

문화축제형식으로

스님들과 불자들이 촛불을 들었습니다. 벌써 세 번째 입니다. 회수가 진행됨에 따라 촛불법회도 진화해 가는 것 같습니다. 촛불이 꽃등으로 바뀌고 노래와 공연이 있는 문화축제형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날 초청된 가수는 ‘김성만’ 님입니다.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무명가수입니다. 소개하기를 ‘노래하는 노동자’라 합니다. 무대를 만들고 앰프를 설치하면서 노래까지 혼자서 다하는 것입니다. 역시 무명가수로 ‘송인상’님이 두 곡을 불렀습니다. 아프리카 타악기팀 ‘아토’의 신나는 공연도 있었습니다.

▲ 컵등에서 꽃등으로. 사진=진흙속의연꽃ⓒ불교닷컴

명지의 촛불을

한국불교 역사상 최초로 꽃등법회가 열렸습니다. 불자답게 컵등이 꽃등으로 바뀐 것입니다. 불자들은 정성스럽게 만든 꽃등에 불을 붙였습니다. 서로 불을 나누어 가지자 이곳 저곳에서 꽃등 불꽃이 타올랐습니다.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에서 한국불교 개혁을 알리는 불꽃입니다. 담마아닌 것이 득세하는 한국불교에서 정법을 수호코자 불을 밝힌 ‘명지의 촛불’입니다.

치어리딩의 율동에

이날 촛불법회, 꽃등법회에서 최대의 하일라이트는 아마도 치어리딩일 것입니다. 명지대 치어리딩 그룹 청아를 M법우님이 섭외한 것입니다. 이십대 초반의 생기발랄한 남녀 치어리더의 율동은 광장에 온 사람들 시선을 집중시켰습니다.

이날 하일라이트는 직선제 현수막 펼침입니다. 현란한 율동을 마친 다섯 명의 치어리딩 그룹이 무대에 올라섰습니다. 2인 1조로 두 쌍의 기둥을 만들었습니다. 현수막을 펼치니 “직선제를 시행하라”였습니다.

▲ 조계사 대웅전 앞 연등. 사진=진흙속의연꽃ⓒ불교닷컴

무명의 바다에서, 내가 든 작은 촛불하나가

행진이 시작되었습니다. 보신각광장에서 조계사까지 꽃등 촛불을 들고 왕복했습니다. 화려한 도시의 불빛이 꽃등촛불을 압도합니다. 그러나 조계사 경내에서는 밝게 빛났습니다. 화려한 연등천정으로 장엄했을지라도 불이 켜지지 않았을 때는 ‘무명(無明)’입니다. 작은 촛불하나가 능히 연등의 바다를 이겨냅니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조계사 연등은 화려합니다. 울긋불긋 하늘을 가득 매운 연등은 보기에도 매혹적입니다. 특히 불을 밝힌 일주문 방향 연등은 환상적입니다. 그러나 오늘 든 작은 컵등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크고 화려한 연등은 전기의 힘으로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손에 든 작은 꽃등에는 촛불이 타오릅니다. 무명의 바다에서 내가 든 작은 촛불하나가 세상을 밝힌 것입니다.

화염, 광채, 빛깔

초기경전에 “어떠한 땔감에서도 불이 생겨나듯” (S7.9)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급 전단향나무나 소똥을 말린 것이나 땔감으로 사용했을 때 붙는 불의 특징은 똑 같습니다. 어느 땔감이든지 불의 특징은 화염, 광채, 빛깔입니다.

부처님 가르침 앞에 평등합니다. 브라만이나 왕족이나 평민이나 노예나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면 ‘한맛(一味)’입니다. 부처님 가르침 앞에 비구와 비구니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부처님 가르침 앞에 사부대중의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마치 모든 땔감에서 불이 붙듯 부처님 가르침 앞에 차별이 없습니다.

▲ 화염과 광채와 빛깔을 특징으로 하는 꽃등. 사진=진흙속의연꽃ⓒ불교닷컴

어느 땔감이든지 불의 특징은 화염, 광채, 빛깔입니다. 그러나 전기로 장엄된 연등에는 화염, 광채, 빛깔이 없습니다. 단지 빛만 낼 뿐 진짜 불이 아닙니다. 하지만 촛불에는 화염, 광채, 빛깔이라는 불의 특징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정의로운 작은 촛불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습니다. ‘담마 아닌 것(adhamma: 非法)’이 득세하는 세상입니다. 오늘날 한국불교는 비법이 득세하고 있습니다. 스님 아닌 자들이 스님인 것처럼 행세하는 시대입니다. 미치 ‘전기연등’과도 같습니다.

조계사 앞마당에는 화려한 전기연등으로 장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든 작은 촛불하나만 못합니다. 그것은 가짜와 진짜의 차이입니다. 반승반속이 득세하는 세상에서 불자들은 작은 ‘꽃등촛불’을 들었습니다. “어둠 속에 등불을 들어 올리듯이” 뜻있는 스님들과 불자들은 정의로운 작은 촛불을 들었습니다.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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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의 2017-04-11 16:55:25
권승귀에 경읽기

조금 2017-04-11 14:38:26
궁금타님의 독해를 도와드릴게요.

"비불교로 자인하는 자칭 대승신자가 불교를 권유하는 오피니언리더에게 어그로를 거는 이유는 알량한 패거리 자존심이런가?"

먼저 내 글에서 "비불교로 자인하는"이라고 일부러 오해하려 한 것 같은데 그 글에서 "본인"은 앞의 "소승불자"를 지칭합니다. 문맥상으로도 당연히 그러할 수밖에 없는데 억지로 오해하려 하시는군요. 상식적으로도 내가 소승불자인 연꽃"패거리"가 옳고 대승불자인 내가 틀렸다고 생각할 리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불교를 권유하는"? 어느 "불교"를 "권유"합니까? 불성불교도 권유합니까? 중유불교도 권유합니까? 돈오불교도 권유합니까? 화두불교도 권유합니까? 화엄불교도 권유합니까? 김열권 법사님의 대승위빠사나불교도 권유합니까? 도대체 어떤 "불교"를 권유하길래 대승불교, 조계종에 관심이 그렇게 많죠? 남의 불교에 관심이 왜 그렇게 많냐고요.
혹시 동북공정인가요?

궁금타 2017-04-11 09:34:35
비불교로 자인하는 자칭 대승신자가 불교를 권유하는 오피니언리더에게 어그로를 거는 이유는 알량한 패거리 자존심이런가?

그런 점에서 볼 때 2017-04-10 20:12:29
앞으로는 '타종교인이 참가한 대승불교 행사'란 소제목 정도는 본문 앞에 달아야 자기 모순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요?
타인의 비판에는 날카롭다가 자신의 잘못은 돌아보지 못하는 잘못(이중의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으시기를 빕니다.

그리고 참고로 타종교인이 대승불교에 참여하거나 대승공정을 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자신을 속이거나 타인을 속여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동북공정을 하는 이유를 진실한 역사공부라고 포장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말이죠.
근데 설마 정말로 연꽃님이 하시는 것이 조계공정인 것을 아직까지도 모르는 것은 아니겠죠?
불편한 진실을 거론해서 미안합니다.

근본주의 2017-04-10 15:01:56
소승불자가 본인이 비불교로 여기는 대승불교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뭔가요?
본인의 근본주의적 신념에 반하는 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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