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직 제명 파동은 1979년 9월 22일 당시 여당인 민주공화당과 유신정우회 소속 국회의원 160명이 발의하여 당시 야당인 김영삼 신민당총재를 제명시킨 사건을 말한다. 이 제명파동은 1979년 8월 9일 가발수출회사인 YH무역의 여성노동자 172명이 신민당 당사로 찾아와 근로조건과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농성을 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박정희 정권은 이 사건의 배후에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불순한 세력이 있다고 하며 노동자들의 처절한 생존권 요구를 무시하고 8월 11일 새벽 2시 이른바 <101호작전>을 개시, 경찰 1,000여 명이 신민당사에 난입, 농성노동자 172명을 강제해산시키고 신민당 의원 및 취재기자들을 무차별 폭행하는 과정에서 노동자 김경숙양이 추락, 사망하고 100여 명이 부상당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이 사건이후 박정희 정권은 김영삼 신민당총재를 처리하려고 마음을 먹었으며 1979년 9월 16일 김영삼 총재가 <뉴욕타임스>와 기자회견을 하자 10월 4일 “국헌을 위배하고 국가안위와 국리민복을 현저히 저해하는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등 반국가적 언동을 함으로써 스스로 주권을 모독하여 국회의 위신을 실추시키고 국회의원으로서의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내용으로 의원직 제명을 통과시킨 것이다.
그리고 2015년 11월 4일 조계종 중앙종회는 야당인 삼화도량 대표 영담 스님을 제명했다. 그 이유는 “최다선 의원의 신분으로 왜곡 과장되고 부적절한 언행으로 중앙종회와 의원의 위상을 훼손하고 의원의 품위를 현저히 해하는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의원의 품위를 현저히 해하는 행위”라는 것이 일부 고위층 승려들의 범계행위를 거론한 것과 인터넷 팟캐스트 언론인 “생선향기” 대담에서 조계종 총무원 현 집행부의 소위 “자성과 쇄신”을 비판한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박정희 독재정권이 언론을 통해 자신들을 비판했다고 해서 “국회의 위신을 실추시키고 국회의원으로서의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내용으로 김영삼 신민당 총재를 제명한 것과 “중앙종회와 의원의 위상을 훼손하고 의원의 품위를 현저히 해하는 행위를 했다”고 종단의 일부 범계승들을 비판한 영담스님을 제명한 이유가 어쩌면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는가.
이것 뿐 만이 아니다.
박정희정권은 5.16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뒤 군사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탄압의 방식은 보도지침을 통한 기사내용규제, 기관원의 언론사 출입, 임의동행 형식의 언론인 불법연행조사, 기자에 대한 폭력행사, 구속 등이었다. 이에 대해 71년 4월 젊은 기자들 중심으로 ‘언론자유수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이 되자 독재정권은 12월에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통과시켜 언론탄압을 더욱 강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이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언론자유수호운동’이 더욱 확산되자 독재정권은 74년 12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동아일보 광고탄압을 하였다. 이 광고탄압이후 이후 79년 10월 26일까지 4년동안 언론은 철저하게 독재권력에 유린당했다.
그리고 지난 2012년 5월 백양사 도박사건을 보도하였다고 510일동안 <불교닷컴>을 출입금지시키고 광고탄압을 하게 한 결의문을 채택한 조계종 중앙종회는 2015년 11월 4일 또다시 <불교닷컴>과 <불교포커스>를 ‘해종 악성 인터넷 매체’로 규정을 하고 이를 근절한다는 명목으로 공동대책위원회 구성을 위한 결의문을 채택을 하였다. 이 결의안을 발의한 일부 중앙종회의원들은 “최근 종단 관련 현안에 대해 근거없는 폭로와 비방이 극에 달하고 있다”며 “확인되지 않고 무책임한 폭로에 대해 일부 인터넷매체들이 이를 마치 사실인양 왜곡하고 확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들은 해종 언론, 근거 없는 폭로를 이야기하지만 어떤 내용이 근거 없는 폭로이고 해종행위인지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다. 범계나 파계의혹이 거론된 당사자들이 이에 대해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들 말대로 근거를 가지고 사실이 아님을 밝힌 적도 없다. 사실이 아님을 밝혀달라는 기자들의 인터뷰 요구에도 수개월이 넘도록 침묵만 지키고 있다가 불쑥 기자회견 자리에 나와서 일방적으로 자신의 주장만 이야기하고 나서 질문도 안 받고 사라지고 나서 근거 없는 폭로라고 매도를 한다.
독재정권을 비판한 시민과 언론을 탄압한 박정희 독재정권은 결국 1979년 10월 26일 종말을 고하고 만다. 대한불교조계종 일부 권승들의 범계와 파계 의혹을 비판하는 시민단체와 이를 보도한 언론을 탄압하는 이들이 박정희 독재정권과 같은 길을 가게 될지 아니면 더욱 승승장구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인도불교 역사에서 슝가 왕조의 창시자인 뿌샤미뜨라왕(기원전 187-151년)은 신하들과 토의를 하다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하면 내 이름을 세상에 퍼뜨릴 수 있겠는가?” 그러자 한 신하가 대답했다. “폐하의 선임자인 아쇼까 왕은 부처님 가르침을 수호하여 8만4,000의 사원과 탑을 세웠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이 존속하는 한 그의 이름은 계속해 남아 있을 것입니다.” 뿌샤미트라는 다시 말했다. “그것은 전임자가 한 일이고 아쇼카 만큼 이름을 남길 다른 방법은 없는가?”
이 때 다른 사악한 신하가 말했다. “사람이 선을 행하건, 악을 행하건 이 두 경우 똑같이 명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전 왕은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고 8만4천의 사원과 탑을 세워 그의 명성이 오래갈 것입니다. 만약 대왕께서 그것들을 파괴해 버린다면 뒷날 오래도록 폐하의 이름이 전해질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뿌샤미트라는 군대를 통원하여 불교를 탄압을 하였고, 그래서 그의 소원대로 불교탄압을 한 군주로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범계와 파계행위를 비판하는 이나, 이를 근거 없는 폭로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이나 어쨌든 양쪽 다 언론에 거론이 되었으니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과연 누가 해종행위자인지는 세월이 지나면 드러날 것이다.
/ 김영국 연경불교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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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단이 온통 아수라장인데 누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이제 모두 입다물고 참회하길
바란다 김영국씨는 이렇게 꼭 써야만 속 시원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