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려들이 게으름에 빠져 개인 이익만..."
"승려들이 게으름에 빠져 개인 이익만..."
  • 마성 스님 팔리문헌연구소장
  • 승인 2013.06.12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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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3] 마성 스님의 <龍城震鍾의 佛敎改革運動>

3. 용성의 의례개혁운동

근대불교시대의 백용성(白龍城, 1864-1940), 박한영(朴漢永, 1870-1948), 한용운(韓龍雲, 1879-1944) 등은 승려의 신분으로 직접 사회운동에 뛰어들어 일제에 항거하는 한편, 불교 내부의 잘못된 제도와 의례 등을 시대사조에 맞게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57) 특히 의례는 종교구성의 삼대요소의 하나로서 필수불가결한 것이며,58) 불교개혁에서 다루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부분이었다.59)

이와 같이 근대불교에서 의례개혁은 당면한 과제 가운데 하나였다. 조선시대의 불교는 일반 민중을 대상으로 하는 ‘의례불교(儀禮佛敎)’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60) 승려들은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불교 본래의 뜻과 가치를 실현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속칭 무당적(巫堂的) 불교로 변질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61)

특히 불교의례의 민중적 전개 혹은 무속화, 예능화 현상은 근대불교의 의례개혁운동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비판받았다. 이처럼 1920년대까지도 근대한국의 불교의례는 정리되지 않고 난삽했으며 무속화 되어 경건함과 엄숙함을 잃고 세간의 비난의 대상이 되어있었다.62) 당연히 불교의례는 개혁의 대상이었다.

용성의 개혁운동은 매우 다양하다. 이를테면 대중선운동(大衆禪運動), 포교의 쇄신, 역경사업, 계율진흥운동, 자주적 통일종단 주장, 경제적 자립추구, 농민의 자립, 자주독립운동 등이다.63) 이 중에서 의례와 가장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것은 포교의쇄신과 역경사업에서 나타난 그의 활약이다.

한용운, 백용성, 이능화, 권상로 등은 모두 의례개혁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서로 견해가 달랐다. 불교의례를 대하는 인식과 태도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불교의례와 관련된 용성의 업적은 찬불가 제작과 불교의식의 한글화였다. 백용성이 제작한 찬불가 7곡, 즉 왕생가(往生歌), 대각교가(大覺敎歌), 권세가(勸世歌), 세계기시가(世界起始歌), 중생기시가(衆生起始歌), 중생상속가(衆生相續歌), 입산가(入山歌) 등은 지금도 전하고 있다.64)

「대각교의식」65)에서 의식문을 한글로 제작한 것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이것은 순 한글화된 의식문의 효시이다. 또한 그는 포교방법에서 가히 시대를 앞서간 혁신적 면모를 보였다. 그는 대각사(大覺寺) 법당에 서양식 오르간을 들여와 연주하였으며, 찬불가를 부르게 하는 등 현대적 포교방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66)

용성이 이렇게 혁신적 방법을 사용하여 불교포교의 최전선에 뛰어든 것은 당시 한국불교계의 상황에 대한 용성의 자각과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첫째, 타종교에서는 찬송가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교화활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불교의 교화방법은 너무나 낙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둘째, 불교인의 자각 없는 처신과 의례의 경박성 때문이었다. 그는 당시 승려들이 “안일에 취하고 게으름에 빠져 도덕을 닦지 아니하고 개인의 이익만 얻고자 하며 시주에게 아부하니 막중한 성전(聖殿)이 무도장(舞蹈場)과 다름없이 되었다”67)고 개탄하였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용성은 다양한 방법으로 불교를 시대적으로 적응하는 현대화의 노력과 대중화, 생활화를 실천하였다. 그 대표적인 것이 불경의 번역이었으며, 다른 하나가 불교의식의 한글화였다.

용성은 현대역경운동(現代譯經運動)의 비조(鼻祖)로 불린다.68) 그의 역경의 동기는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서 발표의 대표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경성 서대문감옥에서 3년간 옥고를 치루고 있을 때였다.69)

용성이 감옥에서 각 종교 신자들의 종교서적을 보니 모두 한글로 번역된 것이고 한문으로 된 서적은 별로 없었다. 그것을 보고 역경에 대한 원력을 세웠다고 한다. 용성이 평생 역경, 저술한 경전과 책은 40종 10만부에 달한다고 한다.70)

그런데 그의 번역은 이전의 한글번역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는 역경에 있어서 과거 세종 이후의 조선글과는 달리 완전히 의역했을 뿐만 아니라 한자의 원문을 넣지 않고 전 한글로만 작성하여 마치 우리말로 된 경전을 읽듯이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요점만 들어 번역하고, 중복되고 번거로운 것은 삭제하거나 간단한 뜻으로 번역하였다.71)

이처럼 용성의 중요업적의 하나가 불교경전의 번역이었으나, 그것은 불교의례의 번역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대각교의식은 그의 나이 64세인 1927년 처음 출판되었다.

이 의식집은 불가에서 사용하는 제반의식을 모아 대각교에 맞추어 찬술한 것이다. 이 책은 향례(香禮), 성공절차(聖供節次), 원각경 문수장(圓覺經文殊章),보문품(普門品), 반야심경(般若心經), 시식(施食, 略禮), 시식(施食, 廣禮), 구병시식(救病施食), 거량(擧揚), 혼례(婚禮), 병인간호(病人看護), 상례(喪禮) 등 총 2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72)

이 대각교의식에 찬불가가 실려 있다. 이 책은 오늘날 한국 불교의식의 한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용성의 선구적인 업적이다.73)

그렇다고 해서 용성은 전통적 불교의례의 의의와 기능을 배척한 것은 아니다. 그는 다양한 불교의례들을 적극적으로 실천하였다. 그는 선원(禪院)을 설립하였고, 해마다 법계 고혼을 천도하는 천도의식과 방생법회도 실시하였다.74)

그는 한용운처럼 과격하게 의례를 폐지하자고 주장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용성은 전통적인 불교의례의 취지와 내용 그 자체에 대한 전면적 개혁은 아니었다. 그는 다만 그것의 실천방법과 형식의 시대적 변용을 꾀했을 뿐이다.75)

이와 같이 용성은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불교의례를 개혁한 선구자적 인물이다. 용성은 기존의 불교의례를 과감히 한글화하였다. 또한 그는 찬불가를 제작하는 등 기존의 불교종단에서는 감히 생각도 하지 못한 불교의례개혁을 단행하였다.76) 이런 측면에서 보면 그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간 인물인가를 알 수 있다.

4. 용성의 선농불교운동

용성은 대각교를 통해 한국불교의 전통을 계승하고자 노력하였다. 그가 꿈꾸었던 이상적인 한국불교 승단의 모습은 청정한 지계생활을 바탕으로 자급자족하는 선농불교(禪農佛敎)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그는 일생동안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였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그가 1932년 불교지에 기고한 中央行政에 對한 希望이라는 글에 잘 나타나 있다.

我는 如是히 觀한다. 世界思潮가 年年月月히 變하고 反宗敎運動이 時時刻刻히 突進하고 잇다. 吾人이 此時를 當하야 敎政을 急速度로 改新치 안이하면 안이 될 것이다. 하나는 禪律을 兼行하지 안이하면 안이 될 것이요, 하나는 吾人의 自身이 勞農하지 안이하면 안이 될 것이다. …… 現今寺院을 觀察할진대 淸淨道場이 婬窟로 化하였으며 酒肉五辛이 浪藉하고 또 私利에 沒頭하니 魔가 沙門을 作하여 佛道를 自滅케하냐요. ……
첫째 律文을 崇尙하야 飮酒食肉이 無妨般若라고 하는 惡習을 改革하여 吾佛의 敎理와 世間의 常識을 兼備케하여 唯心唯物無二道를 實行하야 勞力自給함으로써 反宗敎者를 防禦하며 ……
77)

위 글에서 용성은 선율(禪律)을 겸비(兼備)할 것과 노농(勞農)에 종사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그리고 사원에서 승려들이 계율을 지키지 않고, 삼보정재를 탕진하는 것에 대해 통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는 당시의 불교지도자들에게 율문(律文)을 숭상하여 악습을 개혁하고 불교의 교리와 사회의 상식을 겸비할 것을 요구하였다.

실제로 용성은 1927년 함양(咸陽) 백운산(白雲山)에 화과원(華果院)을 건립하여 선농불교(禪農佛敎)를 실천에 옮겼다. 그는 이곳에 30정보의 토지를 확보하여 밤나무와 감나무 등의 유실수를 심었다. 그리고 간도의 연변과 길림성인 연길(延吉)의 명월촌(明月村)과 녕봉촌(寧鳳村)에 전답 70여상(晌)을 마련하여 대각교당을 설립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운허스님이 쓴 선농관(禪農觀) 이란 글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78)

그리고 용성의 나이 70세 때인 1933년 1월 31일 대각교중앙본부(大覺敎中央本部)에서 각설범망경(覺說梵網經) 3권을 번역하여 출판하였다.79) 그런데 이 책을 번역간행하면서 대각교수계의식(大覺敎授戒儀式) 과 대각교참회행법(大覺敎懺悔行法)을 정립하여 추가하였다. 이것은 승단의 지계정신을 고취하기 위한 것임은 말할 나위없다.

특히 대각교에서는 삼취정계(三聚淨戒)와 범망경(梵網經)의 대승보살계(大乘菩薩戒)를 중시하였다. 이처럼 그는 한국불교의 승풍진작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경주하였다.

그러나 용성의 대각교는 그 이후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다. 일제가 대각교를 유사종교(類似宗敎) 단체로 분류하고 계속적으로 감시하고 압박을 가해 왔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종교단체는 재단법인으로 인가를 받아야만 법적으로 재산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용성은 일제에 비협조적이었기 때문에 그가 창립한 대각교는 재단법인으로 인가를 받을 수가 없었다. 대각교당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은행에 신탁(信託)하는 길뿐이었다. 그래서 단기 4267년(1934) 12월 7일 대각교당을 한국신탁은행에 신탁하였다.

그리고 2년 뒤인 1936년 11월에는 대각교의 모든 재산을 범어사로 이전(移轉)하였다. 이때 ‘대각교중앙본부(大覺敎中央本部)’라는 명칭도 ‘대본산 범어사 경성포교소(大本山梵魚寺京城布敎所)’로 바뀌게 되었다. 이것은 ‘대각교’의 해체를 의미한다. 결국 대각교는 기존의 교단으로 환원하게 되었다.

57) 송현주, 앞의 글, p.163.
58) J. Wach, Types of Religious Experience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2), pp.30-37.
59) 송현주, 앞의 글, p.163.
60) 洪潤植, 「近代韓國佛敎의 信仰儀禮와 民衆佛敎」, 「崇山朴吉眞博士古稀紀念韓國近代宗敎思想史」(이리: 圓光大出版局, 1984), p.483.
61) 柳炳德, 앞의 글, pp.142-143.
62) 송현주, 앞의 글, pp.165-166.
63) 光德, 「龍城祖師와 새 佛敎運動」, 釋林 제13집(석림회, 1979), pp.38-40.
64) 白龍城, 「大覺敎儀式」(京城: 大覺敎中央本部, 1931), pp.1-173; 김정묵 편, 찬불가(대한불교정선포
교당, 1948 초판/1959 3판); 韓鐘萬, 「韓國佛敎思想의 展開」(서울: 민족사, 1998), p.408.
65) 白龍城, 「大覺敎儀式」(京城: 大覺敎中央本部, 1931), pp.1-173.
66) 송현주, 앞의 글, p.174.
67) 白龍城, 「中央行政에 대한 希望」, 「佛敎」 제93호(佛敎社, 1932. 3), pp.15-16.
68) 光德, 앞의 글, p.39.
69) 白龍城, 「著述과 飜譯에 대한 緣起」, 「조선글 화엄경」 12, 삼장역회, 1928, p.87. (龍城全集12-87)
70) 光德, 앞의 글, p.38.
71) 韓普光, 「龍城禪師硏究」(서울: 甘露堂, 1981), pp.65-66.
72) 白龍城, 「大覺敎儀式」(京城: 大覺敎中央本部, 1931), pp.1-173.
73) 손현주, 앞의 글, p.177.
74) 白龍城, 「著述과 飜譯에 대한 緣起」, 위의 책, p.87.
75) 손현주, 앞의 글, p.177.
76) 송현주, 앞의 글, p.182.
77) 「佛敎」 93호(佛敎社, 1932. 3), pp.15-16.
78) 「東山慧日撰集」, 「龍城禪師語錄」, 卷下(京城: 三藏譯會, 1941), p.39. (龍城全集1-575)
79) 白相奎譯, 「覺說梵網經」 (京城: 大覺敎中央本部, 1933). (龍城全集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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