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봐요
거울을 봐요
  • 현각 스님
  • 승인 2013.06.07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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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현각 스님의 <클릭! 마음의 두드림>- 13

며칠 전 해운대에 갔다.

벌써 더위를 이기려고 바닷가를 거닐고 있는 사람이 자못 많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성급한 피서객은 바다에 몸을 맡기고 더위를 쫓고 있는 모습이 철 잃은 듯 보이지는 않았다.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싣고 둥실둥실 떠가는 모양이 흡사 일엽편주와도 같았다. 솟았다 내려앉았다 연신 파도는 넘실거린다.

저 연약한 물이 육중한 사람의 무게도 거든히 싣고 달릴 수 있다니 참 기이하기도 하다. 내면의 고요가 충전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저와 같이 사람도 내면세계를 치장하지 않으면 바깥 경계에 자신을 잃고 말 일이다. 그리고 거선과 같은 힘이란 작용할 수 없는 일이기도하다. 한동안 지탱하다가 파산을 맞고 말 일이다.

우리는 물거울을 본 경험이 있다. 고요한 호수의 표면에 다가가면 저절로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이미 그 전에 산하대지가 자리 잡고 있기도 한다. 수면이 고요하면 할수록 사물은 영롱하게 비치지만 잔물결이라도 일면 이내 모양이 흐트러지고 만다.

그리스 신화에 나르시스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아름다운 소년 나르시스는 물을 마시려고 호숫가에 갔다가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버렸다. “아니, 이토록 아름다운 소년이 있다니!” 나르시스는 물위에 비친 소년을 잡으려고 물속에 뛰어 들었다. 그러나 결국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그가 죽은 자리에 아름다운 꽃이 피었는데, 그 꽃이 바로 수선화다.

일상에서 하루에 최소한 몇 차례씩 거울을 보게 된다.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매만지고 머리도 매만지게 된다. 그러다 보면 머리에 앉은 백발인 줄도 모르고 떨어내려고 한다. 어제의 검은 머리에 어느새 백발이 점령군이 된 사실을 알아차리고 입맛을 다시는 경우도 생긴다.

전적으로 외모만 보고 생긴 일이다. 리얼한 거울. 인간의 내면세계에 덕지덕지 내려앉은 속진을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울은 없을까 궁금해진다.

거울의 속성은 무엇일까. 거울은 정직하다. 거짓을 모른다. 그러기에 정직은 아무런 수식어가 필요하지 않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드러날 뿐이다. 인위적으로 더한다거나 빼낼 수 있는 재간을 지닌 사람은 아무도 없다. 거울은 아마 정직의 표상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으리라. 거울의 세계에서는 참과 거짓을 논할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이 여실하기 때문이다. 참 편한 세상이다.

거울은 또한 피로를 모른다. 사람들은 피로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하루 일과에서 조금 과하게 일을 했다 싶으면 죽겠다, 피로하다는 말을 연발한다. 거울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이건 산하대지를 두루 비추어도 피로한 기색이 전혀 없다. 마치 초인적인 힘을 축적하고 있는 것 같다.

거울은 분별심도 없다. 상대 편과 우리 편이란 분별심이 전혀 없다. 자기 영역에 들어 온 모든 사물에 차등을 두지 않고 받아들인다. 인간세상과는 딴판이다. 사람들이야 별의별 분류를 해서 너와 나를 구분하기도 한다. 이러한 분별심은 지극히 소아적이어서 별로 힘을 얻지 못한다. 마침내 자멸을 초래하게 되고 집단을 넘어지게 하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분별에는 필연적으로 망상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외모에 관심을 쏟는다 한들 오는 백발을 어이 도끼 들어 막을 수 있으며, 이랑이 깊어가는 주름살을 명품 화장품이나 값진 주단으로 가릴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렇다면 이제 내면에 관심을 기울이자. 저 신록이 우거진 어느 골자기 토굴에서는 열심히 거울을 보는 이들이 있다. 아침이면 세면하고 거울 앞에 서서 타이 매는 도시의 샐러리맨의 외모를 살피는 모습과는 영 다르다.

내면의 세계를 투명하게 반조하기 위하여 정진하고 있는 수행자들이 있다. 끼룩거리고 허공을 가르는 산새의 리듬에 호흡을 고르며 내면을 탐구하고 있다. 날이 밝으면 번뇌를 털어낸다. 그 번뇌는 빛에 반사되어 허공에서 윤무하는 생선비늘처럼 조각조각 부서져 흩어지고 만다. 그는 달이 뜨면 고요의 밭에 씨를 넣는다. 여름 밤은 경이롭다. 작은 생명들이 거대한 군무를 추며 지나가기도 한다. 그들을 지켜주는 화엄신장의 행렬인 듯, 천상의 찬양대인 듯 하다.

자신을 챙기는 수행자. 그래서 보지 못한 부분까지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마치 자동차의 백미러가 운전자의 볼 수 없는 곳까지 비추어 주듯이 내면의 구석구석을 살피려고 한다. 치과용 거울이 환자가 직접 볼 수 없는 곳까지 비추어 주듯이 섬세하게 살피려고 한다.

보이는 곳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곳까지 확연이 내면 세계를 본 사람을 소위 견성했다고 한다. 고요를 수반하지 않은 견성이란 한낱 구두선일 뿐이다. 거울에 동요란 없다. 단 한 경우에만 있을 것이다. 파경의 경우다. 파경을 맞은 거울은 이미 그 기능을 상실하고 만 것이다. 내면의 거울을 열심히 들여다보자.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장ㆍ동국역경원장.  1972년 석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 수지. 동국대 석ㆍ박사 과정 후 선학과 교수. 정각원장, 불교대학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선학회 초대 학회장, 美 하버드대 세계종교연구센터 초청 연구교수 등을 지냈다. 『선학의 이해』 『선어록산책』 『행복에 이르는 뗏목』 『날마다 좋은 날』 『최현각선학전집』(全11권)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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