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열어 내일을 선물한 현대판 모세
바다를 열어 내일을 선물한 현대판 모세
  • 변택주 연구소통 소장
  • 승인 2013.01.25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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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변택주의 <섬기는 리더가 여는 보살피아드>-4. 현봉학

올해 한국전쟁 ‘정전停戰’ 60주년. 60년 전 1950년 6월 25일 기습 공격으로 한 달여 만에 낙동강까지 밀려 ‘바람 앞에 등불’이던 나라. 그해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가까스로 되살아나 38선을 넘어 북진, 통일을 눈앞에 두는 듯 했다. 그러나 10월 19일 중공군이 국경을 넘어 쏟아져 들어오고 국군과 UN군은 12월 4일 평양, 12월 24일 흥남에서 철수하고 1월 4일 정부는 서울을 다시 내주고 후퇴한다. 1.4후퇴하면 ‘굳세어라 금순아’란 노래를 낳은 ‘흥남철수작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때 전장 한복판에서 10만 명 가까운 사람 목숨을 구하는 기적을 일으킨 이가 있다. 현봉학.

▲ 현봉학과 흥남부두에 밀려든 피난민들

필연 같은 우연한 만남

현봉학은 1922년 함경북도 성진에서 태어나 함흥고보와 세브란스 의전을 마쳤으나 공산당 박해로 식구들을 데리고 38선을 넘었다. 1947년 서울적십자병원 의사가 된 현봉학은 이화여대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윌리엄스 부인의 도움으로 미국 버지니아 주립대학으로 유학을 떠난다. 2년여 동안 임상병리학을 배우고 1950년 3월 한국으로 돌아와 세브란스 병원에서 일하다가 한국전쟁을 맞는다. 전쟁통에 피범벅이 된 채 밀려드는 병사들을 치료하느라 여념 없던 현봉학은 피가 모자라자 자기 팔뚝에 주사바늘을 꽂아 뽑아낸 피로 수혈을 하기도 했다.

국군과 함께 후퇴해 대구에서 군의관으로 일하다 우연히 한국 해병대 통역 문관이 된 현봉학은 서울을 되찾고 북진하는 한국 해병대를 따라 강원도 고성까지 갔다가 시찰 나온 미 10군단장 에드워드 알몬드(Edward E, Almond) 소장과 부참모장 에드워드 포니(Edward Forney) 대령을 만난다. 알몬드 장군은 현봉학에게 영어를 아주 잘 하는데, 어디서 배웠느냐고 물었다. 버지니아 주립의과대학에서 공부했다니까, 자기 고향이 바로 버지니아 주 루레이(Luray)라고 반기면서 고향을 물었다. 고향이 미 10군단 사령부가 있는 함흥이라고 하자, 함흥을 아는 사람이 없어 고민하던 참이라며 현봉학을 미 10군단 민사부 고문으로 임명했다.

11월 하순 미 10군단 해병대 1사단은 개마고원 장진호를 따라 압록강 중류 쪽으로 진격했으나 중공군에 포위되었다. 기온은 낮에는 영하 30℃, 밤에는 영하 40℃ 밑으로 떨어져 중공군보다 추운 날씨와 먼저 싸워야 했다. 맥아더 사령부는 12월 11일 전면철수 명령을 내렸다. 미군 철수작전에는 병력 10만 명과 수십만 톤 물자 수송뿐 피란민 수송계획이 없었다.

▲ 빼곡이 배에 오른 피난민들

UN군 협조한 이들은 다 죽는다

그러나 원산과 함흥이 중공군과 북한군 수중에 떨어져 육지 길이 막히자 UN군에 협력해 보복이 두려웠던 피난민들은 흥남으로 몰려들었다. 10군단 민사부 고문이던 새파랗게 젊은 28살 현봉학은 알몬드 장군에게 피난민들도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알몬드 장군은 군인들과 장비 철수도 모자랄 판인데 피난민을 태울 여력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중공군은 함흥 턱밑까지 와 있고, 애가 닳은 현봉학은 끈질기게 “우리만 철수하면 UN군에 협력한 사람들은 다 죽는다.”며 매달리고 또 매달렸다. 보다 못한 수륙양용 전문가로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주역인 부참모장 포니 대령은 군 수송선 탱크와 야포, 트럭 사이사이에 피난민을 끼워 태우면 4, 5천 명쯤은 태울 수 있다고 했다. 알몬드 장군은 현봉학과 포니 대령 의견을 따라 유래 없는 피난민 수송을 감행하기로 한다. 현봉학은 그 길로 지프를 몰고 함흥으로 달려가 서둘러 철수하라고 했다. 그 소식을 듣고 수만 명이 몰려들었다. 배를 타고 못 타고에 따라 삶과 죽음이 갈렸기에. 알몬드 장군은 고민 끝에 군 장비를 버리고 피난민을 배에 태우기로 마음을 굳힌다. ‘크리스마스 카고 작전’으로도 불린, ‘흥남철수작전’으로 군인 10만5천 명과 9만8천 명이 넘는 피난민은 배 195척에 나눠 타고 남으로 올 수 있었다.

1950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피난민 1만4천 명을 마지막으로 태우고 남녘으로 내려온 메러디스 빅토리호 상급선원 로버트 러니는 뒷날, “피란민들은 질서정연하게 배에 오르고, 서로 밀치지도 않았다. 배에는 화장실도, 물도, 음식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 추운 갑판 위에서 잘 참아준 그 사람들이 진정한 영웅”이라고 추켜세웠다. 현봉학은 “피난민들은 선박 구석구석뿐 아니라 차량 밑, 장갑차 위에서 모세를 따라 홍해를 건너는 마음으로 거제도에 왔다”고 돌아봤다.

바닷길을 열어 9만8천여 명에 이르는 피난민들에게 내일을 선물한 현대판 모세 현봉학. 그러나 “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당시 함북도지사였던 문준희를 비롯해 북녘 땅 곳곳에서 피란민들을 탈출시키고 숨진 수많은 분이 있었다.”며 고 손사래 쳤다. 외려 자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이산가족이 됐다며 통일을 간절히 바랐던 현봉학은 2007년 11월 25일 자신이 몸담았던 미국 뉴저지 주 뮐렌버그 병원에서 86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현봉학, 몸은 비록 버렸지만 누대를 이어갈 내일을 선물 받은 이들 삶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인문학 강의를 하는 경영코치, ‘연구소통’ 소장으로 소통을 연구하며, 지금즉市 트區 들으面 열리里 웃길 79에 산다. 펴낸 책으로는 <법정스님 숨결>과 <법정, 나를 물들이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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