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보호구역
어른 보호구역
  • 현각 스님
  • 승인 2013.01.16 09:5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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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현각 스님의 <클릭! 마음의 두드림>-2

길을 걷고 있다. 그 길 인도에는 소나무 가로수가 정연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겨울이라서 일까. 그 푸르름이 신선하기까지 하다. 아파트 단지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소나무는 더욱 그렇다.

특별한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느림보 걸음을 걸었다. 행인의 모습도 보고, 건물의 생김생김도 음미하다 보니 모든 것이 새롭기만 하다. 앞에 젊은 남녀가 걷는 모습을 본다. 팔짱을 끼고 어깨가 들썩이는 품세가 여간 다정해 보이고 즐거운 모양이다. 그들의 흥을 깰까봐 간접흡연도 감수하며 조심스럽게 뒤에서 걸었다. 얼마쯤 가다가 피우던 담배를 골목길에 던져 버렸다. 저럴 수 가 있나. 어느 미화원의 노고를 한 번 쯤 생각했다면 저럴 수는 없는 일 일 터인데 ….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에서는 흡연이 건강에 얼마나 해를 미치는지 계몽을 하고 있는데도 젊은이는 남의 일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도 저들의 어깨에 이 땅의 미래가 달려 있지 않겠는가. 기성세대가 염려하는 것 보다 훨씬 나은 모습으로 살 것이다.

초등학교 근처에 가면 ‘어린이 보호구역’이란 글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최소한 이곳에서는 어린이를 위하여 자동차도 서행하라고 턱도 높여 놓았다. 이런 장소에서 질주하는 차를 보면 눈살이 잔뜩 찌푸려지기 마련이다. 응당 보호 받아야 할 범위가 비단 자동차로부터 만은 아닌 듯 하다. 사회악을 일으키는 검은 마수로부터도 필연코 보호 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상당한 괴리가 있기도 하다.

그런데 ‘어른 보호구역’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에 잠겼다. 모든 인격이 두루 갖추어진 후 성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세월이 흘러 일정한 연령이 되면 의무조항보다 권리가 먼저 부여되는 것이다. 그 의무는 구속력 보다 도덕률에 바탕을 두는 경우가 많다. 공공장소에서 질서를 지키는 일, 대중교통에서 자리 양보, 길을 걸으며 흡연을 삼가 하는 것, 휴지를 제자리에 버리는 습관 등은 전적으로 각자의 양심에 호소하는 문제이다. 여기서 자율적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캠페인이 있고 더 나아가 벌금까지 부과하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흡연 문제는 흡연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담배는 대한민국 전매청에서 독점으로 제조해 놓고 피우지 말라고 하기도 하고 걸핏하면 담뱃값 인상 운운 하고 있으니 자기모순이 아닐까 한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삶이란 의미가 없다. 우리는 큰 짐을 지고 가는 나그네가 되었다. 이정표 없는 거리를 한정 없이 걷고 있다. 그 큰 짐은 형상이 없건만 무게는 엄청나다. 마치 나무꾼이 등짐을 부려 놓고 ‘휴~’ 하고 숨을 내쉬게 되면 무거운 등짐으로부터 자유를 얻듯이. 무거운 짐을 지고 있을 때 경험해 보지도 못했던 경치도 볼 수 있으며 듣지 못했던 진귀한 소리도 들을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그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의 짐을 훌훌 떨어내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아집의 짐이야말로 멀쩡한 사람을 병들게 한다. 눈앞을 가리고 귀가 그 기능을 다 하지 못하고 만다. 그 보다 더 한 것은 옳은 판단력을 잃고 만다는 것이다. 판단이 흐리면 방향감각을 잃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르고 만다. 이 가공할만한 짐을 내려놓으면 육신도 가뿐해지고 정신도 맑아지기 마련이다. 영겁을 말하면서도 찰라 조차도 견디기 힘들어 하는 군상을 볼 적마다 속이 탄다. 그래서 교육의 한계는 여기까지인가 자문해 보기도 한다.

철저(徹底)라는 말이 코끼리가 한 발 한 발 옮길 때마다 단단하게 땅 위를 빈틈없이 딛는 데서 연유된 말이라고 한다. 새해 벽두에 자신을 철저히 챙겨야 할 일이 많을 듯 하다. 하찮은 나의 행위가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일, 허투루 한 말 한 마디가 남의 가슴을 멍들게 하지 않는 일, 느슨한 나의 일상이 삶을 지루하게 하지 않는 일이다. 만약 지속적으로 매너리즘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면 ‘어른 보호구역’에 들어 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길 밖에 별 도리가 없을 것이다.

광대무변한 여래의 큰 바다에 첨벙 뛰어들어 보자. 물의 깊이와 유속을 모르고 뛰어든다는 것은 모험 같지만 불법의 바다는 모험의 세계가 아니고 체험의 세계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이상세계다. 그 세계는 시비ㆍ선악ㆍ미추가 용해된 무상심심미묘법의 세계이니까.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전북 정읍 출생. 혜정 스님을 은사로 출가, 1972년 석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 수지. 동국대 석ㆍ박사 과정 후 선학과 교수. 정각원장, 불교대학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선학회 초대 학회장, 美 하버드대 세계종교연구센터 초청 연구교수 등을 지냈다. 『선학의 이해』 『선어록산책』 『행복에 이르는 뗏목』 『날마다 좋은 날』 『선학전집』(全11권)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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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모시로이 2013-01-21 16:21:31
어른 보호구역 !
참 재미진 표현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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