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을 버리면 우리 모두가 부처
부모가 자식을 부처로 섬기는 것이 진정한 자녀교육
특히 자식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행복과 불행 사이를 널뛰기하게 만든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행복을 주다가 가장 깊은 괴로움의 씨앗이 되기도 하는 자식. 오죽하면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싶다. 나 역시 자식 때문에 울고 웃으며 행복과 불행을 오가는 엄마다. 맹랑한 눈빛으로 고집을 피우는 아들을 보며 버거워할 때 이 책 <스님의 자녀 수업-내 아이가 행복해지는 템플스테이식 교육법>을 만났다. 보편성을 띠고 있는 것은 그렇듯 공감이 된다. 한 구절 한 구절이 마치 나를 위해 쓴 것 같았다.
승한 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북한산 중흥사로 향했다. 눈 쌓인 산길을 오르느라 숨은 가쁘고 몸은 고되었지만, 한 폭의 산수화 같은 북한산 풍광까지 더해져 마음은 날아갈 듯했다.
부모는 자녀의 거울
북한산 중흥사 복원 불사에 원력을 보태고 있는 승한 스님(중흥사 총무)은 <스님의 자녀 수업> 독자로 만난 거사와 차담을 나누고 있었다. 스님의 책을 읽고 스님이 일러주는 대로 했더니 정말 신기하게도 자식이 달라져서 고마움에 한달음에 달려왔다는 그 거사에게서 나를 보았다. 그러고 보면 모든 사람이 다 나를 비추고 일깨워주는 거울이다.
“사람마다 다 제각각인데, 특별한 자녀교육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욕심을 버리면 됩니다. 삼귀의를 할 때 ‘귀의법 이욕존’하는 것처럼 이욕 즉, 욕심만 여의면 우리 모두 부처가 됩니다. 부모가 먼저 부처가 되어 부처 마음으로 살면 자녀도 부모를 따라서 부처님을 닮아갑니다.”
부처와 중생의 차이가 바로 욕심으로 사느냐, 욕심을 버리고 사느냐에 있다. 온갖 불행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우리 삶의 해법과 자녀 교육의 해법이 다르지 않은 것이다.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다. 부모가 부처 노릇을 하면 그 거울에 비친 자녀도 부처가 되어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욕망이 춤추는 무한경쟁 시대, 약육강식의 정글과도 같은 세상의 흐름을 어찌 거스를 수 있단 말인가? 부모은중경 속의 부모님 열 가지 은혜 가운데 ‘자식을 위해 나쁜 일도 마다 하지 않는 은혜’가 있듯, 자식의 행복을 위해 욕심을 부리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부모의 욕심이 아이를 망가뜨린다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 잡고, 돈과 권력이 있는 자리에 가기 위해서는 무조건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부모들의 일그러진 욕심과 사회 풍토가 우리 아이들을 공부 노예로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고등학교만 졸업하고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분들이 많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도 상고밖에 안 나왔고, 지난 연말에 임명된 LG전자 조성진 사장도 공업고등학교밖에 안 나왔습니다. 다 ‘내 자식만은’이라는 욕심 때문에 아이들을 공부 노예로 내몰고 있는데, 이런 욕심을 내려놓고 충실히 안내자 역할만 해 줘야 합니다. 그럴 때 아이 스스로 자기 삶을 찾아가고 성취감과 행복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스님은 제발 아이들을 그냥 내버려두라고 한다. 부모 욕심대로 아이를 조종하며 키우려다 보니 아이가 반발하고 엇나가는 것이란다. 그런데 그 원인과 조건은 생각지도 않은 채 아이가 반항한다고 한탄하면서 상담을 해오는 부모들도 많다는 스님 말씀을 들으면서 가슴 한 구석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 나 역시 여느 부모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 좀 못 가면 어떻습니까? 깡패가 되어 감옥에 가는 것보다는 공부 좀 못 하는 게 낫고, 우울증에 걸려 자살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감옥에 가더라도 사는 것이 더 낫지 않습니까?”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 사람의 인상뿐만 아니라 말도 거울이라는 것을 느낀다. 말에서 그의 삶을 반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님의 말씀이 절절하게 다가오는 것은 생생함, 삶의 고뇌가 묻어있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스님은 전남 영광의 동리에서 내로라 할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장남에게 거는 욕망으로 얼룩진 기대가 족쇄가 되었다. <서울신문>과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각각 시와 동시가 당선된 이력에서도 알 수 있듯 스님은 감수성이 예민한 문학 소년이었다.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글쓰기로 영원을 꿈꾸고 삶의 고뇌를 분출하였다.그러나 부친과 집안어른들은 그런 그를 용납하지 않았다. 무조건 세속적인 잣대를 들이대가며 본인들이 꿈꾸는 것을 하라 종용했다. 게다가 동생들이 너무나도 출중했다. 전교에서 손꼽는 학업 성적으로 변호사가 되고 의사가 된 동생들과 비교 당하며 시인의 꿈은 묵살 당하곤 했다.
죽을 것처럼 우울했다. 알코올로 그 우울감을 달래기도 했다. 하지만, 내밀한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고, 알코올 병동에 입원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때 부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나를 찾고 진리를 찾는 데 마음이 향하지 않았더라면...만약이라는 가정조차 하기 싫다. 출가하여 수행자의 길을 걸으면서 진정한 행복을 알았다. 욕심을 버리면 우리 안의 부처를 찾을 수 있고, 부처를 찾으면 진정으로 행복해진다는 것도 체득했다.
“아이들 교육 문제 때문에 힘들어서 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분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한결같이 부모들은 아이들 탓만 하고 있어요. 그런데 가만히 듣고 보면, 그게 다 부모 욕심 때문에 그런 거예요. ‘자기 눈에 들어 있는 대들보는 못보고 남의 눈에 들어있는 티만 나무란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꼭 그 꼴입니다.”
몇 년 전 가평 대원사에서 템플스테이를 진행하면서 수많은 부모와 아이들을 만났다. 부모의 욕심으로 망가지는 아이들이 스님의 거울이었다. 아이들에게서 스님의 어린 시절을 보았다. 안타까웠다. 가슴이 아팠다. <스님의 자녀수업>은 그렇게 탄생되었다.
모두가 알고 보면 부처이듯이 모든 이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거울이다. 거울 덕분에 깨달음에 이를 수도 있고, 잘못된 거울로 인해 삶이 망가지는 경우도 있다. 나는 어떤 거울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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