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는 지난해 9월 28일 전 조실 도천당 도천 대종사(道天堂 道川 大宗師) 원적 후 8개월여 만에 조실을 모셨다.
원로의원 명선 스님과 화엄사 주지 종삼 스님 등 화엄사 대중 30여명은 2일 오전 11시 종산 대종사가 주석중인 청주 보살사를 찾아가 조실 추대를 요청했다.
이에 종산 대종사는 화엄사 대중들의 뜻을 받아들여 화엄사 조실 추대 요청을 수락했다.
종산 대종사의 조실 추대 요청 자리에는 원로의원 명선 대종사, 화엄사 주지 종삼 스님, 선원장 현산 스님, 부주지 영관 스님, 총무 일문 스님, 종일·종열·종걸·종고·종표··명안·명곤 스님 등 전 화엄사 주지 및 중진, 덕문·각일 스님을 비롯한 말사 주지 스님 등 30여 대중이 동참했다.
화엄사는 백제 성왕 22년(544)에 인도 스님이신 연기 스님이 대웅상적광전과 해회당을 짓고 화엄사를 창건 후, 백제법왕(599)때 3천여 명의 스님들이 머물며 화엄종을 선양한 명찰이다.
신라 선덕여왕 14년(645)에 자장 율사가 부처님 진신사리 73과를 모시고 4사자 3층 사리석탑과 공양탑을 세웠고, 원효스님은 해회당에서 화랑도들에게 화엄사상을 가르쳐 삼국통일을 기초를 닦았다. 문무왕 17년(677)에 의상 스님은 2층 4면 7칸의 사상벽에 화엄경을 돌에 새기고 황금장육불상을 모신 장육전 법당(지금의 각황전)과 석등을 조성했다. 경덕왕(742~764)때 이르러 8원 81암자로 화엄불국 연화장세계의 면모를 갖추었다.
고려시대는 고려 태조 26년(943)에 왕명으로 화엄사를 중수하고, 홍경 선사가 퇴락한 당우와 암자를 중수했다. 조선시대에 세종 6년(1426)에 선종대본산으로 승격된 화엄사는 배불의 와중에도 설응, 숭인, 부휴, 중관, 무렴 등의 고승대덕들이 주석했고, 임진왜란(1592~1598)때는 호남의 관문 구례 석주관에서 승병 300여 명을 조직하여 왜군에 맞서 싸웠으나 이 앙갚음으로 왜장 가등청정은 화엄사를 전소시키는 환란을 맞는다.
인조(1630~1636)때 벽암선사와 문도들이 대웅전 등 몇몇 건물을 중건하고, 숙종(1699~1703)때 계파선사와 문도에 의하여 장육전 자리에 현존하는 목조건물로는 국내 최대규모로 웅장한 각황전 건립했다. 근대에 이르러 도광 대종사의 전면적인 중수에 힘입어 지금의 화엄사로 모습을 갖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