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학부 4학년 사미 스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 스님은 작년에 내 수업을 청강했던 20대 초반의 스님이다. 이후에도 가끔 과제물이나 공부에 대해 묻고 하였다. 며칠전 학교에서 스님의 레포트 과제물을 봐주고 대화를 하는데, 헤어질 무렵 물었다. ‘스님들의 도박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것이다. 어린 나이(19세)에 발심 출가한 이 스님이 얼마나 실망했을 것인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내가 도박한 것도 아닌데 괜히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스님!, 스님 공부가 우선이고 그런 일에는 마음 둘 필요가 없습니다. 스님이 도를 깨닫고자 부처님과의 약속으로 출가한 것이지, 선배 스님들과 약속해서 출가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스님이 몸담고 있는 승가가 어떠하든 간에 스님 자신이 청정하게 수행해 나가면 됩니다. 상대방과 비교하면서 자신을 낙담할 필요도 없고 실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주위 혼탁한 문제에 휩쓸리지 않고 스님께서 열심히 공부하면 스님의 공덕을 쌓는 것입니다. 법납이 높아질수록 자신을 채찍질하지 않으면 그런 실수가 생길 수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힘, 공부나 수행을 업業(習)으로 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노력하셔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해주고 사미 스님과 헤어져 강의를 하면서도 무언지 모를 씁쓰레함을 떨칠 수 없었다. 이후 며칠 동안 방송에서는 연일 스님들의 도박을 거론하고, 인터넷에서는 스님들을 비난하는 소리가 도를 넘어설 정도이다. 조계종 승려들이 마치 도박집단이요, 깡패 집단으로 매도하는 매체를 보면서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 주 강의 내용 중에 불살생 계율과 관련된 스님들의 청정한 생활을 거론할 예정이다. 아무래도 몇 주 미뤄야 할 것 같다. 조선 500년 동안, 승려는 천민 대접을 받을 만큼 불교 탄압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았던 불교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시대와 국가를 초월해 인간의 아픔을 보듬는 최선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중국 당나라 때, 종파불교 가운데 화엄종은 중국인의 사유방식과 불교 사상이 절묘하게 맞아 발달했던 종파이다. 당시 황제들은 이 화엄학의 교리를 통치 이념에 반영하기도 하였다. 화엄종의 4조 징관(澄觀) 청량(淸凉) 국사는 자의 대사(紫衣大師), 교수 화상(敎授和尙) 등으로 칭했으며, 승통(僧統)이었다. 후대 화엄종의 승려들은 그를 문수보살의 화신이라고 간주하고 ‘화엄보살’이라고 칭할 정도였다. 이 청량 국사는 살아생전 황제로부터 국사나 법사 칭호를 받을 만큼 세속적인 명예에 노출되었지만, 평생 동안 수행자로서 지켰던 열 가지 서원이 있다.

첫 째, 사문의 명예를 실추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둘 째, 불타의 가르침과 어긋나는 마음을 갖지 않는다.
셋 째, 앉아 있을 때는 법계의 질서를 깨뜨리지 않는다.
넷 째, 욕망으로 본성을 더럽히지 않는다.
다섯째, 비구니 사찰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여섯째, 속인의 침상에 눕지 않는다.
일곱째, 법도에 맞지 않는 것은 아예 쳐다보지 않는다.
여덟째, 정오 이후에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아홉째, 항상 염주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열 째, 잘 때에는 발우와 가사를 떼어놓지 않는다.

징관 스님의 철저한 청정행은 마치 두타제일 가섭 존자의 모습을 뵈는 듯하다. 승려들의 기강이 무너진 이즘에는 새겨둘만한 서원이다. 젊은 승려들이나 불교 신자들은 몇 승려들의 부도덕함에 마음 아프겠지만, 그런 승려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내 주변에는 경제적으로 가난한 비구니 스님들이 매우 많다. 그런 환경에서도 승려로서의 면모를 잃지 않고 묵묵히 살아가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이 세상은 장미나 백합처럼 화려한 꽃도 있지만, 들판에 소박하게 피었다가 사라지는 이름 모를 풀초들이 있어 자연계가 유지된다. 이처럼 고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민초와 같은 승려들이 있었기에 이 조계종 승가가 존립할 수 있었다. 현재도 숲속 토굴에서, 선방에서 죽비를 놓지 않고 신명(身命)을 다해 정진하는 구도자가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 나무아미타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