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옛길(오래된 새길)을 걷고자
새로운 옛길(오래된 새길)을 걷고자
  • 열린선원 선원장 법현 스님
  • 승인 2012.05.02 14:4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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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① 한국의 종교 대화운동 바라보기

☞ 이웃종교 화합주간 개막에 앞서 4월 30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내에서 ‘이웃종교 화합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 심포지엄은 UN이 정한 ‘World Interfaith Harmony Week’와 한국의 이웃종교 화합주간 행사의 의미를 이해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지정 토론자로 나선 태고종 열린선원 선원장 법현 스님의 원고를 2회에 나눠 게재한다. <편집자 주> 

차례

1.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2. 어떤 길을 걸어왔나(종교대화의 어제와 오늘)?

3. 어떤 과제가 있나?
1)종교간 대화인가 종교대화인가 대화를 위한(이끄는) 종교인 모임인가
2)교리 개념의 같은 느낌과 다른 이해
3)구체적 목표와 종교 교리의 관련문제
4)7개 종단인가, 종교인가, 교단인가?
5)기독교도들의 이웃 종교 배척과 불교 등의 적은 노력
6)참여자와 재원의 문제

4.부족해서 필요한 쓰임새를 위해

 1. 어떤 길1)을 걸을 것인가?

같은 종류끼리 잡아당기는 힘을 응집력(凝集力.cohesion)이라고 한다. 응집력을 크게 하는데도 필요한 것들이 있다. 다른 종류 사이에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그것을 부착력(附着力.adhesion)이라고 한다. 모든 것들이 잡아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자연과학에서 인력(引力.gravitation)이라고 한다. 지구가 중심으로 당기는 힘을 중력이라고 한다. 반대로 밀어내는 힘은 척력(斥力.repulsion)이라고 한다.

이러한 힘들이 잘 균형을 이루어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정상상태(steady state)라고 한다. 항성, 행성, 위성 등과 이런 저런 물질들과 공간들이 모여서 이루고 있는 그리고 지금도 커가고 있는 우주자연의 현장에서 같고 다른 존재와 존재들 사이에서 밀고 당기는 힘들이 균형을 이루어 자연스러운 것을 정상상태(steady state)라고 한다. 그것을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안정이요, 평화다. 그것을 이룩하는 선행행동이 에너지의 교류를 통한 동화(同化)이고 사회적인 모습은 이해라고 한다. 소통이라고도 한다. 이해와 소통을 위해 대화가 필요하다.  

▲ 전 태고종 총무원 부원장 법현 스님.
둘 이상이 모여서 집단을 이루고 집단이 모여서 사회와 국가를 이룬다면 하나 이상의 모임이 제대로 된,아니 그것 비슷한 일이라도 하려면 반드시 의사를 모으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이 대화다. 그런데, 구약성서의 표현을 빌자면 말을 흩어버리는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의사를 모으는 것이 여간 어려워진 것이 아니다. 그래서 힘들고 어렵지만 다시 모으는 노력 즉 대화가 필요한 것이리라.  

파니카의 말마따나 종교간의 대화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한국종교대화의 실질적 선두주자인 강 원룡목사 등이 말한 오래된 새 길은 “하늘땅이 오래되었지만(雖久) 생명을 냄이(生生) 끊이지 않고, 해달이 늘 비추지만(雖久) 그 빛은 날마다 새롭다(日新). 책에 실린 뜻이 비록 넓다하나(雖博) 그 뜻은 제 각기 다르다(各殊).”는 연암 박 지원이 초정 박제가의 문집인 초정집(楚亭集)의 서문을 쓰면서 칭찬하는 글을 모티브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러 모로 정서가 닮은 분의 닮은 이야기에서 찾아내었다는 읽는 이의 재미가 있다. 살펴 보건데 그 모양은 오래되었지만 새로운 길이라는 뜻도 되고, 새로운 길이지만 오래된 것이라는 의미도 있다.

옛 성인들이 스스로 새로운 길을 개척한 것은 바로 오래된 옛 길을 걸은 뒤에 한 일들이며, 그 길이 반드시 옛 길을 파 버리고 새 길을 연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모든 종교지도자(교주)가 스스로의 종교를 개척하고 교단을 연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종교와 교단을 열었다는 것 자체가 오래된 종교와 교단을 겪어 본 뒤에 한 것2)이니 그 안에 이미 종교 대화가 자리하고 있음을 생각한다.

길이 나서 사람이 다니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다녀서 길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모여서 함께하는 것들이 늘어날수록 같아지는 것이 늘어나고 같아지는 것이 늘어날수록 우리들 사이에 평화와 행복이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이들이 사회의 대화를 이끄는 종교인 모임의 지도자들이었다고 생각한다.

2. 어떤 길을 걸어왔나(종교대화의 어제와 오늘)?

이 사회에 종교가 하나뿐이라면 종교 안의 대화만 모색하면 될 것이다. 하나여도 종교 안의 대화는 필요하다. 모였다는 것 자체가 소통이 필요한 것이며 소통의 방법으로 말(표정과 동작을 포함한)이나 문자를 사용한 대화가 요구된다. 하지만 종교가 여럿이라면 더욱 필수적으로 대화가 쓰이게 된다. 대화가 잘 되면 소통이 잘 되어서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고, 대화가 잘 되지 않으면 그만큼 소통도 되지 않고 평화는 요원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한국 사회는 삼국시대부터 다종교 사회였고 종교간 대화의 한 틀을 이룬 것으로 생각된다.

불교 안에서 이루어진 종교 대화의 한 면을 간단하게 살펴본다면 현상과 상황에 적응하여 널리 교화하는 응동보화(應同普化)의 정신과 익혀서 닮아가는 습합(習合)이 여러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찰에 흔히 있는 산신각은 한국고유의 종교사상을 불교 안에 받아들인 것이며, 칠성각은 도교를 받아들이고, 제사의 많은 형태가 유교의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이민족의 종교였던 불교가 순교자를 내면서 시작한 전법과정을 거치고 한 민족과 쉽게 동화가 되었다.

근래에는 ‘붓다 없이 나는 그리스도인일 수 없었다’3)고 한 폴 니터와 진제 스님4)의 대화도 있었지만 예수천당불신지옥의 입장에서 본 “부처님은 사탄의 대장이요, 대웅전은 마귀들의 종합청사”5)이기에 ‘00사 무너져라...’고 하는 기독교 청년단체의 대형집회6)도 있었다.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하겠다7)고 한 시장이 나중에는 대통령이 되어 여러 가지로 특정종교편향의 인사와 정책이 이어지고 있는데 일부의 표현으로는 그 때문에 특정 종교도 힘들다8)고 한다.

아다시피 200여년 전에 가톨릭을 시작으로 유일신교가 본격적인 상륙을 해서 다툼이 있기는 했지만 다종교사회를 구성했다. 일제의 압박에 항거하는 시각과 방법론의 차이9)가 조금은 있었지만 기독교, 천도교, 불교계 인사들이 연대해서 독립만세운동을 펼쳤다. 여러 종교인들이 연대해서 조국의 광복을 이끄는 구심점 역할을 한 것을 시작으로 해서 종교들이 서로 대화를 시작했다.

해방 후 이승만, 박정희 등 각 정권들이 자기 정권의 유지를 최고의 목적으로 하는 종교정책을 이어가면서10) 크기와 정보력의 한계가 있는 종교들은 어쩔 수 없이 자파의 이익과 견해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도 종교간의 갈등이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는 종교간 대화운동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능가스님 등 불교인들과 유교, 천도교 등 정서적으로 동양종교라 일컫는 종교들이 기독교 등 서양 종교라 일컫는 종교를 대할 때 느끼는 반감은 어쩌면 그들의 개인적인 특성이 아니라 교단의 지도부가 가지고 있는 선교대책11)이 아래로 내려오면서 더욱 특성화되고 모나게 되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대화와 교류는 힘을 더 가진 자가 덜 가진 이에게 도움과 대화의 손길을 내미느냐, 덜 가진 것으로 보이는 이가 더 자진 것으로 느껴지는 이에게 손길을 펼치느냐가 꽤 중요한데 한국의 종교대화는 강도와 밀도가 다르기는 하지만 양측에서 시작하여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

최근 한 기독교계 매체에 청와대 기독교 신우회 회장을 역임한 주대준 장로 인터뷰12)가 실렸는데 현실적인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그에 의하면 아주 열심히 크리스천으로서 살면 되지 기독교인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원론적인 좋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단체이름을 일반적인 명칭인 ‘기독교신우회’‘가톨릭 교우회’‘불자 신행회’라는 이름 대신에 ‘한국기독교공직자 선교연합회’,‘기독교 공직자 선교센터’를 통해 확보하고 선교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유일신교 단체가 갖는 특징이다.

그에 따른 반감이 확산되어 종교차별금지법과 공직자종교차별신고센터13)를 정부에 관철시켜 개신교의 선교를 방어했다고 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웃 종교(불교)에서는 불교신자들의 모임을 주선하는 것이 그 단체의 역할인데 유일신교에서는 선교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조금 다른 전통과 분위기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청와대 등 정부기관에 모임을 가지는 것과 군전법사(군전도사: 군승법사, 군목, 군신부)를 파송하는 것을 부러워하는 이웃종교가 있고 정치적인 역량을 발휘해서 파송권을 얻어낸 종교가 있다. 한편, 그런 것들 즉 기득권을 버려야만 진정한 전도=전법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1960년대의 3교 또는 5교간의 대화시작과 1970년대의 반유신독재 투쟁연대 그리고 80년대의 민주화운동과 세계종교평화회의 아시아회의 개최를 계기로 구성한 한국종교인평화회(KCRP)의를 기점으로 본격적이고도 적극적으로 종교간 대화를 이끌어가기 시작했다.

물론, 불교 등 동양종교 종교라 일컬어지는 종교들은 넓은 마음을 가진 교리와 지도자들의 성향만 믿고 교단적으로, 교학적으로 그리고 단체적으로 대화를 준비하고 이끌어가는 움직임은 미약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종교간 갈등을 조장하는데 가장 큰 요인을 가지고 있다는 개신교는 이웃종교에 대한 이해를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물론, 신학교 안에서 신학의 범위 안에서 하고 있으며 에큐메니컬 선교의 일환이다.

종교라는 이름이 본디 살았던 신과의 공동주거 공간이었던 에덴에서 쫓겨났던 사람들이 다시 신의 품으로 돌아가 신과 함께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서구적 의미의 종교이다. 그와 같이 교회들이 구교, 신교, 성공회 등으로 나뉘는 것은 교단 구성원들의 삶이 예수의 삶으로부터 유리된 것이 그 원인이므로 그리스도14)로 돌아가자는 것이 그 목표이다.

그래서 교회일치 운동을 펼치는데 ‘예수를 구원의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 자신인 그리스도’라고 믿고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한국에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참여하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CCK)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한기총의 명분은 기독교의 정체성을 지킨다는데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서로 합의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종교인평화회의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참여하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CCK)는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는 김 대중정부시절 국가적인 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 종교계의 정신적 지도가 필요한데 개신교가 에큐메니컬, 반에큐메니컬(진보, 보수)단체로 나뉘어 한자리에 어울리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진보의 흐름에 들었다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보수로 재편된 당시 조계종총무원장 송 월주스님을 중심으로 한기총이 참여했다. 나머지 5개종교의 수장이 동참하는 형태로 대표자들만의 모임이지만 정부의 지원 아래 모임이 이루어져 큰 행사를 가지면서 정체성을 확보해가고 있다.

종교간 대화, 환경생태운동, 남북대화, 반핵운동 등 여러 분야에서 한기협과 한기총의 견해가 다름에 따라 기독교 자체 내의 분열에 관한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리지만 현상적으로는 그런 우려와 관계없이 여러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

정부에서 특정한 정권과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에 재정적인 지원을 함으로써 오히려 기독교를 분열시키고 정권유지에 이용하는 것이라는 볼멘소리가 있지만 불만의 소리를 내는 쪽에서도 한국종교인평화회의를 통해 지원을 받으면서 소리가 잦아들고 있으나 뜻있는 이들의 걱정은 높아가고 있다.

기독교계가 이렇게 이념적, 교리적 성향에 따라 아예 만나지 못하고 있는데 비해 불교계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불교는 대한불교조계종이 두 기구 모두 참여자15)로 되어 있고 불교계 이웃종단들은 조계종의 묵시적 양해아래 행사 등의 참여자로만 역할을 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래서 통일된 의견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조계종만이 아닌 불교 종단 전체의 자발적 의사를 가지기 어렵다는 단점을 함께 가지고 있으니 사회평화를 이루는데 더 적극적으로 기여하기 위해서는 조계종에서 판단하고 이웃종단에서 의사를 모아 참여의 형태를 보다 더 나은 상태로 진전시켜야 참여의 기회도 늘리고 바람직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기독교는 예수와 그리스도가 다투고 불교는 한국이와 대한이가 다툰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따지고 보면 별 것 아닌 것으로 다툰다는 의미가 숨어있는 유머라고 생각한다.

1960년대 중후반부터 종교간 대화를 이끈 강원룡 목사의 6주기가 다가오는데 강 목사는 이단으로 몰리면서까지 종교화합을 주제로 많은 일을 벌였다. 그는 1963년에 세운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를 1965년에 한국 기독교학술원으로, 다시 크리스천아카데미로 바꾸었고 2005년에는 아예 대화문화아카데미로 바꿀 정도로 대화에 관심을 기울였다.

명동의 일16)로 인연을 짓기 시작한 가톨릭의 김 수환신부(추기경)와 법정스님 등이 함께하면서 한국사회의 진보적 지성들이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지금까지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는 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그들의 활동이 한국종교협의회,한국종교인평화회의,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한국종교연합선도기구(URI)등의 종교간 대화기구의 활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다만 그들이 활동하던 시절에는 명망가 중심의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으나 차츰 풀뿌리 대중들의 대화참여에 관한 의식이 요구되고 있는 한편 정부의 지원이 오히려 풀뿌리 대중들의 참여를 어렵게 하고 활동의 성격이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지적은 마음에 새겨야할 것으로 보인다.

/ 법현(승려. KCRP 종교간대화위원. 열린선원 원장)


1) 오래된 새 길에 대한 느낌을 가져보고 새로운 길에 관한 느낌을 가져보고 새로운 옛 길이라 해서 지나간 스승의 길을 따르는 느낌을 표현해보았다. 

2) 부처도 브라흐만교나 신흥사문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고치거나 새롭게 한 것이며, 예수와 무함마드 그리고 공자도 마찬가지, 신흥종교들은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3) 폴 니터(Paul F. Knitter)지음 정 경일 이창엽 옮김 ,클리어마인드 2011.9.20.

4) 진제스님은 앞의 책에 추천사도 쓰고 한국에서 또 미국에서 대화를 함께하기도 하여 언론에 보도되었다.

5) 언급하기도 부끄럽지만 80년대에 이곳저곳에서 있었던 부흥집회의 내용이다. 

6) 2006.6.4 부산벡스코에서 기독청년들이 ‘Again 1907 in 부산’행사를 하면서 벌인 퍼포맨스에 이 명박대통령이 당시 소망교회장로 자격으로 축하영상메시지 보냈다. 

7) 2004.5.31 이 행사도 ‘Again 1907 in 서울’이어서 당시 기독교계가 발표한대로 일부지역의 문제가 아니었다.

8)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기독교라 할지라도 특정교파 특정교회가 주로 이익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리다.

9) 당시 독립운동에 적극 가담한 종교와 비판적으로 본 종교가 있었다. 

10) 교파적 이해의 관점에 따라 스스로의 교파에 유리하게 해석하고 있지만 거의 모두가 교파적 관점을 활용했을 뿐 어느 정권이나 정권적 관심에서 업무를 처리한 것뿐이다.

11) 가톨릭과 기독교는 교단 중앙에서 마련한 이교도 및 이교도국가 선교대책의 메뉴엘자료들을 활발하게 집필하여 활용하고 있다. 이제는 이해의 차원으로 승화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12) 이 대웅기자, 크리스천투데이, 2012.4.16.

13) 2008.10.1일부터 운용.

14) 예수와 그리스도는 붓다와 싯다르타의 개념과 유사하다. 예수는 역사적 인물이고 그리스도는 유대인 또는 기독인들이 바라는 구세주-세속적으로는 기름부음을 받은 이 즉 왕-이다. 싯다르타는 역사적 인물이고 붓다는 깨달은 이라는 뜻이다.

15) 개인적인 견해로는 불교계대표종단인 조계종에서 하나를 택하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지만 상대가 있으므로 선택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16) 유신반대 성명서 발표에 불교계 대표로 법정 스님이 참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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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차려 2012-05-03 08:4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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