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기 좋은 때
공부하기 좋은 때
  • 김자경
  • 승인 2012.02.23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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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법정 스님처럼 고통이 오면 자신을 성찰하자

감기몸살 한 번 앓아보는 게 소원이었던 때가 있었다.

어찌 생겨먹은 몸뚱이인지 여간해서 아프지 않았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 야근을 하고, 휴일도 없이 근무를 했지만 끄덕도 않는 육체는 정말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동료들은 낯빛이 노랗게, 하얗게 변해 누가 봐도 피곤에 절은 모습, 휴식이 절대 필요한 행색들이 물씬 느껴지건만 단 한 사람, 나만은 생생 그 자체이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오해 마시길. 남들은 열심히 일하는데 혼자 탱탱 놀아먹지는 절대 않았다는 말이다. 모두 같이, 힘들게, 어렵사리, 애쓰며 일했다. 하지만 피곤을 느끼는 강도에서만은 난 예외였다. 누구는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을 정도로 몸이 아프다며 결근을 할 정도이건만 난 눈만 조금 붓는 정도로 출근을 했고, 주어진 일을 계속 할 수 있을 정도로 괜찮았다.

그 뿐이 아니다. 힘들게 일한 다음 날이면 누구나 피곤해 하는 게 당연지사일 터. 그런데 나는 예외였다. 체질적으로 힘들게 일한 다음날은 전혀 피곤함을 못 느끼는 것이다. 어떤 날은 평소보다 더 생생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혼자 잘난 척 하다가 남들이 웬만큼 피곤에서 벗어날 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소 내 육신은 물 먹은 솜 마냥 늘어지는 것이다. 그것도 몸살 날 정도는 물론 전혀 아니다 얼굴빛도 생생해 남들 보기엔 멀쩡해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난 온 몸이 기운이 쪽 빠져나간 것 같고, 머리도 지끈지끈한 것 같고, 여기저기 삭신이 쑤셔오는 것만 같다.

이런 날이면 내심 쾌재를 부르기도 했었다. ‘그렇지. 이제 나도 몸살이 나겠구나. 열도 좀 나면 좋은데…. 그래야 목소리도 변할 거고 그럼 내일 아침 아픈 티 좔좔 내면서 사무실로 하루 쉬고 싶단 전화 할 수 있겠지. 야호!!’

해서 부러 아픈 티를 더 내기도 했었다. 일부러 한숨도 내쉬고, 책상에 엎드려 있기도 하고, 앓는 소리도 하고 말이다. 물론 동정해주는 이는 별로 없었다. 함께 한 시간이 긴 동료들일수록 더 했다.

‘그래봤자 내일 아침 아마 제일 먼저 출근할걸.’
‘정말 아파요? 이번엔 제발 아파서 결근 좀 해봐요. 또 생생하게 살아나기만 해봐라, 그냥….’

이런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난 제발, 제발 하고 바랐다. 하지만 직장생활 근 27년 간 내 몸이 아파 결근한 날은 손가락 두세 개나 꼽을까! 아이가, 남편이 아파서 부득이 결근한 날이 더 많았다.

어느 한의사가 말했다. ‘만성 감기네요. 늘 감기 증상이 있는데 본인은 그걸 몰라요. 타고난 체력이 좋으니까 하루 밤 자고 나면 개운치는 않지만 일어날 만은 하고, 출근해 일하다보면 아픈 것 같지 않을 거예요. 그런 상태가 계속 이어져 차곡차곡 쌓이는 게 만성 감기예요. 이러다가 한 방에 갑니다.’

이랬던 내가 오늘에야 감기몸살을 앓고 있다. 정말로 머리가 지끈거리게 아프고, 온 관절이 다 쑤셔오고 재채기에, 콧물에 죽을 맛이다. 대체 왜 그때 감기 몸살 앓기를 소원했던 건지, 이렇게 몸이 아파서야 견딜 수가 있나 싶을 정도이다. 그것도 정말 할 일 없는 백수가 된 지금 말이다. 누구 말마따나 정말 백수 과로사할 지경이지 싶다.

백군띠 머리에 질끈 동여매고 자리하고 누웠다. 그 때 문득 떠오른 한 생각. ‘인도인들은 몸이 아프면 드디어 자신에게도 공부할 기회가 왔다고 감사해 한다.’

‘법정 스님께서는 말년에 온 가슴을 뻐개는 듯한 기침이 찾아온 밤이면 기쁜 마음으로 일어나 앉으시지 않았던가. 덕분에 “별빛처럼 또렷한 의식을 가지고 그날그날 삶의 자취를 낱낱이 살피고,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거나 행동하다지 않고 세상의 눈으로 자신을 비춰보았다.”하셨는데….’

죄스러운 마음에 벌떡 일어나 앉는다. 아랫배 힘 빡 주고 앉는다. 바짝바짝 마르는 입술 물 한 모금으로 축여주고 들숨 날숨 지켜본다. 꽉 막혀 답답한 코를 관하며 호흡 가다듬어 본다. 출근할 일도 없으니 그 어느 때보다 한결 여유롭기까지 하다는데 생각도 떠오른다.

내 삶의 발자국을 진솔한 마음으로 돌아볼 수 있는 공부, 지금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오늘을 온전히 바로 볼 수 있는 공부, 내일 내가 굳건히 디디며 걸어 나가야 할 길을 가늠해 볼 혜안을 키울 수 있는 그 공부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 때를 놓치지 말고 공부할 일이다. 열심히 해서 학창 시절에도 겨우겨우 받았던 A+를 받을 일이다. 이래서 사람은 늘 배워야 한다니까. 나무 관세음보살 마하살!!

/ 김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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