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아쇼카 선언’ 종단 주체성 상실
‘21세기 아쇼카 선언’ 종단 주체성 상실
  • 법응 스님
  • 승인 2011.09.21 11:28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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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법응 스님 "바아르선언, 김용표 교수 논문 인용 의혹"
학자들의 연구결과를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나 이를 오남용하거나 견강부회해서는 안 된다.

심지어 기독교의 산물인 신학적 종교다원주의에 대하여서도 불교의 공사상, 자비사상, 대승사상을 끌어들여서 절대적인 신이나 여러 신을 인정한다면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필자는 이번 '21세기 아쇼카 선언'은 진보적 신학이론인 ‘바아르 선언’과 너무나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내용이 너무나 비슷해서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유사한 곳이 너무 많다. 지난 토론회에서 조목조목 따지려 했는데 시간적 제한과 주최 측의 진행구성의 문제로 이루지 못했다.

아래 논문의 예 등으로 보아 ‘21세기 아쇼카 선언’은 몇몇 신학적 종교다원주의와 불교학자의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논문을 꿰맞췄다는 의구심을 더 하게 한다.

살피건데 ‘열린 진리관’과 불교의 타 종교에 대한 입장에 대해 ‘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불교의 입장’이라는 김용표(동국대 교수)교수의 2001년 11월 <불교평론>에 등재한 논문을 일부 차용했다는 의구심도 든다. (동 논문의 목차 : 1.다원주의와 대화 문명시대의 도래 2.종교 배타주의, 포괄주의, 그리고 다원주의에 대한 검토 3.부처님의 타종교에 대한 기본 입장 4.종교간의 대화와 협력을 위한 대승의 원리 5.맺는 말)

지면상 이 논문의 일부 내용을 살펴본다. (☞ 표시)

☞ 한국에서도 몇 해 전 신학대학 교수가 기독교 잡지에 부처님의 탄신 축하와 그리스도교인에게도 부처님의 자비의 빛을 비추어 달라는 글을 실은 바 있고, 20세기를 마감하기 며칠 전인 1999년 12월 23에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은 조계사 앞에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한다’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게시하는 등 종교간의 이해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날로 높아 가고 있다.

☞ 그러면 새 천년을 여는 21세기는 왜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의 시대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다원주의와 화해를 지향하는 인류 문명사적 당위성과 함께, 성숙한 종교인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서 모든 위대한 종교가 지닌 영적 차원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이른바 포스트모던(post-modern)사회라는 말로 압축되고 있는 지구화 시대로의 진입과 함께 종교 다원주의와 종교간의 이해의 문제는 문화사적 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면서 종교다원주의의 필요성과 불교계가 할 일을 주문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21세기 아쇼카 선언’이 타 종교에도 진리가 있으며 문화와 역사 표현 그리고 문법이 다를 뿐 다 같다는 주장을 펴고 있으나...

김용표 교수는 논문에서 이를 강력하게 경계하고 있다.

☞ 부처님의 타종교인에 대한 교리적 입장은 무엇보다도 연기설(緣起說)에 바탕을 둔 ‘비판적 입장’에 있었다. 이는 불교의 기본 교설인 연기론에 비추어 타종교의 교설을 해석하고 비판하는 입장이다. 다른 세계관이나 인생관을 설하는 종교나 철학사상에 대하여 부처님은 논리 정연하게 비판하면서 우주와 인생의 참다운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를 가르쳤다. 세계와 인생에 대한 잘못된 마음가짐인 우치(愚癡, 無明)에서 잘못된 종교나 철학도 나오기 때문이다.

☞ 부처님은 특정 종교에서 주장하는 진리적 정당성을 자신의 냉철한 이성과 경험에 비추어 검증해 볼 것을 가르쳤다. 이러한 불교의 이성적 태도는 과학적 사고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으며 맹목적 신앙이나 독단론에 대한 비판 정신에서 온 것이다.

☞ 그러므로 불교는 계시 종교와 같은 배타적 절대 진리를 선포하지 않는 것이다. 진리는 누구나 발견하고 깨달을 수 있고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다. 설사 불교를 만날 인연이 없었던 이도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 독각불(獨覺佛)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에 예배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즉 무조건 상대의 인정이 아니라 연기법, 팔정도나 삼법인의 입장을 기본으로 해서 대하라는 것이며, 오히려 신학적 종교다원주의와 같이 불교 밖에도 불교가 있다는 가르침을 펴야 한다는 반 ‘21세기 아쇼카 선언’의 입장을 취함을 알 수 있다. 도법 스님은 왜 이러한 분들을 찾아서 자문을 구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자문을 받았다면 결코 ‘21세기 아쇼카 선언’과 같은 내용의 것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김용표 교수는 ‘열린 진리관’이는 문장을 사용하는바 ‘21세기 아쇼카 선언’이 타 종교의 진리를 인정하면서 민족에 따라 명칭만 다를 뿐 어떠한 궁극적 실재를 인정하는 입장 이라는 의구심이 드는데 김용표 교수는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잘라 버렸다.

☞ 여기에서 불교의 종교 다원주의 이해는 구원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는 점에 있지 하나의 공통된 실재가 있다는 주장이 아니라는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즉 창조주 신과 같은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 불교학자 다운 주장이라 할 것이다. 다음 주장에서 자세히 확인된다.

☞“이러한 열린 진리관은 모든 종교사상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기초가 될 것이다. 대승의 공(空)의 가르침은 무한한 개방성, 즉 끊임없이 열린 테두리 없는 마음을 가르치고 있다. 여기에서 불교의 종교 다원주의 이해는 구원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는 점에 있지 하나의 공통된 실재가 있다는 주장이 아니라는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김용표 교수는 ‘종교 간의 대화에서 어떠한 입장도 없어야 한다’고 주장 했다. 즉 부처나 하나님(신)을 부정하고 마주하라고 주문하고 있지 다 긍정하라는 입장은 아니라는 주장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공관(空觀)을 바탕으로 한 불교는 진리 주장이나 종교 간의 대화에서 “어떠한 입장도 없는 입장”에 서게 된다.

아울러 김용표 교수는 “비교종교학적 지성의 연마와 아울러 대화를 위한 이론과 방법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라 한바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에 의한 심도 깊은 비교종교학적 연구를 다음과 같이 주문하고 있다.

☞ 이제는 불교인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종교간의 대화와 협력운동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종교간의 대화와 협력을 선도하는 불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여러 종교를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비교종교학적 지성의 연마와 아울러 대화를 위한 이론과 방법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김용표 교수가 열린 진리관과 종교다원주의와 종교간 대화를 주장하면서도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을 바탕에 깔고 있음을 재확인이 가능하다. 이번 21세기 아쇼카 선언은 “전법은 다른 종교인을 개종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행복과 안녕’을 실현하는데 그 궁극적 목적이 있습니다.”라 한바 석가모니 부처님은 전의법으로 이교도를 교화했다. 즉 상대의 견해를 처음부터 부정하지 않고 그 형식을 긍정하면서도 교묘하게 그 내용을 전환시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도록 하는 것이다.

김용표 교수는 맺는말에서

☞ 또한 전의법(轉意法)등과 같은 부처님이 타 종교인을 교화할 때 사용하신 방법이나 입장을 다시 활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불교인들은 타종교인들이 배타적인 교리에 집착하고 있다면 이들이 자신의 교리에 대한 재해석을 통하여 그 진리 주장을 다시 검토해 보도록 권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즉 기독교 안에서 불교적 가르침을 찾아서 그들을 일깨우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번 21세기 아쇼카 선언과 같이 무조건 타 종교에 대해 진리가 있다고 일방적일 것이 아니라 그들을 다양한 방편으로 대할 것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 불교도들은 부처님이 보이신 타종교에 대한 태도를 잘 음미해야 한다. 즉 비판적이면서도 관용적인 태도, 이성적 신앙, 사이비 종교와 불만족스러운 종교를 선별할 줄 아는 능력, 타종교 교리의 수용 방법, 주체적인 노력에 의한 자기 구원의 태도 등이 곧 불교가 타종교를 보는 눈이자 입장인 것이다.

한마디로 불교적 입장, 즉 석가모니부처님의 입장과 같이 불교의 세계관으로 이끌라는 주장이다. “주체적인 노력에 의한 자기 구원의 태도”는 결국 신을 부정하라는 교수의 주문이 아니고 무엇인가?

김용표 교수의 논문에 아쇼카 선언의 예를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이 대목이 ‘21세기 아쇼카 선언’이 이 논문의 일부 주장과 '아쇼카 대왕'을 차용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 인도 역사상 최초로 통일 국가를 완성한 후 불교의 정법에 의한 정치를 이상으로 했던 아쇼카(B.C.272∼232 재위) 왕도 비문 칙령에서, “자신의 종교만을 존중하고 다른 종교를 비난하지 말라.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종교를 성장시킬 수 있으며 또한 다른 이의 종교에도 도움을 주는 것이다. 행동이 그와 같지 않으면 자신의 종교의 무덤을 파는 것이며 또한 다른 이의 종교에 해를 끼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른 모든 이의 종교의 교의에도 귀 울이도록 하라.”고 선언했다. 이러한 관용과 이해의 정신은 불교가 2500년에 거친 긴 역사를 통해서 전쟁과 어떠한 박해의 사례도 없게 하였던 것이다.

한마디로 종단차원에서 도법 스님이 준비한 ‘21세기 아쇼카 선언’은 기독교의 신학적 다원주의의 ‘바아르 선언문’, 김용표 교수의 논문 등에서 열린 진리관과 불교의 입장에서 종교다원주의 시대에 따른 역할주문에 오버했다는 생각이다.

종교다원주의 시대 타 종교와의 대화에서 그들을 부처님의 가르침과 불교적 관점에서 대하라 한 것은 철저히 외면하거나 자의적 해석을 했다는 의심이 드는데 도법 스님은 이를 명확하게 해명해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과 그 분이 행하셨던 바를 외면한 그 어떠한 종단적 선언문은 반 불교적이며, 마설에 불과하다.

선언을 준비하고 발표한 도법, 지홍, 원택, 법안, 혜일, 명법 승려들은 어떠한 의식에서 이번 선언문을 인정하고 발표 했는지 스스로 밝혀야 할 것이다.

조계종이 무엇인가 선언을 하려한다면 가장 불교적이고 독창적이며 깊고 넓어야 한다. 대책 없이 열린 진리관이나 다른 종교에도 진리가 있다는 해괴한 선언문을 발표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어디까지 석가모니부처님의 기본적 입장의 대변자가 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21세기 아쇼카 선언’은 폐기되고 원점에서 새 출발 해야 마땅하다.

이번 토론회에서 도법 스님은 교구본사, 중앙종회 등 종단의 각 기구와 승려들에게 검증과 의견을 구한다 했다. 결국 이 선언문 그 자체를 합리 및 미화 시키는 작업의 일환일 것이다.

이미 ‘21세기 아쇼카 선언’은 많은 문제점들이 노정됐다. 도법 스님이 진정성이 있다면 선언문 문장 하나하나에 대한 필자와의 1:1 공개토론을 받아들여야 한다.

석가모니부처님은 많은 외도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외도들의 잘못을 지적하셨다. 부처님은 브라나미즘이나 6사외도들을 삼종외도설로서 일축해 버렸다.

삼종외도는 첫째는 신의설(神意說)로서 조물주가 있어 만물을 만들어 내고 그 만물을 주재한다는 사상이다. 따라서 이들은 모든 일은 절대자의 뜻에 따라 움직이며 인간의 행복과 불행이 절대자의 뜻에 달려있다고 믿는다. 창조적 신관인 기독교와 배유된다.

둘째는 숙명론(宿命論)자이다. 이들은 인간의 모든 행복과 불행이 과거의 어떤 지어짐(숙명)에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절대로 변화시킬 수 없다고 본다. 셋째는 우연론(偶然論)이다. 어떤 원인 없이 모든 일이 일어난다고 보는 견해이다.

부처님은 “내가 설하는 번뇌를 멸하는 도리는 알 수 있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알 수 없고 볼 수 없는 것은 설하지 않노라.”며 부처님은 형이상학 혹은 창조설처럼 입증될 수 없는 공론(空論)이나 희론(戱論)들에 대해 논할 필요가 없음을 분명히 하신다.

석가모니부처님은 비합리적인 것은 단호하게 잘라버리신 분이다. 그런데 후대의 승려와 학자들이 공관, 자비사상, 대승이라는 명분으로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이 다 불교적인 입장이라 규정짓고 있다. 자신의 견처는 부처님의 만분지일에도 못 미치면서 말이다. 필자가 '21세기 아쇼카 선언'을 반대하는 이유는 이 선언문이 종단의 공식 선언문으로 채택될 시 대 혼란과 무지하다는 지적과 더불어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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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 2011-09-22 13:48:41
근래들어 도법스님이 너무 정치적으로 의도적으로 튀김수가 된 듯해요..
실제로 종단 내부는 개판이고 승려들은 권력지향주의가 넘쳐 총무원주변에 넘나드는 승려들의 화두가 무엇이지 잘 알면서도 ..순수 수행집단으로서 승가 공동체정신이 무너진지 오래되엇는데 승단이 이미 신도들한테 조차 신망을 잃고 잇는데 무스넘의 아쇼카선언 허황된 운동 집어치우고 진짜 순수 승려 본연의 자세를 회복하는 운동이나 하세요 연일 승려들의 자질문제가 터져 세인들로 부터 눈살을 찌부림 당하는 이 종단, 총무원이나 종회 활동을 한 번 냉철히 살피세요 정말 부끄럽잖아요.

감자채볶음 2011-09-21 19:11:41
겁쟁이 이거나 옹고집 둘 중 하나에 걸렸기 때문이다.

겁쟁이기 때문에 자신은 빠지고 다수의 옹호론자들로 장막을 쳤다.
마치 다수가 도법스님을 옹호한다면 타인들한테 옳게 보여질 수 있다는 듯이.

옹고집이기 때문에(그러나 그런 옹고집은 감추고 싶어서)
아쇼카선언의 사소한 문구나 매끄러운 문장 정도는 수정해 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근본 취지는 양보하지 않겠다고 한다.
마성스님, 법응스님등에 의해 아쇼카선언의 핵심논리가 베껴진 것이 구체적으로 들통이 났다.
여기서 만일 도법스님이 물러선다면 이는 그동안 쌓아온 스님의 긍정적 자산이
모두 무너질 수 있다. 때문에 도법스님은 더더욱 1:1 토론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

몇몇 스님들은 발전을 해 왔는데, 도법스님은 점점 총기를 잃어가고 있다.
매의 눈처럼 예리했던 총기, 호랑이 같은 대범함이 보이지 않는다
그의 특성이 점점 사라져 아쉽고,,,, 솔직히 왜 그렇게 변했는지 이해가 안간다.

사자후 2011-09-21 16:08:25
도법, 지홍, 원택, 법안, 혜일, 명법 스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대책 없이 열린 진리관이나 다른 종교에도 진리가 있다는 해괴한 선언문을 발표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어디까지 석가모니부처님의 기본적 입장의 대변자가 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21세기 아쇼카 선언’은 폐기되고 원점에서 새 출발 해야 마땅하다.""

법보신문 2011-09-21 15:11:20
마성스님도 법응스님과 뜻이 같더군요.
화쟁위가 위의 두 스님처럼 좋은 분들 소개시켜준 공로는 있네요 ㅎㅎ

청화 2011-09-21 14:10:02
법응스님의 의견이 100%옳다.
화쟁위의 선언이 종교간의 이해와 화해와 공존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 내용이 일부 부처님의 근본가르침과 전법의 정신을
부정하는 듯한 내용이 담겨져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아무리 종교간의 화해와 공존이 중요하다고 해도 이처럼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과
전법의 정신마저 왜곡하고 훼손하면서까지 선언을 꼭 발표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더군다나 지금 법응 스님을 비롯하여 많은 사부대중이 이번 선언에 대해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이해와 포용을 모르는 불교근본주의자라고 몰아부치면서까지 강행하고자 하는 것은 도저지 묵과 할 수 없는 만행이고 독단적 행위이다.
화쟁위는 다른 종교와의 화해와 공존을 말하기에 앞서,
먼저 이번 사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부대중과 진지하고 성실한 대화를
먼저 충분히 갖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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