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와 픽업 트럭의 벌금은 같아야 할까, 달라야 할까
벤츠와 픽업 트럭의 벌금은 같아야 할까, 달라야 할까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1.02.2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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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생계형 픽업 차량들이 교통 위반해서 내는 벌금과 벤츠 승용차가 위반해서 내는 벌금이 똑같은데 그게 공정사회 기준에 맞겠느냐."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3주년을 앞두고 20일 한나라당 최고위원 9명을 부부 동반으로 초청해 가진 만찬자리에서 하셨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심재철 정책위의장은 당에서 정책적 차원으로 검토해볼 사안이라고 말했다.

지난 7일에는 김황식 국무총리 주재로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열린 공정사회 과제수행 간담회에서, 김 총리가 핀란드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일수 벌금제’ 도입을 제안했고,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수 벌금제’가 범여권에서 논의의 물살을 타고 있는 느낌이다.

먼저 개념부터 정리하자.

어떤 사람이 범죄를 저질러 벌금형을 선고받을 상황이 되었다고 하자. 지금까지는 무조건 벌금 5,000만원, 이런 식으로 양형하고 선고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일수 벌금제’는 이것과는 양형과 선고체제가 정반대다.

판사는 액수부터 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잘못은 어느 정도 날짜가 되겠다’라며 책임량에 대응한 벌금일수를 먼저 정한다. 그런 다음 각 1일의 벌금액을 본인의 경제능력에 대응해서 결정한 후 그 합산액으로 벌금총액을 결정한다. 그리고 납부하지 못할 경우, 그 벌금액수에 상응하는 날짜만큼 교도소에 들어가 살아야하는 제도다. 일명 스칸디나비아식 제도라고 한다. 왜 스칸디나비아식이라고 부르는지 연원이나 배경이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다.

논의를 위해서 먼저 대통령 발언의 진의를 살펴야겠다.

총리와 법무부 장관이 논의했다는 제도는 언론보도에 따르면 ‘일수 벌금형’ 제도가 맞다. 하지만 대통령이 말한 제도는 형법상 벌금형인지, 행정법상 과태료에 해당하는 행정벌인지가 불분명하다. 교통위반 범칙금은 과태료인 행정질서벌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행정벌에만 이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인지, (참고로 행정벌은 전과로 취급되지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 소액이다. 교통범칙금이 대표적이다.) 아니면 국무총리의 제안대로 본래 일수벌금형의 취지인 형법상 벌금형에 도입하겠다는 취지인지가 불분명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 청와대의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다음으로 학계에서 논의되는 의미에 대해서 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먼저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네 가지를 든다.
첫째, 벌금형의 탄력성 및 배분적 정의가 실현된다고 생각한다. 벌금이 지나치게 경직적이면 범죄예방효과가 없게 되는 것이다. 빈자의 일등과 부자의 일등의 가치 때문이다. 그리고 형벌을 통해서 배분적 정의까지 실현하자는 입장이다. 우리나라 보수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당장에 문제제기를 할 것이지만 말이다.

둘째, 형벌의 개별화 취지와 부합된다. 모든 형벌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한마디로 도매금이어서는 안된다. 부자에게 몇십만원 매겨봐야 그 사람이 무슨 반성과 책임을 느끼겠느냐는 것이다.

셋째, 책임주의와 희생동등의 원칙과의 조화를 이룬다. 범죄를 범한 만큼 책임을 져야 하고 그 책임은 당사자가 가진 모든 능력과 조화를 이루어야만 제대로 된 범죄예방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가난한 사람이 전재산을 벌금으로 내야했다면, 부자는 지극히 일부를 벌금으로 내도 충분하다. 그렇다면 이는 부조화라는 것이다.

넷째, 벌금형을 자유형에 더 한층 일치시킨 제도라는 평가가 있다. 주로 형법학자들이 주장하는 이론이다. 자유형과 벌금형의 가치가 지나치게 분리되고 전혀 별개의 형벌처럼 평가되는 데 대한 비판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돈만 내면 그만이라는 식의 책임주의가 우리나라 뿐 만 아니었다.

정반대의 입장에서 문제점으로는 무얼 들 수 있을까.

역시 학자들의 입장을 소개해 보겠다.
첫째, 역시나 법관의 편의주의의 위험성이다. 피고인의 경제적 능력을 살펴 1일액을 정하기보다는 법관이 편의상 벌금형의 총액을 정하고 일수 정액으로 분할하여 선고할 위험성을 든다. 그렇게 되면 예전과 똑같다는 것이다. 날짜부터 정하고 액수를 정하라고 했는데, 액수를 정해놓고 날짜를 나누면 피고인의 입장에서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경제적 능력에 대한 평가 작업이 귀찮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라는 점.

둘째, 개인의 경제적 능력에 대한 정확한 조사‧확정의 곤란성을 든다. 지하경제는 어디에나 엄존한다. 과표는 현실화되어 있는가? 탈세는 전혀 없는가? 재산신고 상태는 엄정한가? 판사는 피고인의 경제적 능력에 대한 정보를 행정부로부터 충분히 협조 받을 수 있을까? 세금도 아닌데 어떻게 형벌에 대해서 형식적 불평등을 가할 수  있다 라는 말인가? 이런 논쟁을 이끌어내는 사람들이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하기도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과표의 현실화가 미흡하고, 탈세가 엄존한다고 생각하는 이상 이 문제는 간단치 않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셋째, 행위자의 경제적 능력에 대하여 다른 양형 사유보다 우월한 지위를 인정하는 것으로 양형에 있어 경제적 능력의 의미를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비판이 있다. 왜 경제적 능력이 형벌을 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동해야 하는가. 아무리 벌금형이 경제적 범죄에 유효한 억제수단이라 할지라도 이건 지나치게 동해보복적 사상이 아닌가라는 비판도 있다. 인격적 요소, 정신적 요소 등 수많은 요소가 있는데, 왜 하필 그 중에서 경제적 요소만을 강조하는가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이제 결론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조세의 공정성조차 확보되지 않은 나라에서 벌금 혹은 과태료의 경제적 공정성이 확보될 수 있을까. 민주당이나 다른 진보정당들이 이 문제를 즉각 환영하고 나설 수 있지만, 과연 한나라당이 이 문제에 대해 총대를 맬 수 있을까? 왜 형벌에서조차도 일종의 벌금폭탄을 매긴다고 포퓰리즘적인 선동을 하고 나섰을 때 방어에 나설 수 있을까. 왜 가진 자에게서 벌금을 통해서라도 못 빼앗아가서 안달이냐며 트집 잡고 나섰을 때 막아설 수 있을까.

개인의 재산 상태에 대한 정보가 법원으로 가는 데 대해 동의할 수 있을까. 행정부는 여기에 대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그리고 각 부처에 산재해 있는 각종 재산정보들을 충실히 제공할 태세가 돼 있을까. 국토해양부와 행정자치부, 그리고 국세청은 충분히 협조할 준비가 돼 있을까.

역시나 근본적으론 벌금에서조차도 가진 자들에게 가혹하게 착취한다고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을 때, 법 앞에 평등하다더니 이게 웬 말이냐며 실질적 평등이 아닌 형식적 평등론을 들고 나올 때, 과연 우리사회는 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

왜 이 제도가 스칸디나비아에서 시작되어 유럽으로 번져나갔을까. 경제적 인권과 평등이라는 사민주의 정신에 바탕을 둔, 그런 국가모델의 토대가 중요한 바탕이었을진대, 사소한 복지논쟁 조차도 퍼주기 논쟁으로 포퓰리즘적인 언동을 일삼는 우리 일부 언론과 보수주의자들이 이 논쟁을 정상적으로 소화할 수 있을까. 엄밀히 따져보면 가진 사람이 많이 내고 못 가진 사람이 적게 내는 세금 구조와 똑같은 논쟁인데, 가진 사람이 조금 내고, 가진 사람의 세금을 더 깎아주고, 없는 사람은 유리지갑이고, 그리고 더 없는 사람은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는 우리 복지 국가의 극단적 현실에서 과연 이 논쟁이 어느 정도 파급력을 가질 수 있을까.

‘일수 벌금제’를 도입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조세의 형평성, 조세의 정의논쟁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갈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논쟁을 진보진영은 적극 환영해야 한다. 과태료이건 벌금형이건 마찬가지다. 책임구조는 약간 다르겠지만, 조세에 대한 책임논쟁과 상당히 유사한 측면이 있고, 실질적 평등의 원리를 관철할 수 있는 흥미로운 논쟁거리다. 진보진영에서 이 논쟁을 좀 더 강력하게 이끌어갈 수 있기를 소망하고 함께해야 할 것이다.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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