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스님 성전] 산사를 찾아가는 길에서

2007-01-03     김영태
새해를 맞기 위해 산에 들었다. 산 중의 자그마한 암자를 찾아 올라가는 길, 산 중에 숨어 있던 바람 한 줌이 나와 뺨을 치고 간다. 차다. 깊은 산 중의 겨울바람은 어느 것과도 만나지 않은 처녀의 차가움을 지니고 있는 것만 같다. 한 줌 바람이 지나고 난 자리에 명징한 의식이 남는다. 문득 걸망 하나 메고 오르는 이 산길의 내가 좋아진다. 늘 모자라고 불만이었던 내가 좋아지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스스로 중답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둠이 내리는 호젓한 산길을 걸을 때면 정말이지 그런 느낌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무엇답게 산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어쩌면 많이 어려운 일인 것만 같다. 일탈하지 않고 자기자리에서 자기의 직분을 다하고 산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그러기에는 우리는 너무 많은 욕심과 바람을 지닌 존재들인 것이다. 소욕지족하지 못한다면 ‘답게’ 사는 일은 요원한 것이 되어 버리고야 만다. 가끔씩 내 자신에게 물어봐도 긍정적인 대답을 만나기는 쉽지가 않다. 때로 일탈 하고 때로 헛된 몸짓 속에서 후회를 하는 적도 많이 있다.

산사로 이어지는 산길은 나를 나답게 한다. 산길은 그 호젓함으로 욕심을 버리게 하고 산길은 그 고요로 내 산란한 마음을 쉬게 한다. 그 길 위에 서면 오래 잊었던 내 본래의 모습을 만나는 반가움이 있다. 산길 위에서 나는 착하고 욕심이 없고 그리고 고요하기만 하다. 비로소 중다워지는 것이다.

누구나 산에 들어 도를 닦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애욕 때문이라고 고인은 말했다. 산에 든다는 것은 어쩌면 이미 애욕을 버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지도 모르겠다. 산길 위에서는 들끓는 마음의 모든 욕구가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냥 고요할 뿐이다. 무엇을 생각한다는 것이 산길 위에서는 부질없다. 그냥 고요하게 걷다보면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맑은 기쁨 하나를 만날 수 있다. 그 순간 그 기쁨은 이 세상 어느 것보다 값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요의 기쁨을 알아버린 산에서 애욕은 덧없는 것이기도 하다.

산길에 선 낙엽송이 반갑다. 가끔씩 와서 볼 때마다 산길에 뿌리내리고 사는 나무의 한 생애가 부러워도 보인다. 올곧게 서서 추위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 나무는 마치 수행자를 닮은 것만 같다. 전생 오랜 시간을 수행자로 살다가 이제 절집을 지키고 선 나무가 되어 산사의 고요를 만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무가 품은 고요한 기쁨이 만져지는 것만 같다.

산 위에 자리한 암자의 불빛 하나가 별처럼 곱다. 지나는 한 해의 시간들의 길을 비추는 것만 같다. 오늘 지나는 시간들의 길을 밝히는 저 불빛은 내일 새벽에는 다가오는 시간들의 길을 밝힐 것이다. 암자의 불빛을 따라 가고 오는 시간들은 암자의 불빛만큼이나 예쁘고 고요하다. 풍경소리와 목탁소리 역시 가는 시간을 전송하고 오는 시간을 맞이할 것이다. 풍경소리를 따라 가고 오는 시간들. 문득 그 시간들의 평화가 느껴만 진다. 새해에는 우리 사는 세상의 모든 시간들이 저 암자의 시간만 같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