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사의 금강저 뇌성벽력

법응 스님/불교사회정책연구소

2023-04-02     법응 스님/불교사회정책연구소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이하 금강경)은 조계종의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 신행 활동과 교의적(敎義的)으로 기본이 되며 빈번히 독송되는 경전이다. 금강경은 ‘바즈라체디카 프라즈냐파라미타 수트라(Vajracchedikā Prajñāpāramitā Sūtra)’라는 이름의 경전이다.

‘Diamond Sūtra’라는 간단한 영어식 표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

금강경은 능단금강(能斷金剛)이라고도 했는데 그 의미는 금강석과 같이 잘 절단 된다 혹은 금강저(金剛杵)로 파쇄 한다는 의미라 한다. 상(相)과 번뇌와 집착의 단절에 대한 방편성일 것이다.

분별과 번뇌로 어지러운 마음에 뇌성벽력(雷聲霹靂)이 쳐서 그 모든 분별과 번뇌와 아상이 깨지고 부수어져서 끝내 소멸에 이르게 하는 지혜의 길잡이와 같은 경전이 금강경이 아닐까 한다.

금강경은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을 동시에 설하는 경전이라고 볼 수 있다. 4상(四相)을 여읜다는 것은 상구보리 즉 수행과 열반을 증득함을 이름이요, 집착 없는 보시 즉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의 실천을 강조함은 결국 세상을 평안의 세계로 이끄는 하화중생의 중요한 덕목일 것이니 말이다.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으로써 자아라는 생각, 개인, 개아라고 하는 생각(인간이라는 우월성), 생명의 존재라고 하는 생각, 개체라는 생각을 버리라는 가르침, 모든 것이 착각된 것이니 그대로 소멸시켜서 청정본연의 세계를 깨닫도록 하라는 가르침이 뇌성벽력처럼 충격을 가한다.

부처님은 수보리에게 “구도자 훌륭한 사람들은 발자취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에 집착하지 않도록 하여 보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만약 구도자가 집착함이 없이 보시하는 공덕이 거듭 쌓여서 쉽게 헤아릴 수 없을 정도가 되기 때문이다.”라고 설하셨다.이름을 일부러 남기려고 애쓰는 인사들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애당초 이 우주(세계)에 자아라는 존재, 고정불변한 절대라고 할 것은 없는데, 하물며 나의 것과 너의 것을 따지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생색을 내는 마음 없이 보시해야 하는 이유이며, 이러한 세상을 추구해 나가는 것이 불교인의 자세여야 하기 때문이다.

금강경은 그 어떠한 보시보다도 경에서 말하는 4구계를 타인에게 일러주는 것이 가장 뛰어난 공덕이라 설하고 있다. 이는 신분이나 빈부의 차별을 떠나서 가장 이상적인 세계관이 사람의 내면에 뿌리내렸을 때 진정한 의미의 삶이 회복되고 또한 그를 바탕으로 무주상보시가 실천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잘나고 부와 권력이 있다고 우쭐대거나 그렇지 않다고 해서 비굴해지지도 않기 때문이니 무위법을 바탕으로 자비보살행과 무애한 차별이 있을 뿐이다.

금강경은 여래의 상(相), 즉 부처님의 외적인 것 등에 대하여 철저하게 부정하고 있다. 제대로 된 수행을 하거나 여래를 추구하는 자는 여래의 상(相)이나 자취에 천착하지 말고 내면의 가르침에 충실하라고 한다. 부처님께서는 일구어 얻은 마음(지혜)의 밭에 종자를 뿌리고 수확하라 하셨지 결코 외형을 답습하라고 하지는 않으셨다.

오대산

금강경의 성립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대략 AD1세기를 전후로 한 시대로 추정한다. 구마라집본에는 한자가 총 5,149자며 여러 학승이 번역했고 금강경의 각 품 32분절(分節)은 양(梁)나라의 소명태자(昭明太子)가 했다고 전해진다. 현대 우리 사회에서도 십수종의 번역문이 있으나 독송을 거듭할수록 어딘지 구성과 번역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제7품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의 “일체현성 개위무위법이유차별(一切賢聖 皆以無爲法 而有差別)” 대목에 대하여도 구마라집(鳩摩羅什), 진제(眞諦), 지바하라(地婆訶羅) 등이 각각 다르게 번역을 했고, 현재 우리나라의 스님과 학자들도 그 번역과 해석이 천차만별이다. 종단 차원에서 금강경에 대해 경안이 트인 스님들과 전문학자로 편성된 팀을 구성해서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을 하고 그 품의 나눔에도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오대산 월정사에서 금강경봉찬기도를 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글을 쓰게된 연유는 홍보 이미지의 번개 문양과 금강저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금강경 봉찬기도 동참자들의 번뇌와 온갖 괴로움이 원력과 정진이라는 뇌성벽력으로 여의어지기를 바란다. 나아가 우리 사회의 온갖 모순과 갈등 위에도 뇌성벽력이 내리쳐서 일소되기를 또한 기대해 본다. 더불어 월정사가 중심이 되어 금강경에 대한 심층적이고 광폭적인 담론의 장이 마련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法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