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탈핵실크로드[17] 라오스의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순례의 궁극적 목적

2022-11-21     이원영 수원대 교수·한국탈핵에너지학회 부회장

 

 

국경을 넘어 라오스로 접어들었다. 마중 나온 이가 있었다. 일본에서 만났던 하라 츠네노리(原恒徳 Hara Tsunenori)씨이다. 하라상이라는 이름의 중년남자다. 일본에서 만나서 함께 걷기도 했던 그는 필자의 로마행에 호기심을 갖고 동참해서 걷기를 원했다. 그리하여 라오스에서부터 참여하게 된 것이다. 필자에게는 반가운 이였다. 동행이 있으면 혼자 걷는 것보다 훨씬 낫다. 그는 일본에서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으로 온 후, 수고롭게도 이곳 국경까지 렌터카를 몰고 왔다.

지난번 소개했던 경향신문에 게재된 칼럼의 일부분에 그에 대한 소개가 나와 있다.

https://m.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1709082053025#c2b

‘로마까지 걸어간다고? 도대체 어떤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고 지난 6월 궁금해 하던 일본의 한 사람이 지금 생명·탈핵 실크로드(이하 생명로드) 도상의 라오스에 와서 함께 걷고 있다. 지구촌 안전을 꾀하자는 근본 뜻을 알고는 자신의 일을 잠시 접고 로마까지 도우면서 2년간 순례하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는 모든 코스를 걷는 것이 아니다. 걷지 않는 날에는 필자를 돕는 입장에서 렌터카로 짐도 옮겨 나르는 보조자 역할도 맡기로 했다. 그가 있어서 라오스부터는 한결 편하게 걸을 수 있었다. 다만 그가 원래부터 탈원전운동에 열의를 갖고 있던 분이 아니었고, 장기간에 걸쳐 걷는 일에 익숙했던 필자와는 달라서, 도중에 겪게 될 어려움을 그가 잘 감당해낼지에 대해서는  미지수였다. 

 

 

 

라오스의 국경지대의 경치는 마치 한국 가운데 아름답다고 할 만한 산하를 그대로 따뜻한 남쪽지역으로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정겨우면서도 아늑한 맛이 있는 아름다움이다. 여름철이기는 하지만 고도도 상당히 높고 건조하여서 베트남보다 쾌적한 기분으로 걸을 수 있었다. 

 

 

 

그해 2월의 생명탈핵실크로드 사전답사여행 때도 왔었던 락사오 지방은, 동부지역 전체의 중심 마을이다. 이곳을 며칠 동안 베이스캠프로 삼아 걸었다. 동자승이 많이 보이는 것이 무척 인상 깊었다. 알고 보니 어린 시절 남자아이는 상당 기간 절집에서 이런 경험을 거치는 것이 사회적으로 관례화 되어 있다. 

아래 사진은 아침 일찍 그 동자승들이 탁발하는 인상적인 모습이다. 스님께 공양드리는 주민들은 아침 일찍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 아마도 이들 중에 모친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놀라운 사회문화적 시스템이다. 이를 지켜보던 필자는 불자답게 합장으로 존중해주었고, 이 장면을 하라상은 카메라에 담았다. 

 

락사오 일대의 자연경관은 운치가 그만이었다. 걷는 내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천천히 걸으면서 볼 수밖에 없었기에 그 아름다운 장면이 5년이 지난 지금에도 눈에 선하다. 또 다시 걸어가고 싶은 코스다.

 

 

어느 날 걷다가 큰길가에 있는 영어 스쿨(일종의 학원)에서 많은 학생이 있는 자리로 갑자기 소개되었다. 이미 어느 학생이 Peter라는 선생에게 우리의 순례모습을 전한 것을 듣고, 이 선생이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를 학생들 앞에 세운 것이었다. 필자는 평소에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영어 강의를 갑자기 하게 되었다. 서툰 발음에도 아이들이 잘 들어주었다.

 

베트남 호치민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던 이 선생은 순례에 감탄하면서도, 100인위원회로부터 지원을 받는 사회적 시스템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낮 도보일정을 마친 후 저녁반에 와서 또 한차례 설명해주기를 기대하였다.

그리하여 저녁반에 와서 다시 설명하였다. 이 반의 학생들은 고교생 나이들이 많아보였다. 낮반 아이들은 순례에 대해서 관심을 보였고 이 반은 핵발전소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해왔다. 특히 핵발전소와 핵무기 가운데 어느것이 위험하냐는 질문이 기억난다.

필자는 대답했다. "핵무기는 인간이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핵발전소는 그렇지 않다. 핵발전소는 지진에 무력하다. 그러므로 핵발전소가 더 위험하다." 그러면서, 필자가 "핵발전소는 지구상에 450개이고 수명이 50년인데, 터지면 천년이나 농사를 못짓는다"고 하자 모두가 놀란다. 

자신의 나라에 핵발전소가 없는 것과 이웃 베트남이 도입을 백지화했다는 대목에서는 환호를 지른다. 그렇게 위험한 것을 어떻게 없애느냐는 질문에, 필자는 핵폐기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 "없애는 일의 시작은 나같은 사람이 하지만 마무리는 여러분들이 해야한다"고 말했다. 갑자기 이들의 어깨가 무거워졌을지 모르겠다.

강의를 듣는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중 누군가가 필자를 기억하고 그 뜻을 이어서 이 큰 일을 해가기를 기대한다. 그 기대야말로 이 순례의 궁극적 목적이다. 

이원영 수원대 교수  leewysu@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