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소통을 잘하고 싶다는 진우 스님께

2022-09-13     허정 스님/전 조계종 불학연구소장

새롭게 대한불교조계종의 총무원장이 된 진우 스님은 소통을 강조합니다. 교계신문에 따르면 진우 스님은 “ 소통은 종단 화합의 기본이자 기초로서 중대하다. 모든 구성원이 동등한 위치에서 신심과 진심으로 대화하고 소통하겠다.”라며 소통을 최우선 과제로 공약집에 넣었다, 너무도 지당하고 소중한 발언입니다.
그런데 소통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현 총무원장 원행 스님도 “열린 자세로 소통하고 사부대중의 공의를 적극적으로 수렴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하고 4년을 보냈습니다만 사부대중의 고의를 모으는 소통을 하지 못했습니다. 지난번 나눔의집 사건에 대한 안이한 대처방식이나 이번 봉은사 앞에서 벌어진 승려들의 폭행 사건을 처리하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소통을 강조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소통하고 있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진우 스님이 얼마 전 기자회견에서 “9년 전 적광 스님 폭행 사건도 유야무야 됐는데, 총무원 호법부에 고소된 이번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당사자 스님이 우발적인 흥분을 한 것 같다. 스님의 위치에서 그렇게 한 것은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며, 당사자가 충분히 참회했고, 여타의 불법성이나 문제가 되는 부분은 종단 호법부에서 충분히 해결해 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한겨레신문) 특이한 것은 질문한 기자가 “폭력까지는 모르겠다”며 ‘신체적인 접촉’이라고 표현해 종도의 반발을 살 것이라고 우려한 점입니다. 스님의 인터뷰를 보면서 저 또한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통하려면 사실을 정확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진우 스님은 폭력을 행사한 당사자가 충분히 참회했다고 말했지만 그렇치 않습니다. 사과는 폭행을 당한 당사자에게 하는 것이 상식인데도 지오 승려는 정작 피해자에게는 사과하지 않고 언론사에 참회문 한 장 보내고 잠적했습니다. 박정규 종무원을 폭행한 승려 세 명이 고소되었는데 아직 두 명은 신원 파악도 되지 않은 상태이며 재가단체는 이들의 신원 파악을 위해 3백만 원의 현상금까지 걸어 놓았습니다.

적광 스님이 폭행을 당했을 때도 종단은 폭행은 없었고 우발적인 사건이었다라고 시종일관 변명하여서 급기야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했습니다. 법원의 판결은 “빨간 장갑을 끼고 주먹으로 피해자의 얼굴을 10여 회 때리고, 피해자의 뺨을 때리고 주먹과 발로 피해자의 얼굴, 가슴, 팔, 엉덩이, 허벅지 등을 수십 회 때렸다.”, “범행 경위와 수법의 면에서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라고 것입니다. 폭행을 당한 적광 스님은 그들이 목을 졸라서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나는 도살장에 끌려온 한 마리 짐승이었다”라고 그날의 폭행을 증언하였습니다. 이러한 법원의 판결과 피해자의 증언이 있었음에도 불교신문은 ‘이것이 팩트다’라는 제목으로 적광 스님에 대한 폭행은 없었다고 계속 주장했습니다.

소통하려면 사실 파악을 먼저 해야 하고, 사실 파악을 하려면 피해자들의 말을 먼저 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소통의 기본자세입니다. 이러한 자세 없이, 이러한 적극적인 노력은 안 하고 “소통이 중요하다” “소통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라고 말만으로는 믿음을 얻기 어렵습니다. 진우스님이 사용한 ‘신체적인 접촉’ ‘우발적인 흥분’이라는 표현은 적광 스님이 폭행을 당하고 나서 내놓은 총무원의 반응과 어찌 이리 흡사합니까? 1인시위가 시작되기 전에 봉은사에서는 1인 시위하는 자리에 미리 사다리를 갖다 놓았고, 사진 찍을 준비를 해놓았고, 똥물을 준비해 놓았는데도 우발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박정규 종무원의 팔, 다리, 허벅지 등에 멍든 자국이 있고 입술이 찢어지고 치아가 흔들리는 데도 단순히 신체적인 접촉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진우 스님이 이전의 집행부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면, 새로운 조계종의 대표로서 진정한 소통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면, 당장 오늘이라고 박정규 종무원에게 전화를 걸어 종단 대표로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고소당한 승려들의 신원을 밝혀야 합니다. 종단 호법부가 잘 해결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허황됩니다. 만약 호법부가 직무수행을 제대로 했다면 사건이 발생한 지 3주가 지난 지금은 도망간 승려들의 신원을 파악하여 호계원에 징계 요구를 끝냈어야 합니다. 사람이 얼마나 도덕적인가 하는 판단은 약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나타난다고 합니다. 폭행을 당해서 병원에 누워있는 피해자가 있는데도 우발적인 신체접촉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약자와 소통하는 자세가 아닙니다. 최소한의 노력도 없이 말로만 소통을 강조한다면 누구도 진우스님의 말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소통은 작은 것에서 시작합니다. 우리 종단도 이제부터 민원 접수 전담 직원을 두고 카톡으로 민원을 접수받아야 합니다. 민원을 제기하는 방식이 쉬워야 종도의 목소리를 빠르게 전달받을 수 있습니다. 니까야 한글 번역 판권을 사서 인터넷에 올려야 합니다. 기독교의 성경을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인터넷에 올려져 있는지 검색해보십시오. 사찰과 포교당을 짓고 승려를 교육하는 것이 결국 불법을 포교하기 위한 것이라면 인터넷에 경전을 올리는 것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가장 직접적인 포교입니다. 주지 없는 사찰 신도들은 주지 스님 보내 달라하고 일반 스님들은 편안히 머물 데가 없다고 합니다. 주지 없는 사찰을 인터넷에 공개하여 개인 처소(토굴)를 마련하고 싶은 스님들이 선택하여 머물 수 있도록 해주셔요. 승려 노후 복지와 포교를 동시에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다른 할 말도 많지만, 이 두 가지를 먼저 실천하는 것으로 소통 의지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종단을 위해서 종도를 위해서 그리고 스님 자신을 위해서, 스님이 역대 총무원장 중에서 최고로 소통을 잘한 총무원장으로 남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