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5. 업

2021-06-21     전재민 시인


세상에 공짜는 없다
먹으면 먹는 대로
입으면 입는 대로


물고기 잡고
닭을 죽이고
누군가를 미워하면 할수록
누군가를 질투하면 할수록
쌓이는 고통


천사 날개에 무거운 쇠뭉치 달듯
닳아 없어지고
불타 없어지고
바람에 날려 없어져도
지독한 사랑 끈처럼
윤회 억겁 속에 이어질 인연처럼.

 

#작가의 변
나는 왜 하는 일마다 안 되는 걸까? 나는 왜 부잣집에서 태어나지 못했을까? 나는 왜 가난할까? 나는 왜 건강하게 태어나지 못했을까?
궁금증을 가지면 가질수록 화만 나고 세상이 온통 나만 미워하는 것만 같다. 내가 즐기려고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내가 살려고 남을 죽이는 일을 저지른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사회생활이 장난인줄 알아. 전쟁터야.'

이렇게 말하면서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정당하게 만들어 버린다. 법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정의란 이름으로 약자를 보호하고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외치지만 늘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하는 사회였고 ‘금수저’ 물고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은 치열한 경쟁에서 피를 흘리면서 살아 가야한다. 한 번뿐인 인생이라면 주어진 환경 때문에 못하는 것인데 결혼하기도 힘들고, 머리가 나빠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했을 뿐인데 경쟁에서 도태되어 산지옥에 산다. 우리들이 이름붙인 지옥철도 처음부터 ‘지옥철’은 아니었다. 좀 더 편리하게 이동하려는 수단이었을 뿐, 아무리 넓고 좋은 집에 있어도 가족이 모두 떠난 빈 집에 홀로 생활해야한다면 그곳이 지옥이 될 수도 있다. 숲 속에 있으면 그 숲이 어느 정도 산에 있는지 가능하기 힘들다. 바다 속에 있으면 바다의 크기를 가늠하기 힘든 것과 같다. 삶의 한 가운데 있으면 삶의 가치를 느끼기 힘들다.

6월17일 캐나다 비씨주의 리치몬드 병원 앞에는 평소 보지 못하던 현수막이 내걸렸다.
길을 건넜다가 다시 길을 건너서 하나하나 사진을 찍으면서 우리는 평소 감사하는 마음을 얼마나 표현할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마음속으로 아무리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외쳐도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알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겐 사랑한다고 표현을 해야 사랑하는 줄 안다. 꽃을 들고 고백을 해야 아니면 무드 없이 라도 고백을 해야 사랑인 줄 안다. 눈으로 말해요라는 노래가사는 이미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사이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다. 마음과 마음이 통한다 해도 때론 오해하고 서운해 하는 것은 표현에 서투르기 때문이 아닐까한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표현을 하고 나면 나에게도 사랑이 남고 고마움이 남고, 감사함이 남는다. 더불어 업을 짊어지는 무게가 좀 더 가벼워진다.
난 옛날사람이라서 표현이 서툴다. 하지만 표현하려 노력한다. 옛날 우리의 아버지들은 앞에서 뒷짐을 짚고 앞서가고 어머니는 짐을 이고 부지런히 아버지의 발걸음을 따라 갔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도 변했다. 물론 생활습관도 많이 변했다. 다같이 차를 타고 가족이 나들이를 해도 각자가 셀폰을 하느라 대화를 안 한다. 심지어 집안에서도 카톡이나 메세지로 주고받기도 한다.

세상은 한없이 좋아졌지만 우리는 대화의 단절과 표현의 부족으로 늘 벽에 부딪히고는 한다. 디지털 시대 조금은 아날로그 감성이 필요하다. 그림으로 표현하고 손 편지로 표현하고 직접 다정한 사랑의 표현이 필요한 시대이다.
병원의 직원과, 케어 홈, 그로서리 스토아 등 프론트 라인에서 일하는 많은 분들에게 고마움과 감사를 표현한 현수막이 있어 빛나는 날이다. 아날로그 감성의 표현이라서 아날로그 나무사이에 현수막이라서 더욱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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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살고 있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학원을 다니면서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 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 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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