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수행 하자" 했더니 "너 나가"한 해인사

선원장 효담 스님 수행 점검 등 제안에 해인사 측 "가풍에 맞지 않아"

2020-11-25     조현성 기자
해인사

 

"백장총림에서 중시됐던 정규과목인 선지식 법문은 일반 신도들에 생활법문하는 의례절차가 돼버렸고, 스승과 제자가 마주앉아 안목을 점검받는 독참, 보충수업인 청익은 흔적조차 사라졌다. 자율학습에 해당하는 승당의 좌선에만 매몰돼 있다. 이것이 선종 수행법 전부인양 안거를 치르는 것이 오늘날 수좌들 모습이다."

법보종찰 해인사 선원장이 올해 동안거 결제를 5일 앞두고 선원장 소임에서 물러났다. 위와 같은 선원 풍토 비판이 해인사 가풍과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복수의 조계종 관계자는 "해인사 소림선원 선원장 효담 스님이 수좌회 좌담회 발표 내용을 문제삼은 해인사 측에 의해서 선원장에서 물러났다"고 했다. 이 소식은 불교계 B매체가 최초 보도했다.

B매체는 "해인사 측이 24일 효담 스님에게 '해인사 가풍에 맞지 않는다'며 선원장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했고, 효담 스님이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효담 스님은 "좌담회에서 제안한 내용은 틀린 것 하나 없다. <백장청규>를 근거로 전통수행법을 현대화해 제안한 것들"이라고 했다. 

출가 후 제방 선원에서 수행정진해온 스님은 갑작스런 선원장 사퇴 요구에 절을 떠나서 산청 토굴에 머물고 있다. 스님은 "갈 곳도 없고, 농사나 짓고 살 생각"이라고 했다.

선방이라면 일대일 수행점검 필수

효담 스님은 지난 16일 전국선원수좌회(의장 선법 스님)가 해인사 소림선원에서 개최한 '선풍진작과 선원 활성화를 위한 좌담회'에서 '우리는 왜 모여 있는가' 기조발제를 했다.

스님은 발표에서 "선종은 세상을 보는 관점과 인식의 전환을 촉구하는 정신혁명이다. 선원은 성불작조(成佛作祖)를 위해 모이는 학인들의 수행공동체"라고 했다.

이어서 스님은 백장회해 선사의 <선원청규>에 적시된 전통수행 풍토를 설명했다. 당시는 현재의 정규수업격인 매일 단체교육인 법문과, 선지식인 방장과 학인의 일대일 점검인 독참을 했다. 보충수업과 같은 선지식을 찾아 묻을 수 있는 청익이 있었고, 자율학습이라 할 수 있는 자율인 좌선이 있었다. 

본래 정신 사라진 수좌생활 공동체
 

스님은 "오늘날 선원은 단지 수행을 목적으로 모여 사는 형식만 갖췄을 뿐 안목교환이라는 선원 본래 교환 방식과 정신은 배제됐다. 나 역시 수좌이기에 지금의 현실이 부끄럽고 뼈아픈 부분"이라고 했다.

이어서 "오늘날 우리 선원은 무너진 교육체계 속에서 형태만을 쥐고 있는 형국이다. 방향성도 없다. 좌선 일변도로 생활하는 공간이 선원이고 우리들의 안거가 아닌가"라고 했다.

스님은 한국불교 선원이 수행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되찾을 대안으로 ▷선지식 법문을 대신할 소참 시간 ▷독참을 대신한 조사어록 강독시간 ▷청익을 대신한 대중의 안목교환 시간 ▷하루 8시간 이상 집단 좌선의 자율수행 전환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수좌들은 더 이상 스승이 사라진 이 시대를 탓하지 말아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스승이 돼야 한다. 개개인이 가진 안목을 서로 교환하고 점검해주는 수행풍토가 한국불교를 변화시킬 수 있다. 그것이 곧 초기 선종사찰의 정신"이라고 했다.

해인사 "용맹정진 가풍과 맞지 않아"

이후 해인사는 방장 원각 스님, 주지 현응 스님을 비롯해 유나 선원장 등이 모였다. 이 자리에서 "(효담 스님이 말한 수행법은) 가풍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선원장 효담 스님의 사퇴를 요구했고, 효담 스님은 이를 수용했다.

해인사 측은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성철 혜암 법전 스님 등 해인총림의 오랜 (하루 8시간 이상 좌선하는) 용맹정진 가풍이 있다. 효담 스님 제안에 공감가는 부분도 있지만 검증되지 않아 해인사 선원 전체가 따라가는 것은 난감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한다.

조계종 가풍, 비판하면 "너 나가"?

한편, 좌담회 현장을 취재한 B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백담사 선원장 대전 스님 등 참석한 수좌스님들 다수가 효담 스님 제안에 공감했다.

전국선원수좌회 의장 선법 스님은 "선에서 독참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선원에서 독참 문화가 사라졌다. 심지어 종립선원 봉암사도 조실스님 자리가 오랫동안 공석이다. 조실이 없으니 법문도 소참도 독참도 없다"고 했다.

최근 조계종 수장 원행 총무원장이 대외적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환영하는 가운데, 비구니 중앙종회의원 스님이 승가내 남녀차별 개선을 요구했다가 기관지 <불교신문>에 사과문을 게재해 세간의 비웃음을 샀다. 또, 조계종 포교원(원장 지홍 스님)은 신도 등을 징계하는 종법 개정을 추진해 대중의 종단 비판과 문제제기를 원천 차단하려 한다는 구설에 올랐다.

한국불교 최후의 보루라는 수좌스님의 선원 비판마저 소임 사퇴로 이어진데 충격이 더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