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활동의 정체성과 해종 여부를 묻는다

[칼럼]

2020-08-31     법응 스님
해인사

모이지 않아야 하고 말을 섞는 것도 조심해야 하는 소위 ‘비대면’이 일상화 되고 있는 때, 조계종의 얼굴이랄 수 있는 전국의 유명사찰 홈페이지들을 둘러보다가 한 마디로 충격을 받았다. 위기일수록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역사의 교훈을 상기하면서 종단적인 관심을 희망하며 여기 소감을 정리해 본다.

〇 조계종 중심사찰의 법회 및 기도에 대한 홍보현황

본 도표는 2020년 8월 27일자로 해인사 등 일부 사찰의 홈페이지 법회안내에 대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날짜가 지나면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조계종단을 대표하는 사찰들이 법요식으로서 법회나 불공이라는 고유한 용어를 사용하기보다는 기도일색인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더러는 불교 고유의 법회의식인지 기도인지 그 표기마저 혼란스럽다. 불교 고유의 용어인 법요식에 준거한 ‘법회’나 ‘불공’이 주는 의미와 절대자에 의지하는 ‘기도’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현재와 같이 기도가 사찰과 불자들 사이에서 성행된다면 불교는 그 본질과는 무관하게 절대자에게 의탁하는 종교로 변질 될 것이다. 불공, 법회, 정진 등 여법한 법요식 용어들을 외면하고 기도라는 단어를 사용할 필요성이 무엇인지 이해가 안 된다.

혹자는 기도를 방편으로 이해해고 재정 운영상 어쩔 수 없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이해를 못하는 바는 아니나 정법의 길을 고수해야하는 종단의 상징적이고 중심인 대찰마저 기도일색이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총림이라는 도량 내에서 살불살조의 자세로 견성성불의 길을 가는 불교가 있고 한 편에서는 불자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기복 불교를 강권하니 둘이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왜 그래야만 하는지 설명이 필요하다.

어느 사찰 홈페이지의 ‘기도의 의미’를 한 구절 소개한다.『절하는 무릎에서 피가 나도 아픈 줄을 모르고 '지극정성 간절히 일념으로' 구하는 거기에서 불보살님이 감응하시고 "착하고, 착하다." 하시며 가피를 내리시는 것입니다.』라고 쓰여 있다. 판단은 독자에게 맡긴다.

〇 종헌 제1장의 의미와 해종의 연관성

이쯤에서 조계종의 종헌을 살펴보자.

제1조 본종은 대한불교 조계종이라 칭한다. 본종은 신라 도의국사가 창수한 가지산문에서 기원하여 고려 보조국사의 중천을 거쳐 태고 보우국사의 제종포섭으로서 조계종이라 공칭하여 이후 그 종맥이 면면불절한 것이다.

제2조 본종은 석가세존의 자각각타 각행원만한 근본교리를 봉체하며 직지인심 견성성불 전법도생함을 종지로 한다.

제3조 본종의 소의경전은 금강경과 전등법어로 한다. 기타 경전의 연구와 염불 지주 등은 제한치 아니한다.

조계종단은 역사적 근원과 정통성을 종헌 제1조에 기술하고, 제2조에는 근본 교리와 사상 그리고 세상에 무엇을 구현할 것인지를 정의하고 있다. 제3조는 열린 자세로서 여러 경전의 연구와 참선 이외의 수행을 허하고 있다. 종헌 제1조, 제2조, 제3조가 조계종의 근본 철학이고 존재이유며 지향점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도의국사는 돈오돈수의 수행관으로 육조혜능으로부터 남악회양과 마조도일로 이어지는 정통 남종선의 수행자다. 보조국사는 선교일치의 완성과 간화선의 선양조로서 조계종의 교두보역할을 했다. 보우국사는 기복 불교의 폐단을 일소하고 구산선문을 통합하며, 백장청규로 수행의 당간지주를 세우는 역할을 했다.

조계종은 정법에 의거한 수행과 삿된 것을 타파한 조사들을 종조로 모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봉암사결사나 모든 결사가 결국 어려울수록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다.

물론 불교도 의식을 중요시 한다. 불보살에 대한 헌(권)공의식을 통하여 삼보를 찬탄하고 공양을 올리며, 운집한 대중을 위로하고 국가나 사회적 어려움을 이겨내는데 중심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 절차와 내용은 진리의 설파를 위한 방편이며, 대승사상의 구현이 중심이었다.

이러한 역사와 철학을 생명으로 하는 조계종단이 과학과 정신문명이 그 어느 때보다 발전한 현 시대에 통째로 기복 불교라는 폐단에 젖어 있다. 이를 바로세우지 않고서는 조계종단의 중흥은 요원하며, 이를 바로 세우는 것이 중흥의 시작이며 끝이라는 생각에 이른지 오래다.

기업도 자본이 잠식당하면 결국에는 도산하듯이 불교의 자본은 그 고유한 교리와 여법한 헌공 의례인데, 이 엄중한 곳에 타 종교의 자산인 기도가 잠식해서 날로 번성하고 있으니 결국 불교는 정체성을 상실하고 이상한 종교가 되고 말 것이다.

해종(害宗)은 말 그대로 조계종단의 근본에 해를 입히는 행위이고, 해종 행위자는 그러한 행위를 하는 자를 지칭한다. 조계종의 근본인 종헌 제1장에 반하거나 피해를 주면 ‘해종’이다. 절대자인 신에게 기대는 기도는 종헌에 반하는 신앙행위가 분명하니 해종 여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기도라는 단어가 종단의 간행물에까지 공식 등장하고 있는 현실이다.

도표에 기도로 표기된 것을 법요식 명칭으로 일부 전환해 보았다.

〇 무엇을 어찌 할 것인가?

종단은 신행활동과 관련한 용어의 정리가 필요하며 특히 스님들부터 헌공과 관련한 용어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하고 불자들에게 설명해 줘야 한다.

조계종단의 존재이유는 삼보와 도량을 호지하는데 있으며, 종무는 정법을 수호하고 활성화 하는데 있다. 그런데 타종교의 신앙행위가 조계종 중심에 당당히 들어와 자리 잡고 있으니 이제라도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불교의 중흥은 내부로부터 오염된 신행관을 바로잡고 기득권 고수의 자세부터 버릴 때 가능하다. 승려가 각자 맡은바 위치에서 열심히 하는 것이 중흥에 일조라면 지도자급 스님들부터 맡은바 위치에서 제대로 잘 하고 있는지 답해야 한다.

종조이신 도의국사, 보조국사, 보우국사님께서 오늘의 조계종의 현상을 목도하신다면 뭐라 하실까?

法應(불교사회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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