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길도의 세연정

[연재] 김규순의 풍수이야기 160

2019-09-18     김규순
판석보_생석회로

 

세연정은 윤선도가 보길도에 정착하면서 그를 찾아오는 손님들을 환영하기 위해 지은 집으로 여겨진다. 물가에 세연정을 짓고는 바위만 놔둔 채 흙을 파내어 넓은 계곡을 만든 뒤에 생석회와 판석을 이용하여 보를 만들어 물을 가두어 호수를 조성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이용하여 세연정의 뒤에도 방형의 연못을 만들었고 세연정 좌우로는 물길을 만들어 다리를 놓아 연못의 물이 빠져나가도록 설계하였다. 세연정 옆의 초등학교는 아마도 일제시대에 세연정의 후원에 만들었을 것이다.

윤선도가 51세 때 들어와 살기 시작했으며 85세에 보길도 안쪽 낙서재에서 돌어가셨다.

그 동안 7차례 드나들면서 13년의 세월을 보낸 별천지이다. 세연정은 소위 섬 안의 섬에 지은 정자였다.

세연정의

 

세연정은 마을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바다를 통해 방문 온 손님들이 배에서 내리면 지척에 세연정이 있어 파도에 고단한 일신을 쉴 수 있게 했다. 바다 건너 가까이에 제법 큰 노화도가 있고 그 사이에 장사도가 있어서 항구는 바다가 아니라 강 같은 느낌이다. 세연정 주변에 원림을 조성하였고 윤선도가 사람들에게 나무를 베지 말도록 당부를 했으나 일제강점기 때에 굵은 나무를 탐내던 일본놈들이 벌목하여 방출해갔다.

 

그는 정조가 입이 마르도록 칭찬한 풍수도인이었지만, 윤선도가 노년에 유유자적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라 부귀손을 바라는 풍수적 고려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해남에 있는 윤선도기념관에는 그가 사용했던 패철이 있다. 그가 풍수적 고려를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세연정은 물로 둘러싸이게 하여 사신사를 멀리하였다. 내룡은 파내어 연못으로 만들고 물길을 내었다. 동양사상에 있어서 산줄기도 용이지만, 물도 용이다. 용왕이 최고의 물신이 아니던가. 그러나 풍수에서는 물을 용이라 하지 않고 산의 능선을 용이라 한다. 용어를 사용할 때에는 개념에 적합하게 사용하여야 한다.

 

윤선도는 풍수지리의 용을 배제하고 바다의 용왕이 물을 따라 올라와서 같이 노닐수 있도록 세연정의 사방을 물로 채웠는지도 모르겠다. 용왕과 함께 놀 수 있는 공간 세연정. 이 얼마나 호쾌한 상상력인가. 이곳에서 활을 쏘고 어부사시사를 짓고 노래하며 즐기던 윤선도 옹의 호연지기가 서린 공간이다.

세연정은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전통건물이다. 정자로서 최고의 세련미를 갖추고 있지만 공간의 짜임새도 멋있다. 주변의 경관과 어울려서 앉아있으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부귀와 명예와 자손 번창은 이미 이룬 노년의 그에게는 도학자로써 벗할 수 있는 자연을 곁에 두는 것이 더 절실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