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 2대 천자지지

[연재] 김규순의 풍수이야기 138

2018-09-27     김규순

추석연휴를 전후해서 <명당>이란 영화가 관심거리이다.

영화 <명당>의 핵심은 가야산의 남연군묘이다. 풍수사 정만인이 흥선대원군과 거래를 한다. 명당을 찾아주면 해인사의 해인을 가지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정만인은 가야산의 2대 천자지지(2代 天子之地)와 오서산의 만대영화지지 중 어느 것을 택하겠느냐고 물었고 이하응은 2대 천자지지를 택하였다는 것은 야사이다. 가야산의 가야사에 불을 질러 장소를 확보한 뒤에 남연군을 이곳으로 이장한 것은 팩트이다. 남연군은 왕족이지만 왕권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인조의 장남 소현세자 부부는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했고 차남인 봉림대군(효종)이 왕위를 물러 받았다. 인조의 삼남 인평대군의 7대손이 남연군이었고 그 아들이 흥선대원군 이하응이었다. 흥선대원군이 이곳에 아버지를 이장하고 7년 후 둘째 아들을 얻었는데 그가 고종이었다. 이것이 역사적 팩트이다.

그 당시 세도정치의 핵심인 장동김씨(신안동김씨)도 조상을 명당에 모셔서 잘 된(?) 케이스였다. 장동김씨는 기사환국(1689)으로 김수항이 사사되고 신임사화(1722)로 김창집과 김제겸이 사사당 한다. 조선역사상 한 집안의 할아버지·아들·손자가 사사당하는 최초의 일이 발생하였다. 이를 조상의 묘 탓이 아닐까 걱정하여 풍수 명당을 찾는데 몰두 하였다. 이윽고 김조순을 필두로 다시 중앙정치로 복귀하고 장동김씨는 3명의 왕비를 줄지어 배출했는데, 이들의 증조부나 조부의 묘지가 여주군 대신면 초현리와 개군면 향리의 명당에 각각 묻혀 있다. 이들 무덤은 주산이 추읍산이거나 추읍산이 바라보이는 곳에 있다. 명당에 묻히면 그 산의 정기가 발응한다고 믿었다. 추읍산은 관모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관모봉 정기는 바로 벼슬에 진출하는 기운이다. 추읍산은 무언불식 중에 후손들에게 공부를 하여 정치적 헤게모니를 잡으라는 메시지였다.

남연군 묘는 2대 천자까지만 배출하는 명당이다. 풍수지형을 보면 가야산에서 연결되는 능선이 묘지 뒤에서 함몰되어 있어서 장남은 주산의 기운을 받지 못하는 명당이다. 좌청룡과 우백호가 마치 대신들이 줄지어 있는 듯 보이지만 높게 보이는 것이 흠이다. 안산은 우백호안산이다. 남연군묘는 암석이 우측과 전방으로 둘러 싸여있는 것이 특징이다. 고집불통의 자리이다.

명당의 길흉을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 두 명의 왕을 배출하고는 조선이 멸망했다는 사실 때문에 흉지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 세상에 길흉을 동반하지 않는 명당은 없다. 남연군묘가 2대 천자지지로 감응한 것에 길흉이 이미 포함되어 있다. 두 명의 왕을 배출한 것은 길한 작용이지만, 두 명밖에 배출하지 못한다는 것은 흉한 작용이기 때문이다. 하늘의 작용과 땅의 작용은 엄연히 다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땅만 보는 이도 있다. 역사에서 국가의 흥망은 천명(天命)이라고 보았다. 땅은 그 징조를 보여줄 수는 있지만, 주관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것이 헷갈리면 풍수를 그만두어야 한 다. 국가가 흥하고 나면 망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세계적으로 국가의 흥망은 200~300년의 싸이클을 가지고 있는데, 한민족은 500년의 싸이클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한 국가의 시스템이 시일이 지나면 효과는 떨어지고 말기적 폐단이 쌓이게 된다. 새로운 시대정신의 흐름에 역행한다면 폐기처분되는 것이다. 조선의 유교시스템도 그 사용기한이 끝났다. 시대의 흐름에 혁신하지 못하는 시스템은 그 운명을 다하는 것이다. 조선도 그렇게 끝난 것이었지 명당의 작용으로 그리된 것은 아니다. 어쩌면 2대 천자지지였기에 조선의 수명이 50년 더 연장되었는지도 모른다. 단지 역성혁명을 통하여 새로운 국가로 이어지지 못하고 일제에 망한 것이 수치이다. 그 당시 역성혁명의 기운이 없었다는 것은 우리의 불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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