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자성쇄신 결사의 한 단면

[취재수첩] 언론 재갈 물리고 기껏 도출한 결론이...

2013-01-10     조현성 기자

<남방주말(南方周末)>은 중국에서 가장 비판적인 매체로 꼽힌다.

이곳 기자들이 파업을 했다. 정치개혁을 촉구하는 글이 광둥성 당국으로부터 “우리는 어느 때보다 꿈에 가까이 있다”는 찬양글로 교체됐다는 이유였다. 야오천 같은 유명 연예인들이 <남방주말>을 지지했다. 야오천의 3000만 팔로워가 힘을 보탰다. 파업은 당국의 사전검열 폐지 약속과 함께 기자들의 승리로 3일 만에 끝났다.

같은 즈음인 8일 조계종 자성과쇄신추진결사추진본부(본부장 도법)는 부산 범어사에서 종단 자성ㆍ쇄신을 위한 의식개혁을 논의하는 자리를 열었다.

취재를 위해 기자가 범어사를 찾았지만 문전박대를 당했다. <불교닷컴>의 취재를 거부한다는 이유였다. 댓돌에 앉아 노트북을 펴고 문지방 너머로 들리는 소리를 주워 담아 기사를 썼다. <불교닷컴>이 지난해 6월 22일부터 줄곧 해오던 이른바 '벽치기'이다.

고우 스님이 “중도적인 사고를 하면 어느 편이든지 서로서로 인정하면서 더불어 살 수 있다”며 “중도를 통해 갈등 대립 없이 서로서로 인정해 건전한 사회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겨울 산사의 밤은 추웠다. 추위에 문전박대한 이들을 원망하려는 찰나, 스님의 다른 이야기가 들렸다.

“부처님이 어느 마을에서 크게 환대를 받고는 다른 마을로 갔습니다. 그 마을사람들은 부처님이 힘들어 그늘에 쉬려는 것도 매몰차게 대했습니다. 부처님은 그 사람들을 뒤로 하고 다시 길을 떠나면서도 얼굴을 붉히거나 성내지 않고 평화로운 모습이었습니다.
마을 장로가 미안한 마음에 부처님에게 묻기를, ‘사람들이 당신을 험하게 대하는데 어떻게 편안히 떠날 수 있습니까?’
부처님이 답하기를 “아랫마을에서 환영을 받으며 많은 선물을 주는 것도 마다하고 왔는데, 이 동네는 오자마자 내게 욕을 선물 했습니다. 좋은 것도 마다한 내가 왜 욕을 받겠습니까?”


절절 끓는 방안에서는 2600년 전 부처님 육성이 쏟아져 나왔다. 밖에서는 한 기자가 쭈그리고 앉아 떨며 노트북을 치고 있다. 문지방 안팎의 기온차 만큼이나 극적이지 않은가.

“말놀이만 해서는 안 된다. 설명만 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지침을 내세워야 한다”. “부정적인 것을 덮어 버리자는 게 아니라 인식해서 고쳐나가자는 것이 불교이다.”

이날 쏟아져 나온 말들은 기자에게 꽁꽁 언 섬돌 위에서 가지런히 놓인 고무신과 앉아 취재토록 허락해준 자비문중의 배려로 대중에게 잘 전달할 수 있었다.

2박3일 예정했던 행사는 ‘중도’와 ‘인불’ 등 의식개혁 헤게모니를 두고 펼친 신경전 탓에 9일 밤, 단 하루로 끝날 뻔 했다. “계속 하네, 마네” 씨름 끝에 그나마 다음날 반나절 이어 10일 오전 끝났다.

<남방주말>은 기약 없이 파업했다 3일 만에 승리로 끝냈다. 조계종은 3일짜리 좌담회를 열었다가 하루 만에 끝냈다. 제불조사가 누누이 강조해 온 ‘중도ㆍ인불ㆍ구세대비’를 재확인하며 도돌이표를 찍는 것으로.

<남방주말>에는 진실과 절실함이 있었다. 깨어있는 인민이 그들을 도와 중국 정부를 움직였다. 자성ㆍ쇄신을 외치는 조계종은 무엇을 갖고 있나. 아니 무엇이 남았는가.

원로들의 성향도 파악 않은 채 3일짜리 행사를 조기종영 시킨 기획 부재를 탓하고 싶지 않다. 똑같이 듣고도 아름다운(?) 기사를 남긴 다른 언론은 다원주의 사회에서 또 하나의 관점으로 이해한다.

한국불교가 진정 변화하려면 자성ㆍ쇄신이 구호인 까닭은 아닌지. 때문에 한국불교 변화를 바라는 종도들의 애종심이 공회전으로 소진되고 있지는 않은지, 그렇게 세월만 흘려보내며 종도들을 기만하는 것은 아닌지 집행부부터 자성ㆍ쇄신해야 일이 풀릴 것 같다.

<남방주말> 같은 비판기사를 써 온 <불교닷컴>이 조계종으로부터 취재거부ㆍ출입정지·광고 게재금지를 당한 지 반년이 넘었다. 최근엔 공문을 통해 종단출입언론사 등록도 취소시켰다.
 
먼 훗날, 대한불교조계종 집행부의 자성ㆍ쇄신 구호가 “우리는 어느 때보다 꿈에 가까이 있다”는 광둥성 선전부장의 글만큼이나 취급될지 모르겠다. 혹세무민을 꾀했던 그 글은 아이러니하게도 중국 언론 개혁의 꿈을 앞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