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9년 12월 세종대왕께서 신미대사께서 주석하고 계셨던 속리산 복천사를 중수 불사를 하시기 위하여 세종께서 직접 중수권선문을 남기십니다, 그리고 세종께서 1450년 세종 32년 1월 26일 신미(信眉)를 불러 침실 안으로 맞아들여 높은 예절로써 대우하시고 법사(法事)를 베풀고 신미에게 시호를 제수를 하시게 됩니다, 시호 내용은 선교종 도총섭(禪敎宗都摠攝) 밀전정법(密傳正法) 비지쌍운(悲智雙運) 우국이세(祐國利世) 원융무애(圓融無
훈민정음 창제역사에 가장 미스테리는 조선 조정은 문자 보급을 어떤 방식으로 하였는가? 하는 점입니다, 조사에 의하면 세종시대부터 세조시대까지 악 25종의 불경이 우리말로 언해되여 배포가 되여진 것으로 보여 지고 있습니다, 불경을 언문으로 번역한 이들이 바로 신미대사와 제자이신 학조스님이 주역입니다, 그리고 언문으로 번역하여 인쇄를 간인 한곳은 서울 원각사입니다, 세조는 1461년 세조 7년 6월 16일 원각사에 간경도감을 설치하여 불경을 본격적으로 언해를 하는데 간경도감을 설치하고 처음으로 언해한 불경이 능엄경으로 세조,신미가 서문
내가 법주사 대중으로 살때 탬플스테이에 참가한 일반인을 상대로 신미대사 일대기를 강의좀 하자고 여려번 부탁을 하여도 법주사 중놈들에게 퇴자를 맞고 도리어 쫏겨났다,
조선왕조실록 기록에 신미대사 관련 기록이 1446년 세종28년 5월 28일부터 1497년 연산 3년 7월17일까지 걸쳐서 7대 국왕에 걸쳐 51년간 67회 기록이 기재되여 있습니다, 또한 신미의 제자인신 학조, 학열, 수미선사와 관련된 기록 100여회 합하면 조선 5백년 불교승려 기록으로서는 파격적이라고 할 수있을 것입니다, 특히 신미대사와 관련된 첫번째 기록은 파격적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