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의 동물행태학 ‘허공에 대고 총질하기’
남‧북의 동물행태학 ‘허공에 대고 총질하기’
  • 최재천의 시사큐비즘
  • 승인 2010.02.0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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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오늘(1월 27일) 오전 북한은 백령도 인근 북방한계선(NLL) 북쪽 해상으로 해안포 수발을 발사했다. 어제 선포한 항행금지구역 내다.
우리 군도 백령도 해병부대에서 벌컨포로 대응사격을 했다.
청와대 관계자의 말이다. "양측이 허공에 대고 사격한 것이므로 아무런 인명.재산 피해는 없다."

그러면 별 볼일 없는 일이 되고 마는 셈인가.

비아냥을 용서해 달라. 남북의 이런 말초적 행동은 허공에다 대고 빈 총쏘는 것과 뭐가 다를까. 냉전의 극치다. 아니다 차라리 동물적 행동의 극치다. 이런 동물적 조건반사 앞에서 국격이고 뭐고 없다. 우리 사회의 최고의 비전이라는 ‘성장’과 ‘경제’도 없다.

 

▲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배치된 유도탄고속함 '윤영하함' (자료사진 ⓒ 해군)
콘라트 차하리아스 로렌츠(Konrad Zacharias Lorenz, 1903~1989)라는 학자가 있다. 1973년 동물행동연구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동물행동학 또는 동물행태학자로 불린다. 로렌츠는 야생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을 직접 찾아가서 연구하고, 집에 야생동물을 키우기도 하면서 동물 행동에서 본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힌 학자다.

로렌츠가 들려주는 사례다.
“두 집이 나무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붙어있었다. 양쪽 집에는 각기 사나운 개 한 마리씩을 키우고 있었다. 이 개들은 목책을 사이에 두고 매일같이 서로 으르렁대는 게 유일한 일과였다. 아침이면 얼굴이 빤히 보이는 상대방 개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짖어대며 위협을 시작했다. 그래서 목책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서로를 위협하며 끝까지 나란히 갔다가 나란히 되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폭풍우가 불어 목책 한 쪽 끝이 무너져 내렸다. 개들은 담벼락 한 부분이 무너져 내린 지도 모른 채 여느 때처럼 서로를 위협하며 달려갔다. 그러다 무너져 버린 목책에 다다랐고, 어쩔 수 없이 서로 얼굴을 맞닥뜨리게 됐다.
평소의 기세대로라면 서로 물어뜯고 싸워가며 결판을 내야 했다. 놀랍게도 싸움 대신, 두 마리의 개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는 약속이나 한 듯 옆에 멀쩡하게 서 있는 다른 목책 쪽으로 뛰어갔다. 개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목책을 따라 가면서 계속 짖고 으르렁거렸다."

개들의 목적은 현실의 싸움이 아니었다. 오로지 위협하는 일이었다. 진짜 싸우게 되면 서로에게 크나큰 손해가 온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싸움은 두려웠다. 위협은 즐거웠다. 로렌츠의 설명을 넘어 부연하자면, 주인에게 충성심을 부여주기에는 매일 짖어대는 것으로 충분했다. 목책 넘어 적절한 위협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서로에게 존재 근거였다. 싸움은 승패를 예측할 수 없기에 두려운 일이었다. 딱 거기까지가 좋았다. 거기까지가 안전하고 즐거운 일이었다. 그래서 동물이었다.

북한은 끊임없는 도발로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악의적으로 증명한다. 평화협정 체결은 의제로 던지고 6자회담 참가는 미적대면서, 군사적 도발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말하고자 하는 수준으로밖에 평가되지 않는다. 우리도 이런 논리에서 별반 자유롭지 못하다. 정치, 경제, 군사적 측면에서의 압도적 우위를 대화와 협력의 방식으로 풀어나가지 못하고 억지와 비확산이라는 논리에서 철저히 봉쇄하고 강경대응한다. 여기에다 순전히 국내용으로 우리는 지금까지의 정부와는 달리 수세국면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자세로 남북관계에 대응하고 있음을 ‘선의’로 증명하려 한다. 대국민용 자존심일 뿐이다.

북한에서 날아온 총소리는 코스피 지수가 떨어지는 소리다. 여전히 한반도는 분쟁지역임을 국내외 과시하는 소리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왜 존재할 수밖에 없는지, 왜 코리아의 국격이 그 정도일수밖에 없는지를 잘도 말해주는 소리다.

한국전쟁 60년이다. 여전히 분단국이다. 평화선도 아니고, 휴전선이다. 정전선이다. 언제라도 선고포고 없이 곧바로 전쟁에 돌입할 수 있는 지극히 불안정한 상태다. 이 불안정을 평화로운 상태로 이끌지 못하고, 서로가 바다와 공중을 향해 총질하고 있다. 물론 먼저 도발한 북한의 책임이다. 하지만 이를 달래가며 협력과 대화의 대상으로 이끌어가지 못하는 맏형은 과연 무책임인가.

남과 북은 로렌츠가 설명했다. 동물행동학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말초적이다. 본능적이다. 그럼에도 전쟁은 없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그런 동물적 본능의 수준에서일 것이다. 왜 동물행동, 동물행태, 동물적 사유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좀 더 인간답고 좀 더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인간다운 사회를 만들어내지 못하는가. 한없이 슬프고 분노가 치미는 하루다.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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