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 유예’로 악용 되는 ‘졸업 연기’
‘실업 유예’로 악용 되는 ‘졸업 연기’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09.11.30 1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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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기업들은 대부분 ‘4년제 대학’의 ‘졸업 예정자’만을 뽑습니다. 취업 재수를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는 취지이지요. 학생들은 졸업생이 되기를 두려워합니다. 실업자라는 낙인이 두렵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학생들은 최대한 ‘졸업 예정자’신분을 유지 하면서 일자리를 찾고 싶어 합니다.

학생들이 졸업을 미루고 여전히 졸업 예정자 상태에 머물 수 있는 꾀(?)를 냈습니다. (꾀라는 표현을 쓰기가 미안합니다. 일자리는 근본적으로 어른들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쉬운 방식은 한 학점 정도를 남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학기를 더 다니는 식이지요. 가장 합법적인 졸업 예정자이지요. 또 다른 방식도 있습니다. 학점은 다 취득하되 학점 이외의 졸업 취득 자격(대학마다 물론 다릅니다. 논문, 토익, 졸업 작품, 채플 등이 대표적입니다)을 이수하지 않는 방식입니다. 대학마다 약간의 특색들이 있지요. 그 특색들을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이런 방법이 학생들 사이에 퍼져나가기 시작하였으니 대학측에서도 참 난감했겠지요. 결국 제도로 합법화 시킵니다. 아예 신청을 받아주는 학교도 있습니다. 글자 그대로 ‘졸업 연기신청’입니다. 졸업 학점을 다 이수한 학생이 약간의 등록금만 내면 학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입니다. 추가학점신청제도라는 특별학점제도를 통하여 지극히 합법적으로 졸업을 연기해 주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 같습니다. 규정 학점은 다 이수하였음에도 학교에서 더 배우고 싶다고 신청하면 받아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한 과목정도만을 신청하고 그 학점에 상응하는 등록금을 납부합니다. 이렇게 되면 졸업장 수여가 연기되는 셈이지요. 신분은 여전히 재학생인 것입니다. 바로 ‘졸업 연기 제도’입니다.

물론 예전을 살았던 어른들 입장에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제도이지요. 저도 대학 강의를 갔다 이 제도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놀랍기도 하였고 호기심도 생겼습니다. 학생들이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하여서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역시 문제는 대졸자 실업입니다. 세상으로 나가기 두려운 캥거루가 거친 들판으로 나아가 실업의 대열에 합류 할 수밖에 없는 이 시대의 고통입니다.

▲ 발 디딜 틈이 없는 취업박람회장(창원=연합뉴스) 김재홍 기자 = 11일 오후 경남 창원시 사림동 창원대학교 체육관에서 2009 창원대학교 취업박람회가 열리고 있다(기사 내용과 무관). 2009.11.11 pitbull@yna.co.kr
최근 언론 보도에서 확인 한 통계입니다. 건국대 등 5개 대학의 졸업연기자 수를 조사 하였습니다. 1416명으로 지난해 790명에 비해 79% 증가 했습니다. 졸업생 대비 졸업연기자의 비율도 지난해 5.91%에서 올해 10.79%로 두 배 가까이 상승하였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올해(2009년) 직장을 구해야 하는 대학 졸업자는 55만6000명에 달하지만 이들 중 얼마나 취업에 성공할지는 미지수입니다. 졸업 연기 제도가 활용 혹은 악용 될 수밖에 없는 중대한 이유입니다. 결국 졸업 연기 제도는 ‘실업 유예’제도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요. 뻔한 소리라서 부끄럽습니다. 대학 졸업자들을 위한 좋은 일자리이지요. 하지만 그 이전에 부모세대들의 기대와 대학생들의 현실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은 대학 진학률 세계1~2위입니다. 그런데 부모들 세대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았지요. 그래서 부모 세대들은 비싼 등록금을 들여, 거기에다가 해외 어학연수까지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대학생 세대들이 이른바 삼성이나 공무원이나 교직원 등 안정적이고 번듯한 직장에 취직이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런데 지금 대학생들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대기업, 금융기관과 공기업, 공무원 등의 일자리라고 해봐야 불과 백 몇 십 만개입니다. 자연감소 빼고는 신규충원이 있을 리 만무 합니다. 여기에다 대한민국은 노동 유연성이 가장 큰 나라입니다. 비정규직이 가장 많은 나라이지요. 이른바 좋은 일자리라는 대기업 일자리는 더 이상 없습니다. 그런데 부모님들의 기대는 과거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대학생들은 현실과 부모의 기대 사이에서 괴로울 수밖에 없는 형국이지요. 온전히 어린 대학생들의 고통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나라 20대 자살률이 OECD국가 중 첫 번째이었지요.

인구는 많고, 대학생도 많고, 부모의 기대는 크나 더 이상 좋은 일자리는 만들어 지지 않고, 대한민국 일자리의 88%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에는 적절한 일자리를 찾을 수 없고, 그렇다고 벤처 정신이 충만한 형편도 못 되고, 자영업자 비중도 갈수록 줄고, 이런 현실에서 학생들이 갈 곳은 어디일까요. 막연하게 그냥 머무르는 것입니다. 졸업을 유예 하는 것입니다. 졸업 유예가 곧 실업 유예이기 때문입니다. 성장과 일자리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합니다. 직업 교육으로서 대학교육의 의미를 다시 물어야 합니다. 대학 등록금을 확실하게 낮추어서 가계의 부담을 덜어야 합니다. 저 조차도 우울한 결론입니다. 최소한 큰 소리라도 치지 말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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