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의 ‘기네스’ 경쟁, 기네스가 세계 신기록?
지자체의 ‘기네스’ 경쟁, 기네스가 세계 신기록?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09.11.11 16:0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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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선술집 술안주 감으로 시작된 기네스 북

기네스(GUINNESS) 맥주의 설립자 후손인 휴 비버경은 1951년 11월 10일 아일랜드 남동쪽 웩스포드에 위치한 슬레이니 강변에서 새 사냥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골든 플로버라는 물새가 워낙 빨라 한 마리도 사냥하지 못하고 망신만 당하게 되었다. 그날 밤 그 새가 유럽에서 가장 빠른 새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갖가지 참고 서적을 뒤적였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순간 그는 맥주회사의 경영자답게 이러한 특이한 기록을 모아 놓으면 술집에서의 술안주 감으로 기네스 맥주 판매에도 도움이 되고 출판 사업 그 자체로도 좋은 아이템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그래서 그는 1954년 9월 12일 기록광으로 널리 알려진 맥워터 (McWhirter) 쌍둥이 형제를 초청하여 책의 편집을 의뢰하였다. 그래서 탄생한 책이 기네스 맥주 회사의 이름을 딴 기네스 북 오브 월드 레코드 (The Guinness Book of Records)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예상대로 기네스 북은 현재 전세계 100여개 국가에서 1억부 가까이 팔리는 초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았다. 영국 도서관에서는 가장 많이 분실되는 책 이라는 영예? 까지 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유행은 지구의 정 반대편인 한국까지, 그것도 각 지방 자치단체에 까지 퍼져나가 기네스 신기록 열풍을 낳고 있다.

한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벌이고 있는 기네스북 신기록 경쟁

다음은 한국 지자체들이 벌이고 잇는 기네스 신기록 열풍의 일부이다.

Ⅰ. 2005년 7월 충북 괴산군은 5억이나 들여 세계 최대의 가마솥(지름 5.68m, 높이 2.2m에 둘레가 17.85m)을 제작했다. 이에 군민성금도 2 억 여원 이나 들어갔다. 이후 기네스 북에 신기록 등재를 신청했다. 그런데 하필 오스트레일리아에 이보다 더 큰 질그릇이 존재하였다. 기네스 북 편집자의 눈에 쇠로 만든 가마솥의 의미가 눈에 들어 올 리 있었겠는가. 2006년 지방선거에서 가마솥 제작을 주도하였던 군수마저 재선에 실패하였다. 5억은 녹슬고 있다. (흥미로운 후일담이 있다. 이런 비판이 처음은 아니다. 그래서 일까 최근 그 솥에 밥을 한 것이 아니라 옥수수를 한 솥 가득 삶아낸 모양이다. 당연히 군청의 홍보 대상이 되었다.)

Ⅱ. 충북 영동군은 오늘도 세계 최대 북(높이 6m, 폭 5.8m) 의 제작에 여념이 없다. 북 제작에는 예산 2억 3천 만원과 소나무 70t, 소 40마리 분의 가죽(울림판 용)이 사용될 예정이며 완성되고 나면 북의 무게는 무려 7.5t에 달하게 된다. 북이 완성되면 기네스 월드레코드에 등재를 요청할 계획이다. 소리가 목적이 아니다. 기네스 북 등재 자체가 목적인 셈이다.

▲ <사진제공 영동군청>
Ⅲ. 강원도 양구군은 중앙로에 지름 4m, 높이 2m, 영침(시계침)에만 순금 4.3kg을 사용하여 만든 7 억 원짜리 해시계를 설치 하였다. 다행스럽게도 기네스북 기록 심판관이 세계에서 가장 큰 해시계로 공식 인정하였다. 양구 사람들은 유물이 아닌 해시계를 통하여 시간을 확인 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 <사진제공 양구군청>
Ⅳ. 2009년 8월 강원 영월군은 삼굿 마을에서 옥수수 1만개를 함께 찐 행사를 벌였다. 제대로 익었는지, 제 맛은 나는지, 어떻게 나누어 먹었는지는 궁금한 일이지만 기네스 북에 등재를 신청하겠다는 것이 영월군의 방침이다.

▲ <사진제공 영월군청>
Ⅴ. 2009월 11월 1일 전남 순천시는 낙안 읍성에서 세계에서 가장 긴 1110.3m 길이의 인절미를 만들었다. 사단법인 한국 기록원에서 나와 현장을 참관하였다. 한국 기록원은 이 기록을 영국 기네스 본사로 보내 세계 신기록 인증절차를 거칠 예정이다. 이날 행사에는 2.3t의 쌀이 사용되었으며 1362명이 참가하였다.

▲ <사진제공 순천시청>
Ⅵ. 이 뿐만이 아니었다. 2009년 9월 충북 증평군은 세계 최대 삽겹살 시식행사를 벌였다. 여기에는 구이판 구입에만 1000만원, 기록 인증을 위한 영상 제작비 2000만원, 번개탄과 삼겹살을 구입하는데 4000만원이 들었고 700kg의 삼겹살이 제공되었다.
제천군 에서는 대형 한방 떡과 술병을 사용한 한방 축제를 기네스 북에 등재 하려 하였고 울주 옹기마을에서는 역시 기네스북 등재용 세계 최대의 옹기를 제작하려 하였다. 2007년 당진군은 세계 최대 규모의 떡을 만들었고 마산시는 국화 1315송이를 사용한 세계 최대의 국화 행사를 벌여 기네스 북에 등재 하려 하였다.

Ⅶ. 서울시도 이점에서는 예외 일 수 없었다. 세계 기네스 협회는 반포대교의 달빛 무지개 분수를 세계에서 가장 긴 교량분수로 확인하였다. 한달 전기요금만 1650만원이다. 이미 청계천은 영국의 어느 전문가가 세계에서 가장 긴 인공 폭포라고 촌평 한 바 있다. 이런 식 이다.

미슐랭 가이드, 일본에서의 별 장사 논란

▲ <미슐랭가이드 홈페이지 캡쳐>

미슐랭(Michelin)은 프랑스의 세계적인 타이어 회사이다.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때 미슐랭은 관광 안내책자를 만들었다. 차츰 범위를 넓혀 레스토랑 안내책자를 만들었고, 별 표시를 통해 등급을 매기기 시작하였다. 미슐랭 가이드 북의 영향력은 상상 이상이다. 우리나라 특급 호텔에도 미슐랭에서 별 등급을 받은 요리사가 직접 경영하는 체인점이 생기기도 하였다.

최근 미슐랭 가이드의 일본 판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미슐랭 가이드에 등장하는 전세계 음식점 16000여 곳 최고 등급인 별 3개 등급을 받은 레스토랑은 모두 71개, 이 중 26개는 프랑스에 있다. 그런데 별 세개 등급 식당이 일본에 7곳이나 있다. 이 점이 논란거리 이다. 이를 두고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세계적 경제 불황으로 인한 타이어 판매량 급감(9월 말 현재 전년대비 13%감소)에 따른 경영난을 탈피하기 위한 미슐랭의 영리한 마케팅 전략’이라고 평하였다. 이것이 바로 상업주의이다. 기네스북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 수 있을까.

늘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한국적 사고방식

좁은 땅에 수많은 지자체가 있다 보니 문화적 차이나 경제적 차이는 특별하지 않다. 돈, 사람과 정책은 여전히 수도권에 집중되어있다. 지방분권은 헌법 속에서 잠자고 있다. 생존을 도모하여야 하는 지방자치단체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다. 그래서 경쟁적으로 기네스 북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예산낭비는 관심 밖이다. 기네스 북 등재를 넘어선 활용 방안에 대하여는 특별한 방안도 없다. 이제는 이런 식의 기네스북 뉴스도 더 이상 뉴스가 되지 않는다. 언론들도 관심 밖이다. 그런 차원에서라면 이제, 멈출 때가 되었다.

한국인의 자폐적 중심주의에 대해서 임지현 교수 등 여러 분들이 지적해 왔다. 이 자폐적 중심주의에 분단된 반도 국가적 소심함이 결합되다 보면 때로는 엉뚱한 데에서 세계 최고를 지향 해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세계 최장, 세계 최고를 사랑하는 것은 지자체들 뿐 만이 아니다. 중앙정부도 마찬가지 이고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것을 계량화하며 특별히 숫자를 사랑하는 우리나라는 어떻게든 세계 최고와 세계 최장과 신기록을 만들어 내고 싶어한다. 수치로 표현되지 않는 삶의 질 등 에는 특별한 관심이 없다. 오로지 수치로 표현 할 수 있는 것만이 객관적이고 그 객관성만이 서열을 결정하여야 하며 그 서열의 맨 꼭대기에 대한민국이 자리하는 것이 곧 선진국이라고 착각한다. 과연 기네스 신기록이 의미 있는 신기록이고 세상에 내어 놓을 만한 기록 일까. 기네스 맥주라는 맥주회사의 상술에 이용당하는 측면은 없는 것 일 까. 솥을 만들고 북을 만들고 인절미를 만들고 해시계를 만들고 분수를 만드는 것 또한 이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내년부터는 이러한 술 안주 감의 신기록 뉴스를 덜 만났으면 좋겠다.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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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 2009-11-15 12:50:31
외관만 내세우는 우리의 모습이 참으로 한심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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