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의 서울남부지법 마은혁 판사 때리기는 이제 시리즈입니다. 기사와 사설이 ‘총’동원된 듯합니다.
지난 6일 서울남부지법 형사 5단독 마은혁 판사는 올 초 미디어법 개정안 처리를 막기 위해 국회의사당을 점거한 혐의로 약식기소된 민노당 보좌진과 당직자 12명에 대해 공소기각 판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당시 점거농성을 벌인 민주당도 있는데, 왜 민노당만 기소했느냐는 겁니다. 이것은 기소편의주의를 넘어서 공소권 남용에 해당된다고 평가한 모양입니다. 물론 검찰은 항소하겠다고 했습니다. 검찰은 자신들의 기소권이 사실상 부당 내지는 위법하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대응에 나서는 게 바른 길입니다. 그렇게 해서 피고인과 검찰, 나아가 1심 법원이 대법원의 판결을 받아볼 필요가 있겠지요. 이것이 3심제의 취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 판결을 대하는 조선일보의 태도입니다.
사법부의 근본문제로 생각한 모양입니다. 하나의 판결이 아니라 사법부의 이념문제이고, 성향문제이고, 일종의 경향문제로 바라보는 모양입니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분석하고 뿌리 뽑아야 될 문제로, 나아가 사법부 이념단체인 ‘우리법연구회’의 집단사고 문제로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조선일보는 9일자에서 사설로 다뤘습니다. 제목은 “편향적 돌출 판결이 사법 신뢰와 안정 흔든다”입니다.
“담당 판사는 법원 내 특정 성향 사조직인 우리법연구회 소속이라고 한다. 그는 작년 9월 코스콤 노조원들이 회사를 불법점거한 것이 정당한 행위라면서 벌금형 선고를 유예했고, 지난 1월엔 공무원 촛불집회 참가를 독려한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판사가 이런 전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겁니다. ‘전력’을 특별히 강조하고, ‘우리법연구회’를 강조하고 있지요. 이런 전력을 가진, 이런 소속의, 이런 판사라는 것입니다. 이런 판사의 판결을 ‘편향적 돌출판결’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다시 10일자에서는 “민노당원 공소기각한 판사 노회찬후원회 후원금 냈다”라는 기사를 크게 다뤘습니다. 노회찬 대표는 진보신당입니다. 이번 판결은 민노당원에 대한 공소기각 판결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노회찬은 곧 민노당이라는 잔영이 남아 있겠지요. 그런 점에서 제목에서 연결시키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기사 맨 마지막에서 이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노회찬 대표가 운영하는 민간연구소 후원회 밤 행사였고, 출판기념회를 겸한 자리였던 모양입니다. 마 판사는 정당원이 아니기 때문에 일단 판사의 신분에서 비롯되는 법적인 문제는 없습니다. 후원금 문제를 볼까요. ‘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권고사항으로 판사가 정치후원금을 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라는 의견 정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모저모를 한번 따져볼까요.
첫째는 법적인 문제는 없는 셈 아닌가요. 더구나 노회찬 대표는 현역의원이 아니기 때문에 노회찬 후원회가 아닙니다. 그래서 후원회에 후원금을 냈다라는 제목은 잘못된 것 아닌가요. 기사도 밝혔다시피, 노회찬 후원회가 아니라, 노회찬 대표가 대표로 있는 진보신당이 아니라, 노회찬 대표가 대표로 있는 민간연구소 후원의 밤이었다는 겁니다. 다만 이 자리가 출판기념회를 겸했다는 사실 정도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법적인 문제가 발생했는지가 불분명하지요. 그런데 기사의 중간제목은 법원이 확인 작업에 착수했다는 어마어마한 내용을 적어 놓았습니다. 기사를 읽은 사람은 당연히 불안해지겠지요.
둘째는 대법원 판례에 배치되는 판결이라는 사설의 내용입니다. 이 부분은 조선일보가 완전히 틀렸지요. 법원조직법은 대법원의 판단은 “당해 사건에 관하여 하급심을 기속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물론 선례는 되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한번 대법원 판결은 영원한 대법원 판결이 돼버리고, 이는 곧 영원한 법전이 돼버립니다. 죽은 법이 되겠지요. 법은 끊임없이 재해석 되어야 합니다. 시대의 변화와 교감해야 합니다. 세상은 변하는데 법은 법전 속에서, 혹은 판결 속에서 잠자서는 아니 되겠지요. 그래서 하급심은 끊임없이 법을 새롭게 재해석하고 고민하는 창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법원 판결이 바뀌는 계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지요.
셋째는 정치판사, 이념판사로 몰아붙이는 기사와 사설의 음험함에 대한 안타까움입니다. 마 판사나 ‘우리법연구회’ 판사들을 제외한 나머지 판사들은 증류수와 같은 정치적 소신을 가진 판사일까요. 철저히 무균질 소신을 가진 판사일까요. 정치에 대해선 아무런 생각이 없을까요. 정치는 정치가, 혹은 정무직 공무원들만의 것일까요. 판사는 판결에만 종사해야하는 걸까요. 아무런 생각이 없어야 하나요. 판결의 독립성은 철저히 유지하고 법적 양심에 충실하되, 시민의 입장에서 정치적 양심을 가지면, 이것도 안 되는 것일까요. 시민들은 생업에만 종사하고,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겨야 하는 걸까요. 그 선을 넘어서면 안 되는 건가요. 시민은 주권자가 될 수 없는 건가요. 판사는 시민이 돼서는 아니 되나요. 구름 위의 신선이 되어야만 하는 건가요. 판사는 이런 시시콜콜한(?) 문제를 뛰어넘는 초정파적, 초교파적, 초엘리트가 되어야만 하는 건가요.
문제는 숨어 있는 정치적 소신이 더 문제입니다. 정치적 양심을 사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정치적 양심을 표현하지 않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또 다른 방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위험할까요. 의도적으로 은폐하는 정치적 소신, 이것이 더 위험하지 않나요.
물론 판사들이 정치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최소한의 시민적 양식의 차원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모든 것을 ‘우리법연구회’의 문제로 매도하는 태도, 이념지향으로 몰아붙이는 태도, 판결 하나하나에 색칠하는 태도, 그래서 판사 개개인의 전력과 양심과 정치적 성향을 평가하고, 재단하고, 낙인찍는 태도를 지적하는 겁니다.
모든 판사들의 생각이 똑같아야 된다는 사고를 경계합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판사의 정치적 중립은 유지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판결에 깃들 수밖에 없는 법적 해석의 다양성을 거세하여 획일적 법 해석으로 나라를 몰고 가려는 사고는 일종의 법학적 전체주의입니다. 이런 사회는 법이 도리어 필요 없습니다. 집권자의 말 한 마디로 유지되던 과거, 짐이 곧 국가고, 짐이 곧 법이던 시대로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지금 그런 사회를 살고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이 다르면 생각도 다르고, 내 생각이 중요하면 다른 사람의 생각도 중요하고, 그래서 서로 조화로운 사회, 사상과 생각이 경쟁하는 사회를 유지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지금의 마 판사에 대한 기사와 사설은 다름 아닌 현대판 매카시즘으로까지 비춰지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문제는 다른 사람의 이념을 평가하고 비난하기 위해 자기 자신의 이념적 지향을 혼동해버리는 태도입니다. 자신들 스스로 이념의 포로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색깔론의 색맹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빨간 안경을 벗지 못합니다. 다양성을 결코 전제하지 못합니다. 획일성만을 사랑합니다. 이분법입니다. 흑백논리입니다. 공화주의의 싹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온 세상은 단일사고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져야 합니다. 사람 머릿속은 똑같아야 합니다. 내 생각이 곧 모든 사람의 생각이어야 합니다.
이런 태도, 이런 사고방식이야말로 국가보안법의 철저한 희생양이라는 증거입니다. 희생양은 마 판사가 아닙니다. 자신이 어떤 색깔의 안경을 끼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안경을 다른 사람이 벗겨주기 전 까지는 결코 알지 못합니다.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의 문제로 문제를 규정해버립니다.
미국은 정당 간판을 걸고 판사가 출마하고, 판사의 정치적 색깔을 알고도 판사를 선출하는 나라입니다. 왜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왜 우리는 이런 일이 불가능할까요. 공사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법적 양심과 개인적 양심, 시민적 양심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연고주의가 모든 일을 해결하는 근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로지 줄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그렇게 살아갈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마 판사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이 문제이지요. 그들만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 오늘(11일)자 조선일보 사설 제목은 "어느 정치인 후원회에 참석한 어느 판사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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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11일자)자 중앙일보 사설 제목은 이렇습니다. "법관의 판결에 이념 개입을 우려한다."
마 판사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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