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안 가면 3년 더 공부한다’는 병무청장
‘군대 안 가면 3년 더 공부한다’는 병무청장
  • 이혜조 기자
  • 승인 2009.10.30 18: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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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로 인해 군을 면제 받은 윤석용 의원(한나라당)이 물었다. "나는 장애인이어서 군 면제를 받았는데, 가고 싶어도 군에 못 가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은 어떻게 하느냐." 박종달 병무청장이 답했다. "군대에 안 간 사람은 3년 동안 더 공부하지 않느냐."

오늘 열린 국회 여성위 국정감사에서다.
한심한 수준을 넘어섰다. 안타까운 일이다. 아니다 슬픈 일이다.
왜냐고. 

 

▲ 박종달 병무청장 답변(서울=연합뉴스) 성연재기자 = 박종달 병무청장이 28일 오전 국회 여성위의 여성부 와 병무청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2009.10.28polpori@yna.co.kr
천박한 인권의식의 발로

첫째, 병무청장의 천박한 인권의식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래서 고용쿼터 등 일부 장애인 보호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것이 보상이라고 했다. 나아가 군대를 가지 않은 3년 동안 더 공부할 수 있으니 그 이상의 충분한 보상이 보호라고 했다. 도대체 기초를 가늠하기 힘든 이런 인권의식에 무슨 식으로 항변을 해야 하나. 장애인을 보호하는 우리 사회의 기본 취지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어린이, 노인, 여성, 장애인, 경제적 빈곤자 등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군 복무 중인 젊은 청년들에 대해서도 이것과 똑같은 시각에서 보상하고 예우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같은 반열의 같은 보호를 필요로 하는 일일까. 어떻게 동등비교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었을까.

둘째, 징병을 책임지고 있는 병무청장의 기본 업무를 부정하자는 건 아니다. 병력의 안정적 충원과 대우라는 기본 목적에 충실하고자 하는 청장의 업무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기초부터 틀렸다.

사병 군 복무기간은 22개월

2009년 5월 24일부터 육군과 해병의 군 복무기간은 22개월이다. 해군은 지난 3월부터 24개월이고, 공군은 지난 2월부터 25개월이다. 트집 잡자는 게 아니다. 사병의 경우 이제 평균 2년이 되지 않는 셈이다. 2년 동안 썩는 셈으로 쳐야 하나. 국방부와 병무행정가들은 지금까지 공부하는 군대, 인간적인 군대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기초적인 인식과 사실에서부터 그간의 노력을 철저히 무효화시키고 있다.

여자 때문에 남자가 밀려나고 있다?

셋째, 얼마 전에도 블로그에 적었지만 우리 사회의 남성의식은 대단히 후진적이다. 계층의식이나 계급의식은 오간데 없고 성에 기초한 젠더 의식만 자리 잡았다. 가부장제의 수복을 꿈꾼다. 최근 여성의 사회 진출로 인해 결국 남성들의 사회적 영역이 밀려나고 있다는 피해의식에 젖어 있는 건 아닌지 염려될 때가 있다. 공정한 기회의 균등이라는 차원을 넘어 여성들의 과도한 진출로, 혹은 여성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우대조치로 남성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그런 안타까운 의식이 먹구름처럼 떠돌고 있는 건 아닌지 염려될 때가 있다. 남성의 경쟁력을 여성과의 경쟁력으로만 비교하고 그 원인을 결국 여성에 대한 직간접적 사회적 우대조치에서 찾아낸다.

과연 여성이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공정한 기회가 부여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사회적 우대조치가 과도하게 부여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사실상 신자유주의의 사회경제이론을 이끌어 온 스위스 소재 세계경제포럼(WEF)이 27일 발표한 '2009 글로벌 성(性) 격차 보고서'가 있다. 오늘 자로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여성 순위 134개국 중 115위

보고서는 한국의 올해 성 평등 순위를 전체 134개국 가운데 115위로 평가했다. 한마디로 꼴등이다. G20라고 광고하고, 세계 십 몇 대 경제대국이라고 얘기하고 OECD 국가라고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현 주소다. 나라의 품격, 선진성 여부는 경제에 있지 않다. 공정한 사회의 기회 여부에 있다. 선진국이라고 입을 열어서는 안 된다. 입을 꼭 닫고 부끄러워해야 한다.

일자리와 관련된 부분별 순위인 경제에 대한 참여ㆍ기회 부문에서 113위를 기록했다.
임금 평등에서는 109위다. 여성의 정부 각료 진출은 124위다.

좋다. 병무청장의 논지를 받아들여 여성이 공직사회에 진출했다고 하자. 그 여성이 고위 관료직에 이르기까지 그 경쟁은 과연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을까. 우리 공무원 사회가 과연 이 점에 대해 자신 있다고 말 할 수 있을까. (한 가지만 더 얘기하자면 왜 각종 고시제도에는 가산점을 부여하지 않았을까. 왜 하필 7급, 9급 공무원 시험에만 부여했던 것일까. 회사 입사시험에는 왜 하지 않았을까. 각종 자격시험에는 왜 하지 않았을까. 군필자 우대 조치가 입사의 전제조건이 되던 시절이 불과 얼마 전이었는데, 그 때는 왜 가만히 있었을까.)

여성 대 남성, 이번엔 남성 대 장애인

지난 번 글에서 헌법재판소의 지적을 인용하며 군 가산점 문제를 남성 대 여성이라는 대립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데 대해 강력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엉뚱하게도 병무청장은 군대에 갈 수 있는 신체등급을 가진 사람과 군대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장애우와 동등 비교해버렸다. 군대에 갈 수 없는 것 자체가 도리어 이득이라고 가치를 부여했다.

인권단체들이 항의 방문 하겠다고 나서는 등 사회적 파문이 일자, 발언 후 두 시간 뒤쯤에야 병무청장은 사과문을 내놓았다. 하지만 사과 또한 지극히 궤변에 가깝다.
"모든 장애인을 지칭한 것은 아니고, 고시 공부를 하는 장애인은 2~3년 더 공부한다는 취지였다"고 했다. 고시에 대해서는 가산점이 없었기 때문에 구태여 이 점을 끌어들여 억지 변명을 만들어낸 것이다.

문제는 시민권 의식, 기본권 의식, 인권 의식이었다. 결코 깨달을 것 같지 않다.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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