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 한옥 살리려다 실명당한 데이비드 킬번
북촌 한옥 살리려다 실명당한 데이비드 킬번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09.10.19 12: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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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데이비드 킬번(David Kilburn)은 영국인입니다. 1984년경부터 일본경제 관련 전문기자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1986년, 킬번은 영국에서 한국인 최금옥을 만나 운명처럼 사랑에 빠집니다. 다음 해 두 사람은 결혼합니다.

킬번은 부인 나라인 한국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결혼하던 해 서울에 옵니다. 그해 87년은 6월 항쟁이 있던 해입니다. 킬번은 당시 시청 앞 플라자호텔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규모 시위와 경찰과 최루탄이 한국의 첫 경험이었습니다.

1988년 킬번은 한옥을 처음 만나게 됩니다. 킬번은 영국 런던의 Covent Garden 보존 운동에 나섰던 예술가 단체의 회원출신입니다. 1960년 당시 영국 정부는 코벤트 가든을 재개발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킬번은 이 때 동료예술가들과 손을 잡고 보존운동에 나섭니다. 지금 이 지역은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명소입니다. 로얄오페라 하우스가 있는 곳이고, 예전의 My fair Lady영화의 촬영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런 경험을 가진 킬번이 한옥을 보고 첫눈에 반했습니다. 가회동 31번지 북촌 마을에 한옥을 사서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당시 북촌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들의 한옥을 팔고 싶어했습니다. 서로 사달라고 난리법석이었습니다. 심지어 정해진 가격조차 없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북촌 원주민들은 한옥 보존으로 인해 늘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팔고 나가는 것만이 도리어 재산권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킬번 부부는 한국의 어느 누구보다도 한옥을 사랑하고 가꾸기 시작합니다. 끊임없이 한옥을 가꾸고 쓸고 닦아가며 사람들을 초청해 한옥을 홍보하곤 합니다.

▲ 킬번 부부의 가회동 저택 전경 <가회동닷컴 홈페이지 캡쳐>
홈페이지를 만들어 한옥과 한국을 널리 알리기 위해 온갖 정성을 쏟았던 가장 행복했던 시절들이었습니다.

2001년 당시 고건 시장은 "북촌가꾸기기본계획"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2002년 이명박 시장 들어 844억원에 이르는 예산이 집행되기 시작합니다. 가회동 31번지 북촌 한옥마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시작됩니다. ‘한옥아끼기모임(한아모)’이 결성됩니다. 이곳에도 투기바람이 불어닥칩니다. 한옥을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한옥이 개축되고 증축되면서 본래의 한옥은 서서히 사라져갑니다. 투자자의 이익을 위해 본래의 한옥이 멸실되어 갑니다. 근린생활시설로 바뀌어갑니다. 이런 현실은 킬번 부부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 킬번 부부는 장애물이 되고 맙니다. 본래적 의미의 한옥을 지키려는 한옥지킴이 킬번 부부와 한옥의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투기세력 앞에 노출되고 마는 또 다른 한옥지킴이 간에 갈등이 시작됩니다. 행정부와 시장은 어느 편이겠습니까.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킬번 부부는 www.kahoidong.com을 만들어 운영하기 시작합니다.
다음은 킬번의 부인되는 제이드 킬번(한국명 최금옥)의 메일입니다. 제이드 킬번의 동의 하에 제게 보내온 메일을 요약하여 인용합니다.

“2004년 무렵에는 여기 31번지의 원주민들도 나와 거의 같은 경험을 가지고 거의 다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 3명 달랑 남았습니다.

부동산 투기 목적으로 국민의 세금으로 ‘등록한옥’을 빙자한 후 원형 한옥보다 4배의 크기로 집을 한 껏 늘려놓고, 근린생활시설로 용도 변경 후, 이상한 문화를 침투시키려는 공작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킬번 부부와 친정어머니가 살고 있었습니다. 비극은 어머니에게 맨 처음 다가옵니다. 어떻게든 킬번 부부를 내보내야만 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 킬번 부부는 완고하고 고루한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때로는 눈에 보이는 압력과 간접적인 폭력이 투사됩니다.
“늘 조용히 사시는 어머니가 실지 주인인 줄 알고 병들고 나이든 늙은 어머니는 제일 먼저 이 사건의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돌아가셨습니다. (물리적 폭력,집단 이지매, 정신적고통)”

이런 비극 속에서도 킬번 부부는 본래의 한옥을 지키기 위해 저항하고 투쟁합니다. 하지만 법이라는 이름으로 킬번은 가해자가 되고맙니다. 피해자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에 이은 충격이었습니다.
“킬번씨는 기가 막혀서 그만 심장이 멎는 증상을 일으키고... 그만 실명을 하였습니다. 지금은 장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한 사람 제이드 킬번 또한 비극적 상황을 맞이합니다.
“나는, 암이 걸렸습니다.”

▲ 가회동닷컴 홈페이지 화면 캡쳐
가회동 31번지 북촌 한옥마을에서 옛 모습 그대로의 한옥을 지키려했던 킬번 가정에 헤어나기 힘든 불행이 몰아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비극 속에서도 킬번 부부는 좌절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죽으면 안 되겠지요. 나는 건강을 회복하였습니다. 작년 10월 1일 수술을 하고 거의 70%에 가까운 정상인으로 돌아왔습니다.“

킬번 부부는 일본에 체류 중입니다. 항암치료와 눈 수술 등의 이유입니다. 이 중 제이드 킬번이 한국으로 돌아오는 여행을 할 수 있을 만큼 건강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10월 17일 한국으로 일시 돌아옵니다.
항암치료와 실명치료는 계속 중이고, 킬번 부부를 둘러싼 사건은 여전히 법원에 계속 중입니다. 1심, 2심 모두 패배했습니다. 불복했습니다. 그래서 대법원 2009다 62769 건물 등 철거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소송은 진행 중입니다.

그럼에도 킬번 부부는 좌절하지 않습니다. 한옥을 지키고 싶어 합니다. 그것만이 진정한 한옥 사랑이요, 한국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옥의 살림집은 폐쇄적인 온돌방과 개방적인 마루가 결합된 구조입니다. 온돌방은 북방에서, 마루깐 대청은 남방의 전통입니다. 이 두 개의 상반된 구조가 서로 개성을 존중하며 만났습니다. 북방문화와 남방문화의 연합입니다. 한반도의 특성이 정확히 드러난 셈입니다(북방사람들은 지독하게 추운 북쪽에서 움집 바닥에 고래 켜고 난방하면서 생겼고, 마루는 고온다습한 남방에서 시원하게 살 수 있는 높은 나무에 집을 지으면서 생겼습니다. 신영훈, 우리한옥, 현암사).

물론 억울합니다. 그리고 억울해 합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억울함이 다시는 되풀이 돼서는 안된다는 것이 킬번 부부의 생각입니다. 제이드 킬번의 편지입니다.
“우리들 같이 살다가 억울하게 당하는(사실상 대한민국의 모든 이 100% 라고 봅니다) 사람들이 한 사람이라도 적어질 수 있다면 하는 소망으로 아직도 이 일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킬번 부부의 건강과 한옥의 안녕을 기원합니다.

 

 


언젠가 제가 블로그에 “바돌로뮤씨 ‘한옥지키기 소송’과 오세훈 시장의 이중플레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제이드 킬번씨께서 메일을 보내주셨습니다. 메일을 보고 심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혼자만의 편지로 남겨 두기에는 한없이 억울했습니다. 제이드 킬번씨께 동의를 구했습니다. 읽어준 것 만으로도 한옥에 대해 관심을 가져 준 것 만으로도 고맙다고 했습니다. 이 글은 순전히 그 분의 여러 통의 메일을 재구성한 데 불과합니다. 다시 한번 건강을 기원합니다.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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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 2009-11-15 12:57:12
글을 읽으니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사람사는 세상이 다시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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