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회의원·본사주지, 대표성 잃은지 오래
종회의원·본사주지, 대표성 잃은지 오래
  • 윤남진
  • 승인 2009.05.12 17:52
  • 댓글 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4년체제 15년, 종교적 권위와 대중공의는 어떻게 붕괴되었나

[필자 주] 제2편의 글을 탈고하면서 언론사측에 보낸 메일에 '...글쓰기가 좀 겁났기 때문에 이런저런 대비를 하느라 그랬다(늦어졌다)는 것입니다. 대비가 많은 글은 글의 힘도 없고 신선한 기상도 당연히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라고 썼습니다. 솔직히 반론에 대한 답변의 근거들을 감안한 글은 대체적으로 직설적이고 간명하게 써지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정화운동에서부터 94년 '개혁회의'까지, 그리고 그 이후 10여년의 세월까지를 단편의 글에 포괄해야한다는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불교근현대사에 대한 세부지식 없이도, 교계 인터넷언론의 정보이용자라면 대부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다시 보론 성격의 글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참고바랍니다.  

제가 두 번째 글에서 개혁의 필요성과 유익성에 대한 한 정치사상가의 언명을 인용한 바 있습니다.

'개혁'은 반드시 그 본보기가 있습니다. 그것이 단지 명분을 세우기 위한 주장으로 그칠 경우에도 말입니다. 우리에게 친근한 예를 들자면, 공자는 정치개혁을 논할 때에 요순시대나 주나라를 전거로 삼았고, 맹자도 이에 근거하여 임금도 갈아치울 수 있다는 군주제 시대에 가히 혁명적인 사상이라 할 수 있는 '역명론(易命論_천명을 바꿈)'을 설파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공동체든 '오래 유지'되는 데는, 그 출발지점에서 발휘된 '무언가 우수한 점'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불교공동체를 '오래 유지'되게 해온, 그 출발지점에서의 '무언가 우수한 점'이 무엇일까? 그리고 한국불교의 근현대 지도자들은 그것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였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의문을 공동체의 비전과 유지운영에 관련된 그들의 행위가 어떤 것이었는지 살펴보는 것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풀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 단면을 봉암사 결사와 정화운동의 표어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핵심은 부처님 당시의 불교공동체(출가공동체)의 본래 자리로 돌아가서 '종교적 권위'를 확립해야 하겠다는 것이 하나의 축이었다고 봅니다. 그 극명한 표현이 '부처님 법대로', '불법에 대처(帶妻)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교공동체의 유지 운영과 관련된 중요한 출발적인 전통이 또 하나 있지요. 그것은 직접민주주의에 가까운 '대중공의의 전통', 한국불교에서는 '대중공사'의 전통입니다.

전자는 종교(수행)적이고 정신적인 권위의 영역이라면, 후자는 공동체(조직)의 운영면에서의 현실적 권위(즉, 사회정치적 정당성)를 형성하는 기초를 이룹니다. 이 둘이 서로 짝이 되어서 불교공동체의 태동기에서부터 '무언가 우수한 것'으로 역할을 했다고 인식하고 이것으로 돌아가자는 것, 혹은 그런 명분이 한국불교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개혁의 큰 프레임(틀)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이 둘의 관계가 동전의 양면과 같은 필수조건으로 인식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제가 추측하는 것은 출가공동체의 종교적 권위회복을 위한 정화운동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그 전에는 (정화운동 주체인 비구측에서) 경험해 보지 못했던 문제가 발생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새로운 문제는 대체적으로 공동체의 운영(교단운영_사판의 영역)에 관계된 것들입니다.
 
공동체의 유지발전을 위한 개혁의 한 축으로서 '종교(수행)적이고 정신적인 권위'를 재건하기 위한 개혁(정화)은 성공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상징적 정점이 성철스님 종정 재임시기(1993년 입적)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종교적 권위의 영역은 아쉽게도 현실 공동체 운영의(교단운영) 영역으로부터 의식적으로 분리되고, 신비화되기까지 하는 방향에서 수립된 권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 공동체 운영의 영역에 대해서는 일정한 침묵 혹은 묵인을 전제로 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도 그나마 참선수행에 전념하는 (개인거처가 없는) 선방수좌들이 어느 절에서나 마음 편히 걸망을 풀어도 될 정도의 권위가 있었고, 서암스님의 주석이후 정화결사의 근원도량이라고 할 수 있는 봉암사가 전국선원의 중심을 잡고 현재 종립선원으로 공식적으로 제도화된 지위를 누리게 된 것 등은 그런 한 측면의 성공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두 번의 승려대회와 종정불신임 즉, 94년 개혁회의의 출범과정에서 서암종정스님에 대한 불신임과 98년 종단사태에 월하종정스님에 대한 불신임 등은 '대중공의'라는 교단운영의 현실적 권위가 수반(동시충족)되지 않은 '종교(수행)적, 정신적 권위'가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것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대중공의의 확장'이 진행되었고 비제도화된 영역이었던 '종교(수행)적 권위의 영역조차도 제도화'한 94년 체제가 공고히 수립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신비롭기조차 했던 종교(수행)적 권위의 영역이 94년 체제의 공고화 과정에서 어떻게 제도화 되었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종법 상에 자주 등장하는 '몇 안거 이상 성만'(?)이라는 자격요건입니다. 이는 과거 선원수좌들에 의해 자율적으로 유지되던 '방함록'(안거동참 대중에 대한 기록)에 부여된 제도화된 권위입니다. 이것이 94년 체제의 핵심적 요소을 보여주는 극명한 예입니다. 정신적 권위도 제도화되어야 현실적 권위로 인정된다는 것이지요.

최근에는 현 총무원장체제에서 가장 인상 깊은 사업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포살과 결계에 관한 법'의 제정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법의 제정이 원로의원 출신의 총무원장이기 때문에 생각할 수 있었던 전통적 방식, 즉 종교(수행)적 방식의 권위의 확립을 제도적으로 시도한 마지막 노력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 제도가 조만간 사문화 될 것이라는 것은 이미 입법단계에서 예고되었습니다.

이 법의 제정을 위한 토론의 현장인 중앙종회 회의장을 민감한 감각으로 참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공식적 발언의 형식이 아닌, 이른바 중앙종회의 다선의원들 사이에서 두런거리듯 오가는 말들은 '선방 안거'라는 것의 권위가 어떻게 희화화-웃음거리가-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최근 교구본사주지협의회에서도 사찰고유 결계록을 인정해 달라는 결의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마치 중앙종회에서 이 법의 통과를 위한 토론 당시 선방의 안거와 자체의 방함록이 이 법에 의한 결계록으로 인정되듯이, 포교에 종사하는 주지직 수행기간도 안거로 인정해야 하고 사찰자체의 결계록이나 포살도 모두 인정되어야 한다는 식의 두런거림이 재현된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94년 체제는 '대중공의의 확대'를 명분이자 초석으로 삼고 있는데, 그 골격이 중앙종회의원 및 교구본사주지 직선제입니다. 한마디로 대중공의의 확장을 권위의 토대로 삼은 개혁인 것입니다. 물론 총무원장 선출 방법을 선거인단 선거로 바꾼 것도 있지만 이는 포괄적으로 '중앙종회의원과 교구본사주지의 권한과 통제'에서 벗어나지 않는 수준에서 설계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특별히 의미를 둘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두 중추적인 대의 혹은 대행 기구(기관)의 대표성이 현저히 훼손 또는 상실되었습니다. 소수 특권화 되었고 귀족화되었습니다. 이것은 양 측면에서 나타납니다. 일 측면은 그들의 선출과정에서 그리고 또 한 측면의 그들의 활동(대변)의 내용에서 나타납니다. 이들이 어떻게 선출되는가, 아니 최근에 그들이 어떻게 선출되게 되었는가 하는 점을 분석해 보아야 합니다. 선출 측면에서는 문중 혹은 문벌 내의 귀족화, 특권화 된 소수 그룹에 의해 분배되고 결정되는 경향이 더욱 짙어졌습니다. 활동 측면에서 포괄적 공동체의 이해를 대변하는 활동 또는 정책, 입법은 실종되었고 대부분 이미 귀족화되고 특권화된 소수집단 내부의 권력분배와 밀접히 관련된 이른바 '종단정치적 논의'들만 무성하게 되었습니다. 소수정치의 과잉에 의한 대중정치의 상실입니다.

문벌과 금권의 대표성이 지속적으로 강화되는 현실 속에서 대중의 각자도생의 외침이 대표적으로 사설사암의 증가로 나타납니다. 1998년 2월 현재 전체 1,992개 사찰 중 공찰이 1,106개이고 사설사암이 886개였는데, 2007년에 이르러는 전체사찰 2,444개 중에서 공찰이 911개(참고:전통사찰703개+관람료사찰 72개), 사설사암이 1,533개라고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제 아직 비구계를 받지 않은 강원의 사미(니)들조차 '토굴'(개인주택) 장만의 광풍이 불고 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소문이 아닙니다.

중앙승가대학이나 동국대학교에 입학하는 기본교육 입교자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반면, 교구본사에서 관장하고 있는 승가대학(전통강원)의 재학생 수는 꾸준히 줄고 있습니다. 아니 더 나아가 사회적 저출산 고령화 문제와 결부되어 출가의 양과 질 자체가 현저히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실에 대해 교구본사주지 혹은 중앙종회가 제출할 수 있는 정책의 수준이란 그저 전통강원 지망생이 한 곳으로 몰리지 않게 상한선을 두자, 지망생이 적더라도 강원을 폐쇄하지 말자라는 정도의 것입니다. 일반 사회적 개념에서 볼 때, 어느 조직체의 지도적인 의결집행기관이 중요한 인적자산 문제에 대한 대책이 겨우 이 정도 수준이라면 그 시스템은 이미 작동불능상태가 되었다고 단언하고 대개는 배가 난파하기 전에 떠날 궁리를 할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94년 체제의 공고화로 이런 경향, 문벌_귀족화된 중앙종회의원과 교구본사주지 중심의 운영체계를 전면적으로 혁파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기초부터 새롭게 건설하는 일이 불가능한 상태이며, 또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대중의 의식상태입니다.
미국의 오마바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람 에마뉴엘이 쓴 <더 플랜>이란 책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지도자가 여러분이 자기 몫을 하도록 요구하지 않는다면, 그들도 자기 몫을 하지 않고 있는 겁니다'(더 플랜, 85쪽)라고요.

현 체제의 지도적인 기구(기관)의 성원들이 공동체에 대한 비전, 공동체를 위협하는 다양한 환경들에 대한 응전의 방침이 없기 때문에, 아니 세울 필요성을 그들이 느끼지 않기 때문에, 더 자세히 말하자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그들이 더 많기 때문에, 그들이 대중에게 요구하는 것도 거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마디로 대중도 편한 상태로 됩니다. 물론 기본교육기관을 졸업하고 비구(니)계를 받고 나면 말입니다. 이제 대중의 자발적 결사도 열정일 잃은 지 오랩니다. 이것은 94년 체제가 재야의 자발적 결사의 생명력까지 모두 제도 내화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94년 체제가 직할교구 등 문벌_(금권)귀족의 지배력이 약한 곳에서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현재의 문벌_(금권)귀족 세력 또한 통섭하면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어찌보면 94년 체제는 그 운영과정에서 94년 체제의 가장 강력한 반대자 속에서 오히려 94년 체제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를 확보하고 이들을 동참시키는데 게을렀고, 오히려 94년 이전의 체제에서(조차) 악으로 판단하여 억누르고 있던 세력을 우군으로 화려하게 생환시킴으로써 94년 체제의 무력화를 자초했다는 비판을 상기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 다음에는 새로운 체제를 부르는 대외적 환경의 변화에 대해 쓰고자 합니다. 국가권력(정치)와 불교와의 관계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1994년 이전 '불교재산관리법의 폐지' 주장에서 2008년 '종교차별금지와 정교분리'라는 주장에 이른 것입니다. 저는 이 변화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민주정치발전에 대단히 중요한 변화라고 판단합니다. 이에 대한 불교계의 응전, 이 응전을 위한 교단체제의 변화 방향에 대해 쓰겠습니다.

   

윤남진_불교시사 블로거  

전국불교운동연합, 깨달음의 사회화운동, 조계종총무원과 포교원 등에서  일했다. 현재 참여불교재가연대 등에서 종교 및 NGO 분야로 특화된 사회통계 및 여론의 조사/분석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이 기사를 응원합니다." 불교닷컴 자발적 유료화 신청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4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사천왕 2009-06-20 15:38:30
법당님 말씀처럼 투표권 있는 스님들 지금 있는 자리에서 모든거 털어버릴 각오 하고 투표에 임하셔야 앞으로 불교가 삽니다 지금까지 부처님밥 먹고 살았다면 밥값합시다

법당 2009-06-11 17:00:27
정말 출가에정신을 가지고 욕심버리고 불교를 살려 불국토를 만드는데 일조 합시다 투표권있는 스님들 제발 정신좀 차리세요 돈선거 압력 아닌진정 이시대에 어느스님이 원장이 되야 하는지 신중합시다

법조 2009-05-21 09:59:45
한마디 한마디가 많은 생각을 던져주네요.
조직의 건전성은 반성과 변화에 있고, 이의 주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현 종단은 반성과 변화가 부족하고, 의식이 살아있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변화를 요구하는 여망이 점점 커지고 잇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번 총무원장 선거가 그 전환점이 되었으면 하는 개인적 바램입니다만, 그 역시 바램에 그칠 것이란 자포자기한 심정도 있습니다. 이래저래 답답함만이...

종도 2009-05-19 10:51:29
종단이 지금 구조로는 한계에 도달한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뭔가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면 실망과 혼란에 빠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번 총무원장선거에서 이 점을 잘 살펴야 할 것입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1길 16 대형빌딩 4층
  • 대표전화 : (02) 734-7336
  • 팩스 : (02) 6280-255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만
  • 대표 : 이석만
  • 사업자번호 : 101-11-47022
  • 법인명 : 불교닷컴
  • 제호 : 불교닷컴
  • 등록번호 : 서울, 아05082
  • 등록일 : 2007-09-17
  • 발행일 : 2006-01-21
  • 발행인 : 이석만
  • 편집인 : 이석만
  • 불교닷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불교닷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san2580@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