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 상실, 종단정치 실종의 한 단면
방향 상실, 종단정치 실종의 한 단면
  • 윤남진
  • 승인 2009.04.29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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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과 비전을 담는 새로운 시스템의 설계➁

[주] 오늘은 94년 4․10 승려대회가 열린 날이다. 1994년 최초 개혁입법으로 제도화된 총무원장 선거. 이 제도로 5명의 총무원장을 뽑았고, 금년에 세 번째로 정상 임기를 마치는 총무원장을 보내고, 여섯 번째 총무원장을 뽑는다. 이번 선거도 몇몇 동아리지은 본사들과 금권에 기반을 둔한 유력 인사들의 결합방식에 따라 그럭저럭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불교가 처한 내적 역량의 빈곤과 외부환경에의 부적응 현상을 극복할 획기적인 시스템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인식도 잠재적이지만 대중의 감각적 요구로 표출되고 있다. 이에 '94년 시스템의 성과와 한계'를 짚어보고, 교단(불교계)을 둘러싼 안팎의 변화된 환경을 분석한 후, '94년을 넘는 새로운 시스템'을 거칠게나마 설계해 보는, 일종의 '교단의 정치적 미래담론'을 열어가기 위한 제언의 형식으로 본 글을 연재하고자 한다. 글의 순서는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계획하고 있으나 다소의 순서나 제목의 변경이 있을 수 있다.  

 ①09년 3월의 실패_단순한 선거법 개정문제가 아니다.
 ②94년 시스템_그 역사적 사명의 종언
 ③'특수한', 때로는 '소수자'로서의 한국불교
 ④새로운 시스템의 기초_'다양성'과 '보편성'의 담지
 ⑤09년 선거와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

94년 체제, 그 역사적 존재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거니와 많은 이들이 그에 대한 대대적인 쇄신을 아직 생각지 않고 있는 듯한 94년 체제에 대해, 개혁회의의 출범으로부터 십여 년의 기간을 압축적으로 평가하고, 이를 통해 94년 체제의 역사적 자리를 찾아 위치 짓는 것이 간단치는 않은 일임에 분명하다. 이런 어려움에 닥쳤을 때에 우리가 쓸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이고도 단순한 방법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역사 또는 역사 속의 선구자들의 지침들 중 하나를 선택하고 재해석하여 현실의 판단에 적용해 보는 것이다.

물론 여러 역사적 사실들과 많은 선구자들과 숱한 지침들과 다양한 평가들 중에 유독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지만, 인용된 역사적 사실과 준거들도 그 자체로서 필자의 입장과 관점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므로 오히려 글의 주장을 선명히 드러내 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필자는 이 연재 글을 집필하기 위해 '정치'에 관한 고금의 서적들을 주마간산 격으로나마 훑어보고 있다. 왜냐하면 교단의 운영과 그의 사회적 작용에 대한 문제는 본질적으로 정치로 드러나는(顯現되는) 문제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런 취지에서 이번 주제를 풀어가기 위해 어느 유력한 근대 정치사상가의 다음과 같은 글을 인용하고자 한다.
   
  '종교나 국가를 오래 유지하고 싶으면, 몇 번이고 본래 모습으로 복귀할 필요가 있다. 개혁의 필요성은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유익한 까닭은 어떤 형태든 공동체인 이상 초창기에는 반드시 무언가 우수한 점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_마키아벨리,「정략론」 
 
개혁은 항상, (그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바인 근본이) 역사적인 것이든 사상적인 것이든 그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른바 '개혁'이 왜 필요하고 유익한 것인지에 대해 이토록 간명한 정의는 없을 것 같다. 우리는 이 정의에 대입하여 94년도의 그것이 과연 어떤 의미에서 '개혁'이었으며, 과거의 어떤 '본래 모습이라고 생각되는 것들'과 잇닿아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그러한 종류의 발견 중에서 가장 확연한 것은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봉암사 결사의 서약이며, '불법에 대처(帶妻)없다'는 강렬한 정화운동의 표어이다.
 
정화운동은 교단의 근대적 구상, 근대적 개혁의 선명한 초판본이며, 94년 '개혁회의'에 의해 제도화된 체제는 이 근대적 구상의 최종혁신판이다. 이 둘의 역사적 시간 사이에 무수히 존재하는 교단 내적인 논란과 분쟁, 그리고 정치권력과의 복잡한 교호관계는 기실 이 두 가지 역사적 사건에 대한 변종이거나 수정판에 지나지 않는다.     

그 예를 열거하자면 주요한 것만으로도, 만암스님의 고불총림과 중도적 정화노선의 실패와 탈종, 정화초창기(1954년) 800여명에 불과했던 비구(니)가 통합종단 성립시점(1964년)에 11,899명으로 증가하게 된 사연과 후과, 정화역행 경향을 문제 삼은 청담스님의 탈종과 정화정신의 필연적 퇴색, 1983년 비상종단의 실패와 성철(종정)스님의 개혁안 반대유시, 성철스님과 서의현 총무원장의 병존체제, 80년대판 불교운동의 제도내적 수렴과 종언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94년 개혁회의는 정법구현종단, 불교자주화 구현, 종단운영의 민주화, 청정교단의 구현, 불교의 대사회적 역할 확대 등 다섯 가지의 실천이념을 제시하고 이 지표에 따라 종헌종법을 개정하여 제도화하였다. 그 '단초'(봉암사 결사 및 정화운동)와 '결말'(94년 개혁)을 비교해 보면 우리는, '단초'는 '과정' 속에서 다양한 현실적 문제를 낳았고, '결말'이 과정상의 문제점들을 수렴한 현실지표들을 최종적으로 의제화하여 제시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이유로 94년 체제의 한계상황과 역할 종결의 증명은 곧 한국불교의 근대적 구상을 넘어서는 새로운 체제의 구상이 필요함을 역설하는 증거로 될 것이다.

우리는 이 논의에 있어서 역사학자일 필요가 없으므로 꼼꼼하게 근현대한국불교사의 발전단계 나누고 특징을 요약하고, 이를 입증하는 세세한 증거물들을 내세울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 50여 년의 과정을 지극히 단순화할 수 있는 과감성이 더 요구된다.

필자의 견해로는 지난 50여 년 간의 한국불교의 근대적 구상은 한 개의 중심이 되는 갈등구조와 서너 개의 파생적 갈등구조(정교분리문제, 사회참여문제, 재가위상문제)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으로 간략화 할 수 있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한 개의 중심적 갈등구조인데, 그것은 다름 아니라 교단 운영에 있어서 '종교적 권위'와 '대중적 공의'의 관계이다. 달리 말하자면, '종교적 권위'란 수행에 따른 성취(출가공동체에서는 일반적으로는 좌차=법랍, 제도적으로는 종정이나 원로의 권위)의 권위체계와 관계된 것이고, '대중적 공의'는 평등하고 직접적인 의사결정의 권위체계(각종의 민주적 의사결정 및 시스템)에 관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필자가 유의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점이다. 그간의 모든 교단 내외적인 갈등 혹은 통합 등의 전과정은 - 현상적으로라도 - 이 양자의 권위를 공히 또는 어느 하나라도 강화시키는 방향이어야 한다는 어떤 중심성과 당위성이 저변에 공유되어 있었다면, 94년 체제 시행 15년에 이른 현재의 시점에서 살펴볼 때 현 체제운영의 절대적 부분에서 오히려 이 양자가 공히 빠르게 붕괴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징표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더욱 극명하게 표현하다면 이 두 권위의 중심성 혹은 당위성에 대한 설득기반이 정치적으로 바닥난 상태라는 것이 맞을 것이다.

뒤집어 생각하자면 94년 체제의 사명 즉 존재이유는, 정화운동에서부터 세우고자 했던 '종교적 권위'가 산중 보호구역 철조망을 벗었을 때 그 은폐된 맹점이 어떤 모습인지를 드러내 보이고, '대중적 공의'가 어떻게 금권과 문중파벌주의에 의해 손쉽게 왜곡될 수 있으며, 이로써 하나의 가장 수준 높게 설계된 규칙을 가진 공동체가 마침내 어떻게 하여 '각자도생'의 시장상황으로 방치되는지를, 오히려 그 극복을 위해 설계된 시스템의 작동 과정에서 눈앞에 선명하게 확인시켜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아마도 이렇게 말하면 적지 않은 이들이 94년 이후 종단의 눈부신 발전상에 대해 거론하고 싶어 질 것이다. 그래도 얼마나 크게 발전하였느냐고. 사실이다. 크게 발전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다시 1998년 발행한 150여 쪽에 달하는『개혁종단 이렇게 일하고 있습니다.』는 홍보자료집이 곧바로 그보다 몇 배나 되는 분량의 자료집(『정화개혁회의의 실체』)으로 조목조목 반박당하는 신세가 되어 한낱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기억해내야만 비로소 말뜻을 알아들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지금 말하고 있는 핵심 문제는 발전되고 정착된 제도나 행정, 프로그램이 아니다. 문제는 정치다. 정치란 사람(구성원)을 일정한 방향으로 이끄는 행위이며, 이를 위해 합법적으로 위임된 힘을 어떻게 공정하고도 효과적으로 활용하느냐 하는 방법까지를 포괄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이 작동하지 않고 실종된 상태라는 것이다.

종단의 정치영역에서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일정한 방향'을 상실함으로 인해 바로 그 시대정신을 잉태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흐름은 제도 밖에서 겉돌고, 정치의 제도적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중앙종회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하여 무언가 새로운 것을 지향하는 조직체에서는 중앙종회의원에 대한 배제가 당연시 되고 있으며, 의사결정의 대표성은 왜곡되어 다양한 공헌자들이나 실질 직능의 대표성은 무시됨에도 금권과 파벌의 대표성은 강화되고, 이로써 정치의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 대중적 명분과 설득력(동의)은 내동댕이쳐져도 아무런 평가를 받지 않으며, 장차 교단과 우리사회를 이끌어 나갈 신진 인재가 널리 등용되어 경험을 쌓고 단련되는 배출구조는 꾸준히 좁아지고 있는 현실은 정치의 실종을 보여주는 단면들이다.

그래서 94년 체제가 아직 살아 있어서 활력있는 작동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정치가 복원되어야 할 것인데, 문제는 94년 체제의 틀로서는, 그에 한정된 의제로서는, 그 제도에 따른 인적 구성 상태와 방식으로서는 정치의 복원은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에, 정치의 복원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체제, 새로운 시스템의 설계 그 차체를 의제로 삼아 정치적 담론을 형성해 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거듭 말하자면 총무원장선거법, 승려노후복지법 등의 제정이나 개선이 현재 상태에서는 정상적인 정치행위로서 달성되기 어려울 것인데, 그 원인은 정치의 작동 불능상태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를 정상가동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체제를 변경하기 위한 정치적 논의를 점화하는 것으로서 예열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남진

 불교시사 블로거. 전국불교운동연합, 깨달음의 사회화운동, 조계종총무원과 포교원 등에서  일했다. 현재 참여불교재가연대 등에서 종교 및 NGO 분야로 특화된 사회통계 및 여론의 조사/분석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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