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길 위에 섭니다"
"다시 길 위에 섭니다"
  • 불교닷컴
  • 승인 2009.04.0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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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수경스님…오체투지 기도 순례를 떠나며

다시 길 위에 섭니다. 나의 온 숨을 대지에 바치는 오체투지 순례에 나섭니다. 나의 숨결이 바람결을 따라 눕고, 나의 육신이 물처럼 대지를 흐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누구에게나 꿈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든 그 꿈의 궁극은 ‘행복’일 것입니다. 나도 행복해지기 위해서 출가를 했습니다. 하지만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나이가 벼슬이라고, 절집 밥을 축낸 햇수가 늘면서 대접 받을 일이 많아졌습니다. 까닥 정신을 놓으면 수행자로서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게 생겼습니다. 하여 나는 ‘환계(還戒)’의 심정으로 오체투지의 길을 떠납니다. 저의 허물을 제대로 보고 최소한 제 자신을 속이지는 말자는 참회의 기도를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바로 세울 수 있다면, 시절 인연으로 고통 받는 여리고 약한 사람들과 말 못하는 생명의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건 오로지 ‘돈’을 찾아 헤매는 벌거벗은 욕망입니다. 모두가 ‘경제 위기’ 타령입니다. 죽겠다고 아우성입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사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위기는 모두가 강남에 최고급 아파트를 사고, 모든 아이들이 국제중, 특목고, 명문대에 진학해서 대기업에 취직해야만 해결될 성질의 위기입니다. ‘욕망의 위기’인 것입니다.

만약 이명박 정부가 전국토를 공사판으로 만들어서 일시적으로나마 현재의 경제 위기를 넘기면 청년실업, 비정규직, 빈부 양극화, 빈부의 대물림 문제가 해결될까요? 그렇게 믿는다면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사회적 모순을 비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승자 독식’ 구조를 인정한 상태에서 내가 승자가 되지 못한 푸념에 지나지 않습니다.

‘문제의식’은 없고 ‘위기의식’만 난무하는 한국 사회

지금 우리 사회는 ‘위기의식’만 팽배할 뿐 위기의 원인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습니다. 최소한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금도도 없습니다. 도덕과 윤리의식의 부재만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 전 부문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진짜 위기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요. 진보와 보수, 여야, 대통령과 국민 모두가 서로를 속이고 있습니다. 한 예로, 청년 실업의 문제는 현 정부의 잘못이 아닙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더욱 아닙니다. 모든 대학이 모든 학생들에게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게 한다고 칩시다. 모두가 토익 점수 만점이라고 칩시다. 결과는 현재 상태와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문명사적으로 당연히 도래할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더 벌어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과 규모의 조정을 통해서 삶 자체를 재편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부자도 대기업도 불행해집니다. 극빈층이 늘어남으로써 자신들의 부를 지속시킬 물적 토대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든 국민을 ‘부자 만들어 준다’고 한 이명박 대통령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판을 합니다. 낯간지러운 일입니다. 서로 속이지 않았습니까? 설령 모두 부자가 되지는 못한다 치더라도 최소한 부자와 기업이 잘 되면 떡고물이라고 많이 떨어지겠지 하고 기대했기 때문에 이명박이라는 분이 대통령에 당선된 겁니다. 어차피 지킬 수 없는 약속이라는 걸 알았으면서 이제 와서 비판을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비판의 초점도 빗나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비판 받아야 할 점은 정직성입니다. 막상 대통령이 되고 보니 현재의 위기는 문명사적 전환의 국면에서 필연적으로 닥칠 상황에 처한 것이라고 솔직하게 말하고, 가진 자와 대기업의 도덕적 책무 이행과 양보를 전제로 다수의 국민에게 고통 분담을 호소하고 동의를 구했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사회적 합의이고 국민 통합의 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는커녕 눈과 귀를 닫고 오직 돈을 풀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언론과 시민 단체, 지성계와 종교계의 책무가 중요한데도,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으로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기에 급급합니다. 그 비판이 정당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대안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 나라 지성계에 원로가 있는지도 의문이 듭니다. 있다면 지난 촛불 정국의 정점에서 “이제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자. 이제부터 우리 내면의 혁명을 이루자. 그래서 세상을 바꾸자. 그것을 위해 써야 할 에너지를 소진시키지 말자”하고 설득해야 했습니다. 소위 자기 진영으로부터 욕을 먹더라도 어른다운 곡진함으로 길을 열어 보였어야 했습니다.
종교계와 성직자는 어떻습니까.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불교계만 보자면 시대의 고통과 온 생명(중생)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노력이 없습니다. 한국 불교는 부처님 가르침으로부터 너무 멀어졌습니다.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길과 반대로 갔기 때문입니다. 저 자신 또한 이러한 비판을 받아야 할 당사자의 한 사람임을 잘 압니다.

‘부드러운 관계’, 그것이 사람의 길

이러한 문제의식을 안고 오체투지를 떠납니다. 우선 수행자로서 잘못 살아 온 허물을 참회하고 나를 바로 세우는 일이 시급해서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공업 중생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진정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모색을 하는 작은 계기라도 만들고 싶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단 한 번이라도 오체투지를 경험해 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평화적 시위’  차원이 아닙니다. 지난해에 지리산에서 계룡산까지 오체투지를 통해 지렁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절절히 느낀 바는, 누구나 알고 있는 소박한 삶의 진실입니다. 사람이 별 것 아니라는, 산다는 것이 별 것 아니라는 새삼스런 자각이었습니다. 그러한 ‘해방 체험’을 공유하자는 것입니다. 자유와 행복의 의미를 정직한 몸의 언어로 새겨 보자는 것입니다.

좀 거창하게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서 오체투지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거창할 게 없습니다. 추상적인 길, 실현 불가능한 이상적인 길도 아닙니다.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현재보다는 덜 폭력적으로만 바꾸어도 세상을 달라질 것입니다. 최소한 나의 행동이 상대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 않는다면, 하나 더 가지기 위해 상대를 짓밟지 않는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아름답고 평화로워질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길이 아니면 그 길을 어디에서 찾을 것입니까. 나는 세상의 모든 성현과 종교의 가르침이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 믿음을 튼튼히 하기 위해 오체투지의 길을 나섭니다. 모두들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2009년 봄
화계사 주지 수경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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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2009-05-17 07:22:14
수행자로 잘못 살아서 행복하지 못하여 참회한다는데 너무 요란하게 참회들 하네요. 그렇게 중요인사들이어서 그런거예요? 여기저기 노사모처럼 노란색들 입고 오체투지하길레 민주당원들이거나 노사모인줄 알았잖아요.

파도 2009-04-01 13:51:43
역시나 멋지고 솔직하신 분입니다.
또 어떤 수필가 못지 않게 글내용도 좋고요,
글속에 담긴 사상도 훌륭하고요...
존경하고 희망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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