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씩 도회지에 머물 때면 이른 새벽에 시장에 나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바라본다. 연탄불 앞에서 국수를 먹는 사람들의 모습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잔에 손을 녹이며 물건을 싣고 나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그것이 마치 한 편의 서사시처럼 다가온다. 시장 안의 사람들이 모두 주인공처럼 다가와 내게 감동을 남기는 것이다.
식솔을 거느리고 살아가는 사내와 아낙의 고됨과 보람의 역사를 시장 안에서는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 시장의 한 모퉁이에 서서 나는 그 풍경 속으로 나를 넣어 보고는 한다. 그때마다 나는 그들의 삶에 턱없이 모자란다는 것을 실감한다. 억척스럽게 생의 시간을 일구어 보람과 행복을 거두어 내는 그들의 그 진지한 삶의 자세를 나는 절대 쫓아갈 수 없을 것이다. 진지해서 거짓이 없고 절실해서 진실한 그 삶의 모습들은 나를 깨우치는 큰 가르침이 되어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나약하고 게으른 내 삶의 시간들이 그들의 모습 앞에서는 부끄럽기만 하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게 감동을 남기는 모습들은 그렇게 온 몸으로 한 생을 살아가는 모습들이다. 그것은 또한 내 부모님들의 삶의 모습이었고 내 삶의 배경이기도 했다. 나를 키우고 나를 있게 한 삶의 모습들이 지금도 여전히 정다운 것은 그 삶에는 진실의 아름다움이 배어있기 때문일 터이다.
산에서 만나는 꽃과 하늘이 아름답듯이 저자거리에서는 억세게 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들이 또한 그렇게 아름답게 다가온다. 산에 살 때는 잊고 있던 모습들을 만나고 그 속에 자리한 아름다움을 만나는 일이 내게는 기쁨이 되는 것이다. 그 기쁨이 있어 나는 새벽시장에 나가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일을 가끔씩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방앗간 주인의 떡을 바라보는 눈이 마치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눈빛과 닮은 것만 같다. 정성이 깃든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의 어느 한 순간도 그렇게 정성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정성을 다해 살아가는 삶이기에 어느 누구의 삶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준엄한 진실을 나는 만난다. 팥떡 한 시루를 다 찌고 웃는 주인의 눈빛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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