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스님 성전] 가을날의 기도
[미소스님 성전] 가을날의 기도
  • 김영태
  • 승인 2006.10.17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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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하늘이 높다. 고개를 들고 바라볼 하늘이 있다는 것이 내게는 기쁨이다. 길을 따라 걷다보면 하늘을 닮은 꽃 하나를 만날 수 있다. 하늘 그리워 하늘하늘 피어 있는 코스모스가 유난히 눈길을 사로잡는다.

출가한 이에게는 세가지 소중한 인연이 있다고 한다. 스승과 도반과 도량이 그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그 세가지 인연을 모두 구족해 있다. 산에 들어와 훌륭한 스승을 만났고 지금 아주 좋은 도반들과 함께 출가의 길을 걷고 있다. 나는 가끔씩 생각해 본다. 내 출가의 삶에서 도반을 빼면 무엇이 남을 수 있을까? 외로울 것만 같다. 그것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웃는 것과도 같은 일인 것만 같다.

도반이 없다는 것은 어쩌면 즐거움의 진공 상태를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좋은 길벗인 나의 도반들. 그들은 모두 어둠 속을 걷다가 만나는 달빛과 같고 외로울 때면 다가와 위안을 건네는 별과도 같다. 불혹의 나이를 지나서도 철없이 함께 장난치고 웃을 수 있는 도반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 행복이 있어 오늘도 나는 이 길을 걷고 있다.
산은 이제 가을 색이 완연하다. 산에서는 모든 것이 너무나 선명하다. 아무것도 그냥 지나치는 것은 없다. 그 곳에서는 모든 것이 가슴에 머물다 간다. 바람소리 빗소리 그리고 낙엽이 지는 소리까지 산승의 가슴에서 노닐다 가는 것이다. 외로운 산승을 향한 따뜻한 배려다. 산과 산을 찾아오는 이 모든 것들이 내게는 도량이 된다. 도량을 거닐 때 경건한 마음으로 거닐 듯이 물소리 바람소리 하나를 만날 때도 나는 스스로 경건해 지고는 한다. 일생 산을 도량 삼아 살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행복이다. 원효는 말했다. 누구나 산에 들어가 도를 닦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은 애욕이 얽혀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나를 돌아본다. 몸은 산에 들어와 살고 있지만 마음은 아직 애욕에 얽혀 있는 나를 만난다.

내게는 아직 출가를 하던 그 날의 기억이 있다. 친한 이들을 떠나던 날의 슬픔의 흔적들이 아직 내게 남아있다. 마음을 찾기 위해 슬픔을 뒤로 하고 떠났지만 아직 나는 마음의 소식처를 만나지 못했다. 수없이 마음을 향해 발신하고 있지만 그것은 언제나 수취 불명으로 되돌아 올 뿐이다. 도업을 이루기 위해서 이 음식을 먹는다는 공양게를 외울 때마다 나는 부끄러웠다. 슬픔에 대한 부채 그리고 공양에 대한 부채를 나는 여전히 안고 살아가고 있다. 마음을 찾지 못하면 이 모든 부채는 내 다음 생의 시간까지 나를 쫓아 올 것이다.

가을은 나를 기도하게 한다. 양심과 그리움과 수행자의 한 생애를 위해. 기도 안에서 나는 비로소 참회한다. 파란 하늘이 너무 눈부셔 흐린 영혼이 부끄럽다. 맑은 하늘아래 피어있는 코스모스처럼 나도 그렇게 투명한 모습으로 하늘을 바라보고만 싶다. 가을날의 기도는 그래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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